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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전략과 정책

7광구에 전략통신시스템이 있었더라면...

[사람중심] 영화 7광구. 제주도 남단의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석유 시추선에서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진 해저 괴물과 7광구 작업자들이 사투를 벌이는 내용입니다.


집체만한 크기에 빠르기는 전광석화 같고, 온몸은 철갑옷을 입은 듯 다이너마이트 폭발로도 제압하기 힘듭니다. 여주인공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이 괴물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지만, 지옥같은 사투가 끝났을 때 그의 애인을 비롯한 7광구의 모든 작업자들은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죠.


7광구에 나온 것 같은 무지막지한 괴물이, 절해고도와 같은 석유 발굴 현장에 출몰한다면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동료 직원 가운데, 영화 속 하지원 정도는 찜 쪄 먹을 수준의 무공을 감추고 생활해 온 여전사가 있기만을 기대해야 되는 걸까요?


만약 제 때에 해양경찰이나 군대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면 첨단 무기들을 이용해 손쉽게 괴물을 제압할 수 있었을 테지만, 영화에서처럼 괴물이 7광구를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전화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희망은 없습니다. 영화에서도 육지와의 통화를 시도하지만, 이미 통신이 두절된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어 있더군요.


그런데,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바다 괴물이 습격하더라도 제 때에 해양경찰이나 군에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7광구 같은 특수한 작업 현장에 맞는 ‘전략적인 통신 체계’를 갖추는 것입니다.



세계 최대 '해상 천연가스 생산시설'을 책임지는 통신망

그렇다면, 이런 작업 현장에 맞는 통신이란 어떤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모든 통신장비와 단말이 폭발 및 침수 상황에서도 문제없이 동작될 수 있는 방폭형이어야 합니다. 사람보다 똑똑한 괴물이 누전을 일으켜 불이 나거나, 통신실 일부가 물에 잠기더라도 통신장비와 단말은 영향을 받지 않아야 되는 것이죠. 혹한·혹서 환경에서 성능을 안정되게 유지할 능력이 요구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최근 한국알카텔-루슨트는 세계적인 에너지 회사 쉘(Shell)이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 설비, Floating Liquefied Natural Gas) 플랜트를 위한 ‘통합 통신 솔루션’을 공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FLNG는 해상에서 부유식 천연가스의 생산, 액화, 저장 및 하역을 모두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 기술인데, Shell이 세계 최초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해양 플랜트를 능가하는 최대 규모인데, 선체 길이가 488미터로 축구장 4개를 이은 것보다 길고, 높이도 105미터나 된답니다. 올림픽 공인수영장 175개와 같은 크기의 저장 탱크를 갖고 있는데, 선체의 모든 저장탱크를 채우면, 그 무게가 세계 최대 항공모함의 6배인 60만톤에 이른다는군요.


FLNG에서는 해저에 묻혀 있는 가스를 뽑아 올려서 정제 설비를 이용해 가스에 들어 있는 불순물(황화수소, 물, 이산화탄소 등)을 제거한 뒤, 정제된 가스를 냉각 설비에서 섭씨 -162도로 냉각시킵니다. 이렇게 하면 기체가 액체로 바뀌는데 부피가 600분의 1로 줄어든다는군요. 따라서, 폭발 등의 위험에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물론,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태어났을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녀석의 등장에도 대비해야 되겠죠.


