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지난 2주간 KT가 삼성전자 스마트TV 이용자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한 사건이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과연 특정 단말을 사용한다고 인터넷 접속을 막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문제제기와 ‘트래픽 유발 정도가 기존의 단말들과는 차원이 다른 만큼 사전에 통신사, 콘텐츠 제공업체들과 논의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상충하는 상황입니다.
이 문제는 방통위의 중재로 겨우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정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일단 상처를 봉합만 해놓은 상태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예의주시해야 될 사안입니다. 스마트TV를 이용하는 가구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졌을 때 통신사가 그 엄청난 트래픽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또, 그 때 가서 TV 제조사가 통신사의 고통을 분담하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매우 낮아 보입니다.
이 문제는 ‘망 중립성’이라는 문제에서 보면, 정부 정책의 부재를 가장 먼저 지적해야 될 것입니다. 그 동안 망 중립성 논쟁은 늘 통신사의 승리로 결론이 났습니다. OECD 국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통신 선진국에서는 모두 망 중립성이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콘텐츠로 승부를 거는 소규모 인터넷서비스 사업자가 대기업인 통신사에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이유에서입니다. 망 중립성이 잘 지켜지면 좋은 콘텐츠가 많이 만들어져 시장이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외국의 사례에서 충분히 증명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히려 철저하게 대형 통신사의 주장대로 망 중립성 논의가 진행돼 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삼성전자라는 초대형 상대가 나타나자 KT도 강수를 두고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헛기침 한 번에 비틀거리던, 기존의 상대들과는 차원이 다른 상대인 것입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네트워크 먹는 하마? 스마트TV와 망 중립성)
보조금 방식으로 통신사와 손잡는 애플TV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 바라보면 삼성전자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KT는 LG전자 스마트TV 이용자의 접속은 그대로 허용하면서 삼성전자 고객만 차단한 것과 관련해 “LG전자는 협상하려는 의지를 보여 접속제한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애플은 TV 사업 초기 단계부터 통신사 등 이해관계자를 모두 고려한 사업 모델로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삼성전자도 글로벌 스마트TV 시장에 안착하려면 애플의 대화 방식을 배워라”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어쩌면 삼성전자와 KT는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논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최근 애플의 움직임은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하나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올해 선을 보일 애플 ‘iTV’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처럼 보조금 모델을 적용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 캐나다의 이동통신 사업자 로저스텔레콤 및 벨캐나다의 모회사 BCE와 파트너십 체결을 검토 중이라는군요. 미국에서는 통신업계 1, 2위인 버라이존과 AT&T가 유력한 서비스 제공자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스마트TV가 보조금 모델을 적용하면, 통신사는 매달 적정한 통신료를 받게 되니 스마트TV 공급업체의 아군이 됩니다. 이동전화·초고속인터넷·인터넷전화 등과 묶어서 서비스 이용료를 저렴하게 책정하면 타사 고객을 유인하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초기에 TV 단말기를 구입하는 비용부담을 덜게 되니 나쁜 모델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애플의 이러한 방식은 차세대 TV 시장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스마트TV 시장은 콘텐츠 공급업체들이 끼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들을 거느린 TV 제조사가 독자적으로 제품을 파는 형태입니다. 기존의 TV 판매와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보조금 방식을 채택하게 되면 TV 제조사와 통신사 그리고 콘텐츠 공급업체가 머리를 맞대고 시장을 활성화시킬 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정 영역의 기업만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다 같이 돈을 버는 구조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TV 제조사 입장에서는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iOS 5.0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아이폰3GS 사용자들이 아이폰 4S로 빠르게 넘어간 것도 같은 효과도 생길 것입니다.
스마트TV 생태계, 휴대폰 전철 밟지 않기를
스마트TV의 성공은 스마트TV 콘텐츠 시장의 성공이 되어야 합니다. 몇몇 콘텐츠의 화질이 좋고, 통신속도가 빠르다고 스마트TV 서비스가 성공할 리 없습니다. 애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다른 스마트폰·태블릿PC 보다 큰 성공을 구가하는 이유가 바로 앱 스토어에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지하는 대목입니다. 잘 갖춰진 생태계는 애플과 콘텐츠 공급업체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었고, 아이폰을 공급하는 통신사에게도 고객 증대, 데이터 통신료 증대라는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용자가 일정 요금을 내면서 스마트TV 서비스에 가입하는 방식은 TV 제조사는 TV 공급을 늘려서 좋고, 통신사는 새로운 서비스 매출이 생겨서 좋고, 콘텐츠 공급업체는 새로운 시장이 열려서 좋은 구조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구조는 다양한 콘텐츠를 부담없이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 콘텐츠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역할도 할 것입니다. 좋은 콘텐츠가 많이 발굴되는 구조는 결국 통신사에게나, TV 제조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안겨 주겠죠.
최근에 만난 한 콘텐츠 공급업체 관계자는 “현재의 방식으로 가면 스마트TV 판매가 늘어날 경우, 콘텐츠 공급업체가 TV 제조사와 통신사 사이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걱정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잘 갖춰진 생태계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이클라우드 같은 서비스가 스마트TV로 확대되려면 통신사의 협력은 필수적입니다. 또, 풍부한 콘텐츠가 뒤를 받쳐주지 않으면 스마트TV는 속빈 강정이 될 뿐입니다.
단품 TV 구매방식으로 움직였던 TV 시장이 스마트TV의 등장으로 전기를 맞이한 것은 분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좋은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외국에서는 콘텐츠 시장 활성화와 함께 큰 성공을 거둔 IPTV가 국내에서는 왜 가격 경쟁만 되풀이하고 있을까요? 단말 제조사와 통신사가 시장을 쥐고 흔드는 기존 휴대폰 시장의 생태계가 재현된다면, 아이폰 등장에 혼쭐이 났던 상황을 답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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