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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플랫폼/모바일

비싼 휴대폰 가격, 제조사는 억울하다?

【사람중심】한 소비자단체가 다른 나라들과 다양한 상품의 가격 차이를 비교해 발표한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소비자시민모임은 지난 8월 11일부터 9월 5일까지 세계 18개 나라 주요 도시에서 LED TV, 스마트폰, 태블릿PC, 포도주, 자동차, 화장품 등 14개 품목(48개 제품, 수입/국산 포함)의 가격을 조사했는데, 이 가운데 16개 제품의 국내 가격이 상위 5위 안에 포함됐습니다.

국산 제품으로는 삼성전자의 46인치 LED TV(291만 4,666원), LG 47인치 LED TV(264만 6,666원), 국내산 쇠고기(9만 4,260원)와 팬틴 샴푸(1만 1,140원)가 2위였고, 삼성전자의 넥서스S(70만 4,000원)와 갤럭시탭(81만 4,000원), 국내산 올리브오일(1만 3,444원)이 4위였습니다. 우유(2,275원)도 다섯 번째로 비쌌다고 합니다.

수입 제품 가운데서는 칠레산 와인(4만 4,000원)은 가장 비쌌고, 수입쇠고기(4만 9,800원)도 두 번째로 비쌌습니다. 이 밖에도 리바이스 청바지(16만 8,000원)와 하이네켄 맥주(2,950원)가 각각 2, 3위를 차지했으며, 소니 46인치 LED TV(239만원), 시세이도 선크림(5만 3,000원), 포도(4,490원), 이탈리아산 올리브오일(1만 6,267원)이 5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소비재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소비자시민모임은 현지 조사원을 고용해 제품 구매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백화점, 대형할인매장, 일반슈퍼마켓을 직접 방문해 조사토록 했다고 합니다.


휴대폰 세계 최강자들의 변명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이 만드는 TV나 휴대폰을 우리가 가장 비싸게 사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에서 출시된 지 한두 달도 되지 않은 최신 스마트폰이 미국에서 ‘1달러폰’으로 팔린다는 사실에 종종 허탈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막상 자세한 통계를 받아들게 되니 화가 치미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발표 내용보다 국민들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은 국내 제조사들의 변명입니다. 각종 방송 뉴스와 신문보도에 나온 제조사들의 한결같은 해명은 ‘유통과정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유통업체가 많이 할인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거품 가격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해명을 믿을 소비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유통업체라는 것이 통신사와 관계를 가지고 있고, 이들 유통사에 통신사와 단말제조사 모두 보조금 또는 판매수수료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고객을 오랫동안 묶어놓고자 출고가를 높이 책정해놓고,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며서 고객을 장기간 묶어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통 채널에 책임을 떠넘기는 제조사들은, 혹시 위와 같은 내용을 국민들이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제조사 자신들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능이 추가돼 가격이 높아졌다?

제조사들의 또 한 가지 변명은 국내 제품에는 기능이 추가되어 가격이 높아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변명 또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같은 모델이 국내 제품이라고 해서 더 좋은 LCD 패널을 쓰거나, 더 고성능 배터리를 장착하는 예는 거의 없습니다. ‘기능’이라는 것이 사실상 소프트웨어로 처리가 되는 것인데, 이것 때문에 가격을 더 높게 책정했다는 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일입니다. 국내 제조사들이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하는 국내 시장에서 수출 제품에 없는 고급 기능을 넣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또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기능’ 운운하는 제조사들의 안쓰러운 변명을 듣고 나니, 최근 업그레이드된 스마트폰 OS를 공개한 애플과 비교가 됩니다.

애플은 지난달에 iOS 버전5를 내놓았습니다. 기존 4.3.5 버전의 후속 버전인 5.0은 첫 번째 숫자가 4에서 5로 바뀐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대대적인 기능 개선 및 추가가 있었습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쓸 수 있고, 음성인식 기능이 강화됐으며, 그간 일부에서 불편하다고 제기됐던 내용들을 반영해 매우 많은 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메가 업그레이드’라고 불리는 대대적인 OS 개선에도 불구하고, 이것 때문에 새로운 비용을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애플 단말들 사이에 무료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이 생긴 것을 감안하면 사용자는 금전적으로도 이득을 보게 됐습니다. 또, iOS5와 함께 출시된 아이폰4S는 경쟁사들의 최신 스마트폰과 대등한 하드웨어 사양임에도 제품 가격을 1/3~1/2 수준으로 크게 인하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벌써 출시된 지 만 2년이 된 아이폰 3GS에서도 여전히 최신 OS를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불과 작년에 나온 고가의 스마트폰도 새 안드로이드 OS를 지원해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국내 제조사들과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기대할 혁신이란?

과거에 우리는 국내 기업이 만든 휴대폰이 ‘절대 선善’이라고 인정하고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을 필두로 다양한 스마트폰 모델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실상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여전히 구시대적인 변명을 늘어놓는 단말 제조사들의 모습에 화가 나기 이전에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TV 분야 세계 1/2위네, 스마트폰 세계 1위네 하는 타이틀을 강조하기에 바쁘고, 사상 최대의 수출 실적과 순이익을 자랑하기에 바쁜 기업들이 왜 자국에서 더 비싸게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기능이 더 추가됐다 하더라도 자국에서는 오히려 좋은 혜택을 주는 것이 누구나 생각하는 ‘양식’입니다. 자신들의 이익보다는 국민을 생각하는 양, 가장 도덕적인 양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부었던 기업들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 양식은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못한다면 어떠한 수치로 포장을 하더라도 결국 ‘우물 안 개구리’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조사 품목 가운데 14개 제품은 정부가 물가를 관리하는 품목입니다. 소비자시민모임 측은 “한국에서 판매가격이 비싼 품목은 유통 구조를 개선하도록 정부에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정부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양식을 지키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조치라도 내놓게 될까요?

애플이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 대기업들도 ‘혁신’을 무척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하드웨어 사양에, 더 진화된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고도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는 자신감은 혁신의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 중 상당수는 “연구개발 투자가 수익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계속해서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기 힘들다”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릅니다.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기술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새로 개발하기라도 하는 걸까요? ‘혁신’은 제품을 써보면서 인정하게 되는 것이지, 가격표에서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소비자를 볼모로 잡는 우물 안 개구리에게서는 혁신을 기대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