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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

네트워크 업계의 키워드는 "죽겠다"...응답하라, 제발!

[사람중심] "죽겠다"

양 극단의 두 가지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를 때는 "좋아 죽겠다"고 하고, 정반대의 경우에도 "죽겠다"고 합니다.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쓰이지만, '죽겠다'는 말의 진정한 효용은 어떤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헤쳐 나갈 방법도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이럴 때 "죽겠다"는 말 한마디면 그 복잡한 모든 심정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몇달 전 올해 상반기 네트워크 장비 업계가 어땠는지 파악을 해보고자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습니다. "상반기에 어땠어요?"라는 질문에 여러 사람이 "죽겠다"고 답했습니다.  "죽을 맛이다", "답이 없다"는 대답 역시 '죽겠다'와 일맥상통하는 표현일 겁니다. 그리고 얘기를 좀 더 나눠어 보니 이 "죽겠다"는 대답에는 "상반기에 죽을 맛이었고, 하반기 역시 그럴 것"이라는 뜻을 품고 있더군요. 전화를 끝내고 난 제 마음도 무겁기 그지없었습니다.


기초자치단체까지 타깃으로 하는 통신사의 '회선+장비임대' 사업

"상반기에 외국계 통신장비 기업들 가운데 목표치를 채운 회사는 한 곳도 없다"는 소문이 적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모 기업은 목표 대비 65%를 조금 넘었다고 합니다(평소 같으면 이 정도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때 지사장 문책감입니다만,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소식이 들려오는 외국계 회사는 없습니다.). 제조사가 이런 형편이면, 이들의 장비를 시장에 직접 공급하는 NI(네트워크통합) 업체들 역시 어렵기는 매일반이겠지요,


세계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투자를 자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IT 기업들이 그나마 비빌 언덕이라고는 공공 분야가 거의 유일한 실정입니다. 네트워크 업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공기관들이 최근 들어 직접 통신장비를 구매하지 않고, 통신사에서 임대하는 방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3~5년 주기로 인터넷 회선 계약을 하면서 장비까지 임대하고, 매달 장비 사용료를 회선 임대료와 함께 내는 방식입니다. 공공기관들도 사정이 어렵다 보니 일시불의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죠.


과거에도 이런 방식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공공과 민간(일반기업) 부문을 막론하고 대형 고객들이 주로 채택하던 방식이었습니다. 특히 공공 부문에서 광역지자체 정도 되는 규모의 기관에서 해오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된 것은 최근 들어, 이런 장비 임대 방식(회선과 장비를 임대하면 관리를 해주기에 '매니지드 서비스'라고 부릅니다)이 기초자치단체까지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NI 업체 관계자는 "최근 서울 인근 모 도시의 네트워크 장비 교체 시기가 되어 방문했더니, 통신사에서 제안한 임대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고 들었다"면서, "통신사들이 이 정도 규모까지 직접 공략하면, 중소 NI 업체는 설 자리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통신사들이 네트워크 장비 임대 사업을 소규모 공공기관까지 확장하는 것은 통신사들 역시 포화 상태에 이른 시장에서 실적 개선을 이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선과 장비를 묶어서 제시하면 영업하기가 쉬워질 뿐 아니라, 차후에 해당 공공기관이 여러 부가서비스를 도입할 때 추가 수익을 얻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겠죠. 이 때문에 규모가 있는 특정 프로젝트에서는 통신사가 아예 장비를 무상공급하겠다는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국계 통신장비 제조사, 통신사 제휴 강화↔중소규모 파트너는 죽을 맛

