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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전략과 정책

존 챔버스의 자기반성…시스코는 과연 위기인가?

【사람중심】 IP 네트워크 분야 세계 1위 기업 시스코시스템즈의 존 챔버스 회장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최근 직원에게 보낸 편지 때문입니다.

존 챔버스 회장은 이 편지에서 “시스코가 좋은 전략을 세웠지만 길을 잃었고, 직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고 인정했다고 합니다. 언론은 이 같은 표현을 놓고, 회사의 위기를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존 챔버스 회장의 이런 자기 반성은 단순히 서버(UCS) 사업에 진출한 것만 놓고 하는 얘기는 아닌 모양입니다. “지난 몇 분기 동안 시장을 놓쳐 투자자를 실망시켰다”면서, “그동안 의사 결정이 늦고, 실행에는 게을렀으며, 사업을 확장할 때 원칙이 부족했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니까 말입니다.

존 챔버스 회장의 편지는 앞으로 변화하는 노력이 있을 것이라는 의지도 담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잃었던 것을 되찾아야 한다. 향후 몇 주 동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는군요.

● 초심을 잃은 문어발식 사업 확장?

이러한 자기 반성과 관련해 시장 분석가들은 시스코가 네트워크의 본류에서 벗어나 협업 솔루션, 서버 등으로 사업을 확대함으로써 핵심이었던 네트워크 사업을 축소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존 챔버스 회장이 위기론을 인정한 것을 계기로 사업 영역이 재조정되리라는 예상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시스코는 지난 분기에 주가가 적잖이 떨어지는 굴욕을 겪기도 했습니다. 쓰리콤을 인수한 HP가 강력한 경쟁자로 대두되고, 주니퍼네트웍스도 약진을 거듭하면서 스위치 분야의 수익성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으로 얘기됩니다. 야심차게 뛰어든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시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경쟁사나 일부 시장 분석가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사업 영역의 구조조정이 있지는 않을 모양입니다. 존 챔버스 회장은 다섯 가지 핵심 사업영역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코어 라우팅, 스위칭 및 서비스, 협업, 데이터센터 가상화 및 클라우드, 비디오 사업이 그것입니다.

시스코가 초심을 잃었다거나, 네트워크 본래 영역에 소홀하다는 지적은 너무 표면적이라는 것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네트워크 장비 업체는 오로지 라우터, 스위치 사업만 해야 되는 것일까요? 용량이 더 큰 라우터·스위치, 지능이 더 향상된 라우터·스위치를 개발했다고 그것이 저절로 팔려 나갈까요?

필요성을 느껴야 시장은 움직입니다. 시스코는 텔레프레즌스나 UC처럼 비즈니스를 혁신할 수 있는 새로운 애플리케이션들을 시장에 제시하며, 그것의 장점을 취하고 싶은 고객들은 새로운 라우터·스위치를 사라고 말합니다.

인터넷 환경이 모바일 중심으로, 비디오 중심으로, 양방향성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시대의 네트워크는 풍부한 미디어 환경을 지원해야 하고, 선의 유무에 제약받지 않아야 되며, 실시간 협업을 할 수 있고, 보안이 철저하며, 쉽게 운영할 수 있으며, 에너지 효율성도 좋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나와라, 가제트 만능팔!’과 같은 네트워크가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시스코는 한발 앞서 텔레프레즌스나, UC같은 서비스를 던져놓음으로써 미래의 네트워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해 왔다고 생각됩니다.

● 결과가 안 좋았으니 실패한 전략이다?

