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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전략과 정책

지자체 전용망 업그레이드와 이상한 논란

[사람중심] 최근 '캐리어 이더넷(Carrier Ethernet)'이 통신 업계의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처음 논란이 된 것은 경기도가 통신사와 새롭게 전용선 계약을 하면서, '캐리어 이더넷' 기술을 지원할 것을 명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터입니다. 국내 통신장비 업계의 주장은 "표준화도 완료되지 않은 기술을 왜 도입하나? 국내 기업들이 개발 중이니 조금 기다리면 되는데, 굳이 이 시점에 외산 장비를 도입하려는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외국 기업에 특혜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사안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쪽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참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장비를 도입하려 한다"고 이야기했고, 몇몇 신문들이 '외산 특혜 의혹' 등을 제기했기에 행정안전부에서 “국내 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라”고 권고까지 했습니다. 


지난 달 18일, 경기도가 결국 캐리어 이더넷 장비를 도입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통신망 제공은 KT가 하게 됐고, 캐리어 이더넷 장비는 한국알카텔-루슨트가 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또 다시 국내 통신장비 제조사와 일부 IT 전문 언론들이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왜 이 문제가 통신장비 업계에서 갑자기 논란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정말 어떤 의혹이 있기는 한 것일까요? 


새로운 요구, 기업네트워크에도 통신사급 안정성을!

캐리어 이더넷은 기업용의 이더넷 즉 IP네트워크에서도 통신사업자급의 안정성과 고가용성을 보장하는 네트워크를 말합니다. 통신사업자급이라 함은 통신사의 음성, 데이터 서비스 만큼 안정성이 뛰어나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이 '캐리어 이더넷'이라는 용어가 하나의 개념이었는데, 최근에는 표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크게 세 개 그룹 정도가 캐리어 이더넷 표준화에 뛰어들어 PBB-TE와 ERP 진영은 표준화가 완료됐고, MPLS-TP 계열은 표준화가 90% 이상 진행된 상황입니다. MPLS-TP 방식 내부의 호환성과 관련된 부차적인 이슈이기 때문에 사실상 표준화가 완료된 것으로 무방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국내 통신장비 제조사들의 "표준이 완료되지 않은 장비를 굳이 도입하려는 것이 수상하다"고 하는 지적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하지만, 성능이나 기능과 관련된 다른 사안들은 모두 결정이 난 상태이니, 여러 방식을 혼용해서 쓰지 않고 한 가지 방식만 택한다면 호환성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게 통신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소규모 네트워크를 구성하면서, 여러 방식의 기술을 혼용해서 쓰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기도 합니다.


과거 지자체나 대기업의 전용네트워크에는 MSPP 기술 기반의 네트워크 장비가 구축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전달망에서 TDM 트래픽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TDM에 IP 액세스망을 쉽게 연결해 쓸 수 있는 MSPP 장비가 대세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통신사업자 전달망의 트래픽도 IP가 대부분입니다. 이렇다 보니, TDM에서 IP를 수용하는 MSPP의 시대가 가고, IP에서 TDM을 수용하는 캐리어 이더넷 장비가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비중으로 보면 IP 트래픽 : TDM 트래픽이 9:1 정도 되기 때문에 캐리어 이더넷 장비 가운데서는 아예 TDM 트래픽을 수용하는 기능이 없는 장비도 출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출처 - 블로그 [세상을 밝혀주는 IT 세상]


캐리어 이더넷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IP 트래픽의 비중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같은 규모일 때 IP 장비가 TDM 장비 보다 훨씬 저렴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전용망을 운용하는 기업이나 기관의 입장에서 비용은 적게 들면서도 훨씬 대용량 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캐리어 이더넷 장비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당연한 트렌드가 국내에서는 '의혹', '담합' 같은 지적을 받고 있죠.


"국내 기업 배제", "외국 기업 특혜" 의혹?

