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과서 사업에는 태블릿 PC 같은 단말에서부터 콘텐츠 서버와 스토리지, 무선랜 같은 하드웨어 인프라 그리고 인증 및 출결 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프트웨어도 적용될 예정입니다. 가뜩이나 냉랭한 IT 시장에서 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IT 업계에 온기를 불어넣어 줄 사업에 IT 업계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교과서를 디지털화하는 사업은 과거 멀티미디어 교실, 전원학교 등의 이름으로 진행된 바 있습니다. 시범사업이 끝나고 본 사업에 돌입해야 될 시기에 4대강 사업과 같은 장벽을 만나면서 한동안 제자리걸음을 해왔는데, 이제야 결실을 맺게 됐습니다.
모처럼 추진되는 대형 공공IT 사업에 기대가 큰 상황에서 주목할만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애플이 아이패드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볼 수 있는 ‘아이북스2’ 앱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미 미국의 주요 교과서 출판사들과 제휴를 맺었고, 일부 디지털 교과서는 당장 구입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기존 종이 교과서의 1/4 수준이라고 합니다.
아이북스2 출시는 분명 디지털 교과서 사업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앱이 나온 지 사흘 만에 35만건의 다운로드가 이루어 졌습니다. 디지털 교과서 저작툴인 ‘아이북스 오서’의 다운로드 수도 10만건에 육박했네요. 아이북스2와 아이북스 오서는 모두 무료 프로그램입니다.
애플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대학 강의를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맥PC에서 볼 수 있는 ‘아이튠즈U’ 앱도 선을 보였습니다. 이미 세계 26개 나라의 800여 교육기관이 아이튠즈U를 이용해 디지털 강의자료를 제공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교육용 콘텐츠의 제작-배포-활용 생태계를 갖추었고, 디지털 교육의 영역도 대학까지 확대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애플의 아이북스2가 기능 면에서는 특별한 것이 없다는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아이북스2의 기능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시범 적용했던 것이고, 아이북스 오서도 애플의 폐쇄성 때문에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아이북스2의 성공은 아이패드가 디지털 교과서용 단말로 채택되는가에 좌우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단말 업계에서는 애플이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고 보는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정부 투자로 학교에 수십~수백만대의 태블릿PC가 제공되는 큰 사업이 외국 기업에게 기회를 열어주겠냐는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태블릿PC 가운데 시중에 가장 많이 공급되어 있는 아이패드가 배제된다는 사실이 부담이 될 것입니다. 초기에는 정부가 학교에 단말을 공급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개별 가정에서 보유한 태블릿PC로 디지털 교과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이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가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를 제작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도 광범위한 사용자가 있고, 디지털 교과서 저작툴까지 무료로 배포되는 단말이 채택되는 것이 사업의 효율성 면에서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패드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정부 당국이 디지털 교과서 사업을 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콘텐츠와 생태계에 대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사업이 추진되다 보면, 결과만이 중요시될 수 있습니다.
태블릿PC에 과도한 비용을 쓰다 보니 정작 통신 인프라가 부실해졌다는 지적도 팽배했습니다. 무선 통신으로 멀티미디어 교육 자료를 이용해야 되는데, 단말 구입에 상당액의 비용을 쓰다 보니 무선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무선랜 업체들이 “이런 식으로 무선랜을 구축하면 콘텐츠 서비스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지만, 정부 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해 비난을 받았습니다. PC 제조사에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죠.
일부에서는 “멀티미디어 교실을 만들었다고 해도 콘텐츠 서버나 무선랜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변화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태블릿PC다 보니, 그 부분에 과도한 비용이 들어간 것 아니겠는가?”하는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교과서를 디지털화는 사업의 목적은 모바일 단말에서 편리하게 공부를 할 수 있고, 학습 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디지털 교과서 수업을 하는 학교가 몇 개다’하는 외형에 치우치거나, 최신 단말을 사용하는 교실 풍경을 보여주기에만 급급하면 원래의 목표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단말을 선택하느냐, 어떤 인프라를 구축하느냐, 어떤 솔루션을 도입하느냐 하는 모든 선택의 기준은 ‘디지털 교과서 사업의 목표가 무엇이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태블릿PC가 이 사업의 목표가 되어 ‘어떤 태블릿으로 할 것이냐?’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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