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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위안부 사진전 방해한 니콘, 한국정부가 고맙다?

【사람중심】사진작가 안세홍 씨의 일본군 위안부 사진전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안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로 고생하셨던 할머님들을 촬영한 사진을 모아 일본에서 <겹겹프로젝트>라는 사진전을 열고 있는데,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도와주세요. 니콘은 전시장을 빌려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안한다고 했지만, 외부 언론의 출입 통제및 개인이 사진 찍는 것조차 못하게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니콘측 변호사 3명이 저에게 붙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대화를 엿듣는가 하면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일제시대가 따로 없습니다”며, “니콘은 전시기간 내내 변호사를 상주시켜 저를 감시하고 꼬투리를 잡아 전시를 중단시킬 계획입니다. 여러분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세요”라고 다급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 대목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작가 본인이 직접 느끼는 현장의 분위기가 훨씬 살벌했을 것이며,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안세홍 작가는 26일에는 “전시 첫날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습니다. 건물 입구와 니콘의 홈페이지에는 할머니의 사진전에 관한 정보가 하나도 없습니다... 관람객 몇 분이 꽃을 가져다 놓았지만, 니콘은 그것마저 하지 못하게 저지하였고, 좋은 일에 쓰라며 주는 기부금도 문제가 된다며 니콘의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습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이겠죠.


안 작가에 따르면 니콘 살롱 문을 여는 순간부터 니콘 경비원들은 관람자들의 가방을 열어 확인하고,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해 몸을 검사한다고 합니다. 카메라 전문기업인 줄 알았던 니콘이 실상은 에스원, 캡스 같은 경비 업체의 경쟁자였던 모양입니다.


이날 오전 일본의 여러 우익단체들이 데모를 하고 전시장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고 합니다. 오늘(27일)도 일본 우익단체의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는데, 아직 업데이트된 소식은 없습니다.


인터넷 여론, 니콘 보다 정부·정치인 공격

어제 오늘 워낙 많은 언론들이 이 소식을 다루었기에 인터넷 여론이 궁금해 주요 기사의 댓글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니콘 카메라를 사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약속에서부터, “니콘 불매운동을 하자”는 주장, 반일감정의 표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최근 일본 극우파 인사가 위안부 평화비에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말뚝을 꽂고, “매춘부 동상”이라는 발언을 한 직후여서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인터넷 여론은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니콘 불매운동, 반일감정 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댓글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네티즌은 일본이나 니콘이 아니라, 우리 정부를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게 제대로 사과를 받지 못하는 상황, 우리 것을 주장하지 못하는 상황,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겠다는 상황을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국뻥부는 일본과 군사협정...잘~한다(킬러스)>,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우리는 일본에 할말이 없다 에휴...(ggg01)>, <한일군사협정에 이어 한일합동군사훈련을 통해 일본해군의 동해·남해안 접근을 합리화하고... 독도 접근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독도일본영토를 인정하는 결과...(세상 속으로)>, <일본 우익은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려고 국제적인 비난도 감수하는데, 우리나라 우익은...(saiba)>, <서울에서 전시하려면 반대가 많을 것이다. 대통령도 잠시 기다려달라 할 것이고...(어설픈야수)>


이 밖에도 “김구·안중근 선생을 테러리스트라 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자발적 매춘 여성이라고 규정하는 정치인들이 있는데, 일본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나?”는 내용의 글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니콘은 우리 정부나 정치인들에게 고맙다고 큰절이라도 올려야 될 판입니다. 자신들을 향해야 할 비난을 우회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가족은 피신 생활, 안세홍 작가 “12지역 전시회 강행”

애초 이번 전시회는 안 작가가 니콘 살롱의 공모전에 당선돼 정당하게 잡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니콘이 지난 5월에 전시회를 일방적으로 취소했고, 안 작가가 가처분 신청을 내서 재판에 승리한 끝에 겨우 개최된 것입니다. 니콘은 법원 결정에 못 이겨 전시회를 승인했지만, 안 작가의 사진전이 열린 공간에만 4~5명의 경비를 배치했고, 언론 인터뷰는 불허하고 있습니다.


니콘은 오는 9월 13일부터 오사카 니콘 살롱에서 개최하기로 한 사진전도 취소 통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안 작가는 또 한 번 가처분신청을 낼 계획입니다. 또, 일본 내 12곳에서 열기로 한 전시회를 강행 할 계획입니다. 안세홍 작가의 현재 가족들은 일본 우익단체의 협박을 피해 집을 떠나 피신해 있다고 합니다.


안세홍 작가의 전시회는 30평 공간에 흑백사진 37장이 전부인 작은 전시회라고 합니다. ‘작은 전시회지만 의미는 더 없이 크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시회를 아주 크게 열었어도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을까?’, ‘정부나 대기업들이 이런 전시회를 적극 후원하고 나섰어도 일본 기업이 저렇게 나왔을까?’하는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인터넷 댓글에도 이런 얘기들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본 정부나 일본 시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우리 정부와 대기업들이 후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무엇보다도 젊은 작가의 고군군투를 알게 되었고, 조국이 지켜드리지 못했던 할머님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친근한 이미지, 기술력 있는 회사로 받아들였던 일본 기업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군요. SNS의 위력, 역시 대단합니다.



지난 주 출장 때 (역사책에서 익히 들었던) 홍구공원의 <윤봉길 열사 기념관>에 다녀온 기억이 납니다. 뒤편에 매점이 있었는데 ‘판매수익은 윤봉길 열사 기념관을 가꾸는데 쓰인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팔고 있는 물건들은 조잡한 중국 제품들이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 기념관을 잘 챙기고 있는 것이라면, 매점을 보면서 기분이 상할 일은 없었을 텐데요.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는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 역사교과서 문제에서 너무도 자주 확인하고 있습니다. 안세홍 작가가 일본에서 겪고 있는 고초 또한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청산·극복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안세홍 작가의 의미 있는 전시회가 무사히 잘 치러지기를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세홍 작가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ahnsehong

안세홍 작가 홈페이지 http://ahnsehong.com/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치르기 전에 당시 세 살이었던 큰 아드님과 부인의 뱃속에 있던 둘째 아드님에게 했다는 유언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강보에 사인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 놓아라.

그리고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