다양한 통신망·시스템 혼재…통합 능력이 관건

한국알카텔-루슨트가 맡은 일은 육지와 200km나 떨어진 바다 위 FLNG의 험난한 작업 환경에서 다른 선박이나 항공기, 육상 설비와 원활하게 통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작업 현장 운영과 관련해, 또 불시에 찾아 올 지 모르는 긴급상황의 지원요청을 위해 안정된 통신 체계를 갖추는 것은 작업자들의 안전·생명과 직결된 필수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장기간 바다 위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 육지의 가족들과 수시로 통화를 하고, TV나 비디오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통신의 역할이겠죠.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특성상, 해상 생산기지에는 다양한 통신 시스템이 총망라됩니다. IP 통신을 위한 LAN과 WAN은 물론, 육상-해상 작업자들 사이에 언제 어느 때라도 통신이 보장될 수 있도록 TRS(주파수 공용 통신) 시스템도 구축됩니다. VoIP와 CCTV, 방송 경보 장치 같은 일반적인 설비 외에 GPS나 날씨 모니터링, 수색구조용 무선응답기 같은 것도 포함되는군요. WiFi와 이동통신 시스템도 당연히 구축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복잡한 네트워크와 통신·방송 설비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일입니다. 서로 다른 네트워크에 물려 있는 시스템들 사이에 통신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어느 한쪽의 네트워크·시스템에서 하고 있는 일이나 이상징후가 다른 네트워크·시스템에 잘 전달돼야 할 것입니다. 괴물이 FLNG 한쪽에서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는 영상이 CCTV에 찍혔다면, 3G나 IP 네트워크가 망가졌더라도 TRS로 전송되어 위기상황이 FLNG 곳곳에 그리고 육지의 본사와 유관기관에 실시간으로 전파돼야 위험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겁니다.


에너지 분야의 대형 플랜트 구축에서는 통신 장비와 시스템을 어떤 회사의 것으로 구축할지를 고객이 가이드라인을 정해준다고 합니다. 라우터는 A와 B 업체 중에서, CCTV는 C, D, E 중에서 구축하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한국알카텔-루슨트는 이처럼 다양한 네트워크 및 통신·방송 설비들이 잘 통합 운영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고 구축해서 안정화시키는 통신SI(System Integration)를 맡고 있습니다. 자사의 장비만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인프라와 시스템이 결합되기 때문에 그만큼 이 분야의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알카텔-루슨트, 국내 건설·중공업사와 제휴해 대형사업 성과

한국알카텔-루슨트는 지난 2008년 한국지사에 <전략사업부문>을 만들었습니다. 교통(열차, 고속도로, 공항), 에너지(오일&가스, 유조선, 정유시설), 공공(공공안전, 전력, 국방) 분야의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전담하는 부서입니다. 


한국지사에 이런 조직을 만든 이유는 국내 5대 건설사와 3대 중공업회사가 전 세계 에너지 플랜트 시장에서 선도적 입지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국내 중공업·조선·건설사들을 한국에서부터 밀착지원하면서 해외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 보조를 맞추겠다는 것이죠. 


Shell의 FLNG 플랜트 건설사업은 삼성중공업과 Technip(프랑스)이 공동수주한 것인데, 삼성중공업이 통신SI를 한국알카텔-루슨트에 맡겼습니다. 한국에 전담 조직이 있고, 전문 인력이 직접 엔지니어링을 수주할 수 있으니 국내에서 삼성중공업 본사와 전략적 협력을 하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알카텔-루슨트 전략사업부문은 2009년 SK건설과 함께 ADCO(아부다비 육상오일운영회사)의 플랜트 사업을, 2010년에는 대우조선해양과 함께 프랑스 토탈사의 플랜트 사업을 수행했습니다. 지난해에는 현대건설과 함께 트랜스코의 발전 플랜트에 통신SI를 제공하는 등 굵직굵직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한국알카텔-루슨트 유지일 시장은 “국내 EPC(엔지니어링·구매·건설) 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세계 시장에서의 리더십과 공급 레퍼런스를 활용해 해외 프로젝트 공동수주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현재 주요 기자재 공급 및 설계·시공 서비스를 해외 제조사가 직접 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문성을 갖춘 국내 중소기업을 파트너사로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형 에너지 플랜트 사업은 보통 사업 규모가 조단위라고 합니다. 통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0.5~1% 정도라고 하니 극히 미미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망망대해 위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통신은 가족·동료를 연결해줌으로써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수단일 뿐 아니라, 불의의 사고에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해주는 생명선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현재 거제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세계 최초·최대의 FLNG 해상 플랜트는 2016년이 돼야 호주 지역 해양가스전에 투입할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시설을 조선소에서 다

만들고 나면, 여러 척의 배가 바다로 끌고 나간다는군요. 어떤 장애나 비상상황이 생기더라도 조선소로 다시 끌고 오기란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어떤 바다 괴수가 등장하더라도 신속한 통신체계를 이용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통신설비가 잘 구축됐으면 합니다. 그것이 곧 에너지 플랜트 분야에서 한국이 가진 경쟁력이 될 테니까 말입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