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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보안

방통위의 ‘국산 우수 백신 목록’, 이용자 신뢰도는 반영됐나?

[사람중심] 국내에서 제작·판매되는 PC 악성코드 제거 프로그램 가운데 2/3 정도가 악성코드를 제대로 적발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지난해 컴퓨터 백신 제품 실태 조사를 한 결과, 77개 업체의 백신 202종 가운데 58%인 118종이 ‘성능 미달’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이 조사에서는 3,000개의 악성코드 샘플 가운데 1/3인 1,000개 미만을 악성코드로 분류하는 백신이 ‘성능 미달’ 판정을 받았는데, 118개 제품 가운데 82개 제품은 정상적으로 치료한 파일이 10개도 안 됐다고 합니다. 정상 파일을 악성코드로 잘못 인식한 제품도 105개나 됐다고 하네요. 컴퓨터 백신이라고 부르기도 우스울 정도입니다.

방통위는 “이런 백신을 사용하면 악성코드 피해를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파일을 잃거나 유료 서비스일 경우는 비용만 날린다”고 주의를 당부하는 한편, 이들 제품 생산 업체에 개선을 요청하고, 다음툴바와 V3 Lite, 알약 2.0 등 우수 백신 12 종을 선정해 공개했습니다.

3,000개 악성코드 샘플 중 3분의 2 이상을 탐지하고 필수항목을 준수한 제품이 우수 제품으로 선정됐는데 ‘다음 툴바’, ‘노애드’, ‘V3 36 클리닉’, ‘V3 라이트’, ‘바이러스체이서 8.0’, ‘알약 2.0’, ‘nProtect AVS 3.0’, ‘바이로봇 Internet Security 2011’, ‘내주치의 닥터’, ‘U+ 인터넷 PC 안심이’, ‘네이버 백신’. ‘B인터넷클린’ 등입니다.

방통위의 이번 발표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습니다. ‘제대로 구실을 못하는 백신에 서비스 비용만 날렸다’는 하소연에, 성능 미달 업체를 처벌할 법적 규제 수단이 없는 것과 관련한 불만도 적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이 방통위가 선정한 우수 백신 리스트와 관련한 내용들입니다.

한 네티즌은 “방통위 선정 우수 백신 ㅋㅋ 방통위답다. 방통위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명단이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아마, 이 같은 내용에 공감하는 백신 사용자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PC 사용자들은 국산 백신 프로그램을 잘 믿지 않습니다. 컴퓨터에 뭔지 모를 문제가 생겨 국산 백신 프로그램으로 검색을 하면 악성코드가 없다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방법을 바꿔 외산 무료 백신 프로그램을 돌리면 갑자기 컴퓨터에 침투한 악성코드 목록이 줄줄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경험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PC 사용자들이 국산 보안 제품을 믿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전세계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 성능에서 방통위가 우수하다고 발표한 제품들 중 일부가 매우 낮은 순위에 있을 뿐입니다.

최근 한 국내 보안업체가 금융거래 보안 솔루션을 미국 대형 은행에 수출한다고 발표하자, 인터넷에는 ‘국제적 망신이 될까 걱정’이라거나, ‘광우병을 가져오고 그 제품을 수출했네’하고 비꼬는 글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토종 보안 제품에 불신이 큰 것입니다.


방통위는 이러한 사용자들의 불만을 모르는 것일까요? 물론, 상당수 국민들은 악성코드 공격에 무감각하거나, PC에 문제가 생기면 AS센터나 동네 수리점에 연락해 해결을 하고 있으니 국산 보안제품이 어떤지 관심조차 갖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산 백신 제품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 공공기관들이 많이 쓰고 있어서 점유율이 높다고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국산 백신 제품의 2/3 가량이 형편없는 제품이라는 발표를 했다고 해서 관심을 갖고 살펴봤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습니다. 그 와중에 우수한 제품의 목록을 공개했지만, 그 목록을 믿기는 뭔가 꺼림직합니다. 내 PC가 악성코드의 공격을 받지 않기를 기도하거나, 각자 알아서 해외 백신 순위 사이트를 뒤져 보안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하는 건지요?

PC는 이제 일과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도구입니다. 스마트폰도 PC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이버 보안 위협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불량 백신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부가 좀 더 강력하게 대응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스마트폰앱을 심의하는 것보다는 훨씬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