그렇다고 시스코가 네트워크의 본류에서 멀어진 것은 아닙니다. 2009년의 수치지만 시스코는 당시 매출이 적잖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R&D에 52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전체 매출의 14%에 이르는 것으로, 라우터·스위치 기술 개발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매출이 줄어드는 데도 R&D 투자를 늘리는 것은 초심을 잃은 기업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저는 시스코 찬양론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존 챔버스 회장이 시스코의 위기를 인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전략의 오류 때문이었다고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결과가 안 좋으니, 전전략·방침이 잘 못된 것이다”는 논리는 인정받기 힘듭니다. 한글도, 거북선도, 비행기도 심지어 안드로이드OS도 시작할 당시에는 무모한 전략을 실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이 2007년에 첫 스마트폰을 내놓을 때 기자들이 “컴퓨터 제조사가 왜 휴대전화 사업에 뛰어드는 거냐?”고 묻자, 스티브 잡스는 “우리는 휴대전화를 새로 발명할 생각이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통신사들과 휴대전화 제조사들로부터 비난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휴대전화 제조사가 애플이 제시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시스코가 데이터센터의 가상화·자동화를 골자로 ‘데이터센터 3.0’이라는 아젠다를 만든 것이 벌써 6~7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시스코가 웬 데이터센터 가상화?”라는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얘기하는 시장의 ‘제 1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구현할 솔루션으로 선보인 것이 UCS와 넥서스 스위치 같은 시스템들입니다. UCS가 발표되자 시스코의 서버 아키텍처가 IBM·HP보다 1년 이상 앞서 있다고 평가한 컨설팅 회사들도 있었습니다. X86 서버를 가상화하고, FCoE로 케이블링을 단순화하고, 가상화 스위칭 기술로 클라우드 서비스의 안정성·유연성을 보장하는 것은 이제 서버·네트워크 업계의 공통 과제입니다.

● ‘나는 컨설팅이다’… 체질 개선의 조급증은 없었나?

시스코의 전략과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이 다 맞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큰 흐름을 짚어 나가는 데 있어서 심각한 오류는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보다는 의사 결정이 늦다거나, 사업을 확장할 때 원칙이 부족했다고 인정한 부분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취재를 하면서 주워듣는 얘기들로 비추어 볼 때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시스코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론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우선 의사 결정이 느려지는 문제는 조직이 커지면서 당연히 뒤따르게 되는 것인데,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잘 고쳐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스코뿐만 아니라, IT 업계의 대표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벤처기업이었을 때와 같기를 바란다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지만, 느린 의사 결정이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시스코 채널들에서 이런 지적이 많이 나옵니다. ‘업무 프로세스 단순화’ 얘기가 나왔으니 구조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봐야 되겠습니다.

시장에서는 시스코가 컨설팅을 강조하면서 원칙이 흔들렸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체질을 개선하는 것에 조급증을 갖다 보니 기존의 영업 방식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만과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 준비는 덜 되어 있는데 관련된 역할만 여러 조직에 분산돼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업적인 혼란을 정돈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고 하는데, 이런 문제와 관련된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 진짜 실패는 꼬리를 내리는 것, ‘핵심사업 고수’에 한표

텃밭에서는 추격이 거세고, 새로 진출하는 시장에서는 견제가 심합니다. 수익은 줄고, 주가는 떨어졌습니다. “이제 시스코는 더 이상 벤처가 아니라, 인텔이나 HP, MS처럼 IT에서 출발한 공룡기업이 된 것 아니냐? 그래서 사업은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데, 일하는 프로세스는 느려진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올해 초 주가가 떨어진 것을 계기로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스코가 보여준 행보는 나름의 전망 속에서 일관된 여정을 따라 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IT 산업이 가야 될 방향을 제시하는 데서도 의미 있는 역할이 있었습니다. 절대강자로서 횡포가 있었다면 그것은 전략을 평가하는 것과 다른 차원에서 짚어봐야 될 문제입니다.

위기를 인정했다는 점에 미소를 짓는 측이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핵심가치로 삼은 사업 영역은 고수하겠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측도 있을 것입니다. 안타까움의 이유는 시스코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냐에 따라 상반되게 나타나겠죠.

어쨌든 변화의 의지를 가졌다고 하니 어떻게 변화할지는 시스코의 몫입니다. 변화가 필요하지 않은 조직이란 있을 수 없고, 시스코 역시 변화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존의 다섯 가지 사업 원칙을 깨지 않겠다고 한 것에는 관전자 입장에서 한 표를 던지고 싶네요.

(다시 강조하지만, 저는 시스코 찬양론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시스코가 성공하면 저에게도 혜안이 있었던 것이고, 실패하면 시스코의 전략과 실행에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저 나름의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실패란 성공하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스코가 중간에 포기하거나 핵심 사업을 축소한다면 그것은 진짜 실패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가올 변화가 현재의 전략을 더욱 빠르게, 합리적으로 밀고 가는 역할을 한다면 시스코는 어쩌면 ‘데이터 네트워크 분야의 유일한 공룡’에서 ‘IT 산업의 맹주 가운데 하나’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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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