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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태릉선수촌’에서 마크 주커버그를 키운다?

[사람중심] 올해 들어 각종 뉴스매체의 IT 보도 가운데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기사는 무엇이었을까요? CES나 MWC 같은 대형 IT 행사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처럼 특별한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페이스북의 기업공개(IPO)가 가장 주목받은 뉴스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37억 1,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기업 가치가 최대 1,000억 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돈으로 무려 110조원이나 되는 가치를 인정받은 이 인터넷 기업은 재정난에 허덕이는 캘리포니아주에도 단비를 내려줄 것이라는 보도가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기업 공개를 함으로써 앞으로 5년 동안 캘리포니아주에 내게 될 세금만 24억 5,000만 달러(2조 7,500만원)가 될 전망입니다.


1984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스물아홉 살이 된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가치가 1,000억 달러로 평가받을 경우, 27조원대의 부자로 등극할 예정입니다. 이는 IT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오라클)에 이어 자산 순위 3위에 해당하는 것이라니 놀랍기만 합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단숨에 뛰어넘었습니다.

페이스북 기업공개로 마크 주커버그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직원이 백만장자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본사 직원 3,000명 가운데 최대 1,000명이 백만장자클럽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는군요. 페이스북의 기업공개는 5월 초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연초부터 유난히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미 한차례 인터넷을 휩쓸고 지나간 얘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지난 주 지식경제부가 낸 보도자료 때문입니다. 지경부는 2월 27일, ‘창의도전형 SW 연구개발 지원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예산도 20억원이나 됩니다.

이번 사업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자금이 없는 인재들을 지원하는 것으로, SW 고급 인력을 양성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세계적인 SW 벤처기업을 육성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래리 페이지, 마크 주커버그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정부가 SW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며 발표하는 보도자료는 거의 다 이런 식입니다. 한국의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들겠다, 한국의 구글을 만들겠다... 하지만, 그러한 사업들이 이후에 어떤 성과를 만들어 냈는지는 한 번도 발표된 적이 없습니다. 당장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어떤 의미 있는 단계를 밟아 나가고 있는지 정도는 소개되는 것이 정상일 텐데요.

이런 류의 지원사업을 오랫동안 해왔다면 분명 뭔가 성과가 있거나, 성과가 없었다면 문제점을 분석해서 지원 사업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대안이라도 만들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산을 쓰는 항목을 포장하는 목적의 사업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우리나라 벤처 육성 정책을 보면 태릉선수촌 생각이 납니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대회의 순위를 목표로 우수선수들을 선수촌에 들어오게 해서 정해놓은 프로그램대로 훈련합니다. 실력을 인정받았어도 입촌을 거부해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사례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수촌의 프로그램대로 훈련하면 실력이 좋아질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 있을 겁니다.

HP,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벤처로 시작해서 세계적인 IT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 중 어느 하나 미국 정부의 관리 아래 오늘날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네이버나 다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해마다 되풀이됩니다. IT에서 태릉선수촌 같은 역할을 하려는 것 말입니다.

정말 페이스북 같은 벤처가 나오기를 희망한다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페이스북에 올린 개인적인 견해가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 환경에서 인터넷 벤처들은 법적인 규제에 걸리지 않는 방법을 먼저 고민해야 됩니다. 정부 여당은 ‘트위터 전문가를 영입한다’는 얘기를 뭔가 혁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발표하는 상황입니다.

인터넷 벤처가 대형 포털을 벗어나면 투자를 받기도 힘들고, 포털이 금새 그 아이템을 도용해도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역량을 가진 인재들일수록 가장 큰 목표는 ‘대기업 입사’입니다. 괜히 벤처를 했다가 쪽박 차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작가가 빌 게이츠를 분석한 책에서 빌 게이츠 개인과는 상관없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잡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일본과 다른 미국의 분위기가 있다는 대목이었는데, 작가는 창업자를 존경하는 사회 풍토, 건전한 투자자가 많은 환경, 회사가 실패해도 경영자는 살아남을 수 있는 법 체계를 꼽았습니다.

전기공학의 천재로 불리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대기업인 HP에서 일하다가 사표를 던지고 애플을 공동 창업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자동차 안에서 ‘이익이 안 날 수도 있지만, 우리의 회사를 가질 수 있어’라고 했던 말이 워즈니악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합니다. 작가는 ‘사회 전반적으로 창업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풍토가 업었다면 실패할 지도 모르는 애플 창업에 워즈니악이 동참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일본은 벤처기업에 일하는 친구에게 대기업에서 일하자고 설득하는 편이 훨씬 성공확률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또, 사업에 실패하면 생계유지조차 어렵고, 은행이 집을 비롯한 생활 기반을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는 구조에서는 애플 같은 회사가 나올 수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으로 의욕을 갖고 창업을 했어도 실패하면 오로지 ‘빚쟁이’가 되는 사회 분위기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의 시스템이나 풍토를 칭찬하자고 이 글을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마크 주커버그가 나오려면 실패를 겁내지 않고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고, 벤처를 옥죄는 불필요한 규제가 없어야 합니다. 혁신을 하려는 사람들을 혁신의 범위 안에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저런 규정을 지켜야 하고, 매년 과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고, 그것이 안 되면 빚쟁이로 전락할 지도 모르는 분위기에서는 태릉선수촌의 국가대표는 육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스포츠 영웅이 탄생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CEO’로 얘기되던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가 따라잡겠다고 합니다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애플의 매출은 점점 삼성전자에 가까워지고, 삼성전자의 이익 규모는 애플과 점점 멀어지는 형국입니다. 혁신이 목표인 기업과 실적이 목표인 기업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삼성이 한 때 애플을 따라잡겠다고 만든 부서가 실패한 이유도 매년 팀별로 실적을 체크하는 프로세스였다고 합니다. 팀장인 임원이 재계약을 위해 매년 실적 보다는 실적을 입증해야 되는 분위기에서 팀원들은 “나의 사고가 팀장의 사고 틀에 저절로 맞춰지는 것이 느껴져 두려웠다”고 합니다.

혁신을 하자고 하면서, 혁신의 범위를 정해놓고 그 안에 가두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정부 기대대로라면 이미 여럿 나왔어야 할 ‘한국의 ***’이 아직도 등장하지 않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