통신 업계에서는 캐리어 이더넷 논란의 이면에 몇몇 토종 통신장비 업체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2010년과 2011년에 경상남도와 전라북도가 전용선 계약을 갱신할 때도 캐리어 이더넷 장비를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제기가 없다가 왜 이번에 이렇게 담합 의혹을 얘기하는 걸까요?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우선 사업의 규모 면에서나 상징성 면에서 경기도가 갖는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경기도를 수주하는 것이 서울을 수주하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있고, 경기도에 수준한 실적이 앞으로 서울을 비롯한 나머지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캐리어 이더넷 사업을 수주하는데 있어 유리한 요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국산 통신장비 공급업체 입장에서 예전보다 통신 시장이 훨씬 줄어든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최근 통신사들의 인프라 투자는 무선 네트워크 투자가 대부분이고, 유선 쪽에서는 돈이 되는 백본 네트워크 투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유선 백본 네트워크 사업이 있는 분야가 바로 B2B, 즉 통신사가 기업 및 공공기관에 공급하는 전용선 시장입니다. 고객의 요청에 의해 통신사가 망을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하기 때문이죠.


또 한 가지는 토종 통신장비 업체들도 캐리어 이더넷 장비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하반기가 되면 국산 장비들이 시장에 선을 보일 텐데 왜 굳이 서둘러 외산 장비를 채택하려 하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몇 국내 기업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9~10월에 외산과 경쟁할 수 있는 국산 장비, 엄밀히 말하면 '대용량 캐리어 이더넷 장비'가 등장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캐리어 이더넷 장비를 개발 중인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대형 장비 개발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내년 상반기에도 장비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국산 장비 등장 기다려 달라" vs. "현실적으로 당장은 힘들다"

통신장비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국내 기업들은 캐리어 이더넷과 관련된 프로토콜 스택(SW)을 구입한 다음 국내에서 하우징(조립)을 하게 되는데, 일단 IP 위에 TDM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고, 장비를 대형화하는 것은 IP over WDM과는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지자체들이 장비 테스트를 몇 달 연기한다고 하더라도 안정성이 보장된 국산 장비가 도입되기는 힘들다는 것이죠. 


한 전문가는 "전략적인 국책 개발 사업을 위해 기술과 장비를 개발하면서 목표를 맞춰나가는 것도 아니고, 통신사가 고객(지자체)을 놓고 다른 통신사와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일정을 늦추자고 하거나, 안정성이 검증 안 된 장비를 써보자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통신 3사 공히 국산 장비들만 제안하기로 약속을 하고, 3사 모두 그것을 확실히 지킨다고 하더라도, 안정성으로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죠.


스토리지와의 상호운영성도 국산 장비를 제안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어떤 분야의 기업인지를 막론하고 스토리지는 거의 100% 외산을 쓰게 되는데, 공공기관이나 금융권에서는 안정성 때문에 캐리어 이더넷 장비와 외산 스토리지 벤더들의 상호운영성 인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이런 인증을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캐리어 이더넷 장비를 완성했더라도 통신사가 제안할 수 없는 것이라는군요.



광역지자체 전용망의 캐리어 이더넷 도입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MSPP(Multi-Service Provisioning Platform) 장비를 써도 문제가 없는데 왜 굳이 캐리어 이더넷 장비를 도입하느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MSPP는 현재의 트래픽을 감당하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용량의 한계가 분명합니다. KT가 현재 쓰고 있는 백본망의 TDM 닥스 용량이 640Gbps인데, IP는 테라급 장비가 나온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MSPP 용량의 한계, 트래픽 급증에 대응하기 어려워

모바일 스마트 기기의 확산,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활성화 같은 일련의 현상을 겪으면서, 우리는 '데이터 트래픽 급증'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몇 년 안에 데이터 트래픽이 몇 배로 늘어날 거다'고 하는 전망이 의미가 없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통신망을 업그레이드할 때 되도록이면 더 많은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는 기술을, 서비스를 더욱 똑똑하고 안정되게 할 수 있는 최신 기술을 채택하려는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개인용 PC에도도 이미 1기가비트이더넷(GE) 포트가 달려 나오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대기업이나 대형 공공기관들은 10GB 포트가 지원되기를 원하는 추세죠. "사용하는 회선의 실제 대역폭이 그만큼 안 되더라도 포트는 그렇게 달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는 게 통신장비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입니다.


