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휴대전화 업계와 통신 업계를 막론하고 최고의 고민거리는 스마트폰입니다. 사실 최근 광고에서 스마트폰이 아닌 일반 휴대폰, 이른바 ‘피처폰’을 본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통신사업자에게는 스마트폰이 중요한 전략의 한 부분입니다. 아이폰을 국내에 들여온 KT가 일거에 무선인터넷 시장을 장악한 것도, 아이폰을 들여온 것 때문에 삼성전자에 밉보여 신형 단말기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스마트폰이 통신사업자의 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스마트폰의 문제가 단말기 제조사 쪽에서 보면 전략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단순히 ‘컴퓨터의 역할을 일정부분 대신할 수 있느냐’를 평가하는데 그치지 않고, OS와 애플리케이션까지 포함하는, 모바일 단말의 생태계 전반을 평가하는 주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휴대전화 제조사들 사이에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고민거리가 되는 모양입니다. 애플 아이폰에 맞설 뾰족한 대안이 없던 전세계 제조사들에게 안드로이드는 가뭄 끝 단비와도 같은 존재이지만, 그 자체로 또 고민거리이기도 합니다.
최근 팬택이 내놓은 최신 스마트폰 ‘베가’에는 ‘with Google’이라는 마크가 찍혀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OS를 가져다 쓰는 제조사들이 OS를 변형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획된 일종의 인증이라네요. 올해 연말쯤 선보일 진저브레드(안드로이드 3.0)부터는 제조사들이 구글의 UI만 사용하도록 강력히 제한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오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가 등장했을 때 ‘구글에 종속될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가 있었고, 구글이 인증을 강화하자 ‘안드로이드 종속이 현실화됐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만, 사실 OS를 만든 입장에서는 최대한 원래 모습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구글 인증 또는 구글 종속이 아니라 휴대전화 제조사들의 처지입니다.
구글은 이미 안드로이드와 관련해 일정 이상 변형을 하면 구글의 핵심 서비스를 쓰지 못하게 제한하는 정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바일 G메일 같은 것을 쓸 수 없게 하는 것이죠.
이러한 구글의 정책에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뜻대로 OS를 변형시킨 거의 유일무이한 사례가 차이나텔레콤이라고 합니다. 수억 명에 이르는 고객을 보유했고, 해외 진출의 부담이 없다 보니 메일이나 검색 등의 주요 서비스에서 구글의 틀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색깔을 입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단말 제조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자신 있게 탑재할만한 OS를 갖지 못한 상황에서는 안드로이드가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안드로이드 가지고도 아이폰에 대응하기 쉽지 않은 형국입니다.
여기에 단말 제조사들의 고민이 있습니다.
과거 ‘제조’의 시대에는 어떤 재질로 표면처리를 했는지, 얼마나 얇은지, 어떤 새로운 액정을 써서 화면이 얼마나 선명한지, 카메라 화소수는 얼마나 높은지 하는 것들이 휴대전화를 평가하는 기준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기업들이 이런 부분에서 차별화를 많이 해 세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애플 아이폰이 나온 뒤로는 휴대전화의 평가 기준은 ‘제조’가 아니라 ‘지능’이 되어 버렸습니다(‘보다 똑똑한 휴대전화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하면 더 정확할까요?) 그리고 이 ‘지능’을 좌우하는 것이 OS입니다.
아이폰의 약진에 놀란 휴대전화 분야 전통의 강자들이 부랴부랴 대안으로 선택한 지능이 바로 안드로이드인데, 안드로이드는 크게 변형할 수 없다는 약간의 제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안드로이드를 가져다 쓰는 제조사들 간에 차별화를 할 수 있는 요소가 약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능’을 선택했는데 지능으로 차별화를 하기 힘들어지니 다시 ‘제조’로 차별화를 하려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기능, 저런 기능 우리도 다 된다. 그리고 화면이 훨씬 더 선명하다...’ 뭐 이런 식인 거죠.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안드로이드를 가져다가 자신들만의 UI를 만들었습니다. 제조사들마다 경쟁력을 내세우지만, HTC가 가장 낫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라고 들었습니다. 삼성전자도 자사 UI만의 장점을 내세우고 있죠.
그런데 이와 관련해 한 전문가는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에 자신들만의 기술을 더해 새로운 UI를 만들었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면 ‘자기 방식의 최적화’ 정도라고 평가했습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윈도 모바일 스마트폰을 구분하는 것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는 겁니다.
이 전문가는 또 “서로 자기네 UI가 낫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상대방의 UI에서 더 나은 점이 있어도 채용하지 않는 것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별 것도 아닌데 배끼는 것이 창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덧붙였습니다.
휴대전화 제조사들의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설사 독자 OS를 만든다고 해도 그 고민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애플 아이폰의 강점 또는 성공에는 OS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튼튼한 생태계라고 합니다. 이미 애플은 이 생태계가 너무 잘 만들어져 있는데, 개별 제조사들이 이 같은 생태계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결국 구글이 만들어놓은 생태계에 속할 수밖에 없고, t이그렇게 되면 구글이 만들어놓은 규칙을 어느 정도는 따르지 않을 수 없겠죠.
‘혁신’은 정말 쉽지 않은 것인가 봅니다. 전세계 내노라하는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아이폰 하나를 따라잡지 못하니 말입니다.
휴대전화 분야에서 다음 번 혁신은 누가 하게 될까요? 노키아, 삼성, 모토로라, HTC, 소니 에릭슨 중 하나일까요? 아니면 애플이 새로운 혁신을 하거나, 제 3의 누군가가 나타날까요? 이건 휴대전화 제조사들에게는 더없이 끔찍한 상황이겠네요. 하지만 사용자들은 그만큼 행복해지겠죠.
이왕이면 애플 이외의 누군가가 나왔으면 합니다. 그래야 그 도도함이 조금 누그러들 것이고(애플 때문에 기존 휴대폰 강자들의 콧대가 꺽인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지금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 훌륭한 단말들을 체험해볼 수 있게 됥 테니 말입니다.
<사람중심 김재철>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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