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위성DMB 서비스가 고사 직전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세계 최초의 모바일 방송 서비스’임을 자랑했던 이 서비스가 현재로서는 회생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도 없는 수준인가 봅니다.
위성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의 몰락은 어찌 보면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모기업 SK텔레콤의 후광과 대대적인 홍보,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곁들여져 그 출발은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모바일 방송에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에 콘텐츠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서비스가 성공을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무료인 지상파DMB는 위성DMB에 큰 위협이었고, 내비게이션 공급사 및 SKT와 손잡고 실시간 교통정보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하는 시도도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SK텔레콤은 지금까지 TU미디어에 5,0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2011년 12월 말 현재 위성DMB 가입자는 117만명인데, 이는 2010년의 185만명과 비교하면 무려 37%나 줄어든 것입니다. 이렇게 빨리 가입자가 줄어드는 서비스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들어, 상황은 더욱 좋지 않습니다. 인터넷 이용과 다양한 콘텐츠 활용에 편리한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는데다, LTE 스마트폰의 등장은 이제 모바일 단말에서도 DMB가 아니라, 실시간 방송을 보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DMB폰 생산마저 중단된 상태라고 하니, 오히려 ‘과연 서비스가 언제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까?’가 관심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약정 기간이 끝난 고객이 단말기를 교체하면 가입자는 계속 줄어들 것입니다.
유일한 위성DMB 사업자인 SK텔링크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 골몰하고 있다지만, 위성DMB의 방송용 위성은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이 금지돼 있어서 대안을 찾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SK텔링크가 홈쇼핑 채널이나 뉴스 서비스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검토하기도 했지만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해 모두 중단한 상태라는군요.
과보호한 위성DMB, 제약에 가둔 지상파DMB의 공동 위기
위성DMB의 몰락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원인은 바로 옛 정보통신부의 과보호가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위성DMB는 초기에 단말기 가격, 이용 요금이 모두 높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유사한 기술을 사용하는 지상파DMB가 등장했습니다. 모바일 방송 서비스가 없었던 KTF와 LG텔레콤이 지상파DMB 휴대폰을 공급하면서 약간의 서비스 이용료를 받고, 그것을 지상파DMB 사업자와 나누려는 계획을 세웠고, 긴밀한 협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지상파DMB 사업자들과의 논의도 순조로워서 도장을 찍는 일만 남은 상황에서, 정보통신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지상파 방송이 무료로 제공되는 공공 서비스이니, 지상파 채널을 재전송하는 지상파DMB도 돈을 받고 서비스하면 안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가정에서 텔레비전으로 지상파 방송을 보는 것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미 방송사들도 인터넷에서는 이용료를 받고 지난 방송분을 서비스하고 있는데 ‘지상파DMB는 유료 서비스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였습니다. 더구나 모바일에서 방송을 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DMB는 세계 최초의 모바일 방송 서비스였거든요.
지상파DMB 사업자들과 KTF·LGT가 아무리 반발을 해도 정보통신부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SK텔레콤의 자회사 TU미디어를 살리려고 지상파DMB 유료화를 막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유료화가 안 되면, ‘DMB칩을 탑재해 가격이 비싸진 지상파DMB 단말을 이통사들이 공급할 리가 없다’는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상파DMB 방송사들은 일단 서비스를 노출시킬 공간이 필요했고, KTF·LGT도 SKT에 맞서 모바일 방송이 필요했기에 지상파DMB는 무료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지상파DMB는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모바일 서비스로 자리를 잡았지만, 성공한 서비스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지상파DMB는 최근 철도시설공단과 지하선로 이용료 합의를 보지 못하면서 수도권 지하철 과천선, 일산선, 분당선 이용자들은 더 이상 휴대폰에서 DMB 서비스를 볼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철도시설공단은 연결을 끊겠다고 하고, 방송사들도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서비스를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6개 지상파DMB 사업자 가운데, 지상파 3사를 제외한 나머지 3개사는 이미 자본금을 다 소진한 상태라고 합니다. 중계망을 그대로 둘 경우 연체료까지 물어야 하기 때문에 도산을 면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과천선·분당선·일산선 지하중계망을 철거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정책 없는 관리·규제의 결과물
‘세계 최초’를 자랑하던 DMB 서비스가 이처럼 몰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견해로는 ‘관치(官治)’를 그 이유로 꼽고 싶습니다. 정보통신부는 국민들이 시원하게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지상파DMB 서비스의 유료화를 막았고, 그 결정은 오히려 지상파DMB 서비스의 외형적인 확산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지상파DMB의 확산은 위성DMB가 출범 초반부터 몰락의 길을 걷게 만드는 요인이 됐고, 특별한 수익 모델이 없이 명맥을 이어오던 지상파DMB도 큰 위기에 맞닥뜨렸습니다.
위성DMB와 지상파DMB 서비스가 모두 출범한 뒤부터 우리 정부는 해외의 각종 방송·통신 전시회에 DMB를 출품했습니다. DMB 서비스에 얼마나 애정이 깊었는지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가 같은 행사에 동시에 참가해 제각각 전시관을 만들어 홍보하는 코미디도 자주 벌어졌습니다. ‘세계식품박람회에 김치를 가지고 음식·문화 관련 부처와 수출 관련 부처가 동시에 출품해서 경쟁하는 꼴이 벌어진 셈’이라고 취재수첩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던 DMB를 ‘관리’할 생각만 했지, 성공시킬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장의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기술의 가치를 보호하는 것도 아닌 정책의 도움으로 서비스는 고사 위기니까 말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모바일 방송 표준을 만들었던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자신들의 표준인 DAB(Digital Audio Broadcasting)를 버리고, 우리의 DMB 기술을 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와이브로·IPTV의 미래는?
최근 몇몇 언론에서 위성DMB와 지상파DMB의 위기를 앞다퉈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DMB라는 단어에 오버랩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와이브로(WiBRO)입니다.
세계 최초의 모바일 브로드밴드 기술로 명성을 떨쳤던 와이브로의 핵심 기술은 세계 시장에서 모바일 와이맥스의 표준에 대거 반영돼 그 기술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와이브로 역시 국내에서 고사 위기입니다. 언론들이 ‘상용화 6년만에 가입자 100만 가시화’라고 치켜세우고 있지만, 초라한 성적표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와이브로는 세계 표준을 주도했지만, 정작 국내에서만 특별한 주파수 대역을 배정했습니다. 국내 시장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하지만, 꼭 그 이유만이었을까요? 이런 정책 때문에 득을 본 기업은 있겠지만, 서비스가 성공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됐습니다. 아마도 스마트폰이 좀 더 일찍 시장에 공급되고 통신사 WiFi 핫스팟이 조기에 확산됐더라면, 와이브로는 벌써 깃발을 내려야 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와이맥스포럼 의장국 인텔마저 서서히 발을 빼고 LTE를 쳐다 보는 분위기입니다.
IPTV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케이블방송 업계의 여론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통신사들에게 유리한 규정을 만들고, ‘망 중립성’ 정책도 시행하지 않은 채 출범시킨 IPTV는 출범 이후 오로지 가격 경쟁만 하고 있습니다. IPTV 출범으로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됐다는 해외 여러 나라의 사례도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글로벌 표준을 얘기하고, 글로벌 시장 개척을 부르짖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관치’는 정말 심사숙고해야 될 문제입니다. DMB는 방송사들이 하는 서비스라고 남의 탓으로 돌릴 수라도 있다지만, 와이브로나 IPTV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통신사들만의 잘못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정책 담당자가 과연 있을까요?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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