그런데 MSPP 장비를 도입할 경우 10GB 딱 1포트면 끝이 납니다. 현재 MSPP 장비 가운데 용량이 가장 큰 것이 10GB MSPP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캐리어 이더넷 스위치는 보통 5~6U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1U에서 10GE MSPP 장비 한대의 용량을 커버합니다. 1U에서 10GE 2포트, 1GE 8포트, E1 16포트가 나오기 때문이죠.


정부가 망구축 가이드라인 결정? 장비 도입 창구 일원화?

이런 가운데, 얼마 전 네트워크멘토링센터(NMC)라는 것이 만들어진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NMC는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가 지식경제부 지원을 받아서 운영하게 된다는데, 공공기관이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필요한 컨설팅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공공기관의 네트워크 장비 도입·구축과 관련된 공식 창구라는 것이죠.


보도를 보니 '공공기관과 네트워크 공급업체가 직접 계약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사양 장비가 도입되는 등 부작용이 만연했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NMC 설립의 목적인 것 같습니다. 또, 공공기관 네트워크 구축의 가이드라인도 제시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필요한 고사양 장비 도입', '외국 기업의 로비, 특혜 의혹' 같은 논란이 제기되어 오던 가운데 발표된 내용이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발표 내용을 읽어보면서 의문이 생깁니다. 보안/인증 같은 민감한 사안이나, 웹 접근성 같은 공익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통일된 원칙을 세울 수 있다지만, 공공기관이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축하고 운영하느냐를 정해진 기준대로 행한다? '다 정해줄 테니 그대로 따르면 된다'는 것은 지금껏 듣도 보도 못했던 방식입니다. 


중앙부처나 광역지자체가 남다른 비전을 가지고, 한발 앞서 나가는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은 적극 장려해야 될 일입니다. 만약 그런 공공기관이 있는데, 여타의 공공기관들이 보편화된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고 해서 한발 앞서 고민하는 기관에 '뭐 받아먹고 저러나?'하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워크그룹 스위치가 8포트 또는 16포트인데, 이유도 없이 11포트를 가지고 있는 스위치를 필수 조건에 포함시켜 특정 공급업체에 사업을 몰아주는 꼼수와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래의 비전을 앞세워 터무니없이 비싼 장비를 도입하거나,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사례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가 있다고 해서 '기준을 정할 테니 그대로 따르라'고 한다면, 공공기관이 비전을 세우고, 미래를 대비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를 차단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고,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일은 공공기관이 가장 조심해야 될 잘못이 아닐까요?


온실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체질 만들어야

우리나라가 남들 보다 몇 발 앞서 정부 주도로 초고속인터넷 강국의 기반을 닦을 당시에 다른 나라에서 비웃는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발 앞을 내다보고 추진했던 정책이 'IT 코리아'의 기초가 됐습니다. 국산 장비 사용을 장려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국산 장비'만을 강조한다고 통신 기술 경쟁력이 높아지지는 않을 겁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금까지 외산 장비의 텃밭이었던 통신사업자 IP 백본 스위치 시장에 당당히 입성한 토종 통신장비 기업의 사례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출처 - 블로그 [사이좋게 지내자]

이미 보편화된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이런저런 이유로 문제 삼기 보다는, 미래를 이끌어 갈 기술이 어떤 것인지 연구하고 그것을 함께 만들어 감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경쟁력을 갖춰 나가는 일에 정책 당국의 의욕과 지원이 투입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온실 속 화초는 온실 속에서나 보기 좋은 꽃일 뿐입니다. 온실 밖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DNA를 갖추도록 독려도 하고, 지원도 하지 않는다면, 매번 기술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려 줄 건지요?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