그런데, 정작 중소 NI 업체들을 힘들게 하는 부분은 자신들과 파트너 관계에 있는 네트워크 장비 제조사들이 통신사의 '매니지드 서비스' 사업에 적극적인 구애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조사들 역시 경기 불황으로 채널을 통한 영업이 쉽지 않다 보니  통신사의 회선+장비 영업방식에 더 기대게 되는 것인데, 통신사들이 소규모 지자체나 일반기업을 가리지 않고 매니지드 서비스를 강화하려는 분위기여서 네트워크 장비 제조사들로서는 기대감이 큰 상황입니다. 그동안 통신사 매니지드 사업에 참여하지 못했던 HP는 몇 달 전 KT 매니지드 서비스 파트너로 등록하게 되자, 분위기가 매우 고무되어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바라만 봐야 하는 중소 NI 업체들은 위기의식이 적지 않습니다. 당장에 장비 매출에 타격을 받는데다가, 유지보수 수익도 줄어들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유수 네트워크 장비 제조사의 협력사 관계자는 "벤더가 KT 매니지드 서비스와 관계 강화에 부쩍 힘을 쏟고 있는데, 파트너들의 불만이 높아질 조짐이 일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상반기에 죽을 쒔는데, 하반기라도 경기가 살아날 호재는 보이지 않고, 공룡 같은 통신사와도 본격적인 전투를 해야 할 판이니 '죽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판입니다.


파트너들의 이 같은 고충에 네트워크 장비 제조사들은 "통신사들과 제휴하는 매니지드 서비스는 단순 장비 공급 시장을 겨냥하지 않는다"거나, 반대로 "앞으로 중소 NI 파트너들도 UC, 클라우드 같은 부가가치가 있는 분야에서 기술력을 쌓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말처럼 쉬울까요?


클라우드·UC 등 새로운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정부가 내년부터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스마트 스쿨' 사업은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네트워크 영업을 하는 중소 NI 업체들에게는 큰 기회로 여겨졌습니다. 학교들이 스마트 스쿨을 위한 환경을 구축하면 네트워크 장비와 태블릿PC 등 다양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공급 시장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현재 중소 NI 업체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과연 이 사업을 교육부가 주관할 것이냐, 아니면 KT가 주관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교육부가 주관할 경우, 예산이 개별 학교로 내려가고 어떤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도입할 것인지 학교가 알아서 결정하기 때문에 해당 학교에 오랫동안 영업을 해온 NI 업체들은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KT가 주관하게 될 경우에는 매니지드 서비스 방식을 제안할 가능성이 높아 손을 놓고 바라만 봐야 될 것이라고 합니다. KT가 네트워크 장비, 태블릿PC, 소프트웨어 등을 패키지로 묶을 때는 제조사와 직접 협상을 할 것이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중소 NI 업체의 역할이 만들어지기 힘들겠지요. 


스마트 스쿨 본 사업에는 손을 놓고 클라우드, UC 같은 솔루션을 제안해서 부가가치를 높여라? 그런 분야는 경쟁이 없을까요? 세계적인 IT기업들과 국내 대기업 계열 SI 회사들과 상대해야 합니다. 상대할만한 체력을 갖추기에는 아직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중소 NI 업체들은 다들 콧방귀를 뀌더군요.


‘상생 경영’ ‘파트너 성공’...어떻게?

출처 : http://dws2.tistory.com/7?srchid=IIMhkeOU10

통신사는 늘 "중소기업 상생 경영'을 부르짖습니다. 네트워크 장비 제조사는 "파트너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통신사나 벤더는 그들이 평소에 협력 파트너라고 말하는 중소기업들의 "죽겠다"는 말 속에 담긴 고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고충을 혹시 알고 있다면, 함께 해결해 줄 동업자 정신은 있는 걸까요? 


2012년은 통신사도, 장비 제조사도, 중소 NI 업체도 그 어느 때 보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적어졌다고 어느 한쪽이 그것을 다 가지고 가버리면 나머지는 굶어야 합니다. 아마도 가장 힘이 약한 친구가 굶게 되겠죠. 모든 파트너를 다 먹여살릴 수는 없으니 이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파트너로서 자격이 있다고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은 파트너사가 있다면, 모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이렇게 소리를 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생존력이면, 당신들 파트너 안 해도 상관없잖아!”


같이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상식적인 파트너 관계라고 생각됩니다. 상생 경영을 위해, 파트너의 성공을 위해 위기의 2012년에 무엇을 하고 있나요? 응답하라, 제발!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