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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중소기업 IT투자 회복 조짐? 글쎄…

【사람중심】 중소기업(SMB)들의 IT 투자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합니다. 며칠 전 한국IDC는 ‘올해 안에 국내 SMB 기업들의 IT 투자가 경기침체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는 힘들겠지만, 투자 의지는 살아나고 있다’는 조사내용을 발표했습니다.

한국IDC는 공신력 있는 시장조사 전문업체여서 여기서 나오는 발표 내용을 유심히 보기도 하고, 자주 인용도 합니다만, 이번 발표 내용은 사실 잘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한국IDC의 발표를 반박하거나 트집 잡으려는 것은 아니고, 주위에서 들려오는 시장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정부기관들의 여러 발표들을 보면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 지표들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까요.  월드컵만 가지고도 3조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할 지경이니까요(이 라디오 뉴스를 듣던 택시기사 아저씨 왈 "그 돈 다 어디갔냐?").


그런데 IT 현장에서 들리는 얘기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여전히 불경기’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2008년 이후 꾸준히 안 좋다’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걱정하는 IT 기업의 영업 담당 임원에게 “그래도 SMB 쪽은 투자의지가 살아나는 추세라면서요?”라고 묻자, “그것은 그야말로 ‘의향’일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투자하고 싶은 마음과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별개라는 얘기입니다.

그는 “중소기업들이야 몇 년 간 IT 투자를 못했으니, 당연히 투자하고픈 바람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마음먹은 만큼 투자할 수 있으면 무슨 걱정이겠냐?”고 말하더군요.

많은 IT 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투자할 것인지 여부는 대기업이 투자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를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 경제의 구조상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 재하청을 받는 사업 모델입니다. 독자적인 제품·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대기업이 IT 투자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투자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어려울 겁니다.

대기업도 제대로 매출을 올리고, 수익이 나야 투자를 할 텐데, 대기업이 투자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기업을 바라보고 사는 대다수 중소기업의 투자가 살아나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설령 경기가 아주 나쁘지는 않은 편이라 하더라도, 어떤 이유 때문에 대기업이 돈을 풀지 않고 있는 상황이면 중소기업의 투자는 발이 묶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이 IT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 장작 걱정스러운 것은 IT 투자가 기업의 경쟁력 사이에 상관관계가 갈수록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기업이 가진 기술이나 정보, 경험치가 디지털 정보로 저장되고, 이것들이 수치로 정량화되어 기업들이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주는 IT 솔루션들이 공급되는 세상입니다. 당연히 이러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기업들은 굳이 많이 허비하지 않아도 될 시간·돈·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고,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 나라들 가운데서 IT 활용이 최하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통신 인프라는 최상위권인데 이 인프라를 인터넷 검색 외에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죠. 더욱이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IT 투자·활용 격차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구조를 ‘2step’ 경제구조라고 부른다고 하는군요.

최근 ‘클라우드 컴퓨팅’이라고 하는, IT 시스템·솔루션을 직접 구입해서 설치하지 않고, 빌려 쓰면서 쓴 만큼만 비용을 낼 수 있게 하는 기술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술도 중소기업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아마존처럼 저렴하면서 효율적인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고, 대기업들만이 고가의 솔루션을 도입해 계열사에 서비스하는 실정입니다.

더욱이 한국IDC가 매출 기준으로 대기업은 3,000억원 이상, 중견기업은 1000~2999억원, 중기업은 500~999억원, 소기업은 100~499억원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기준에서 소기업에도 못 끼는 기업들이 훨씬 많을 텐데, IT 기술을 이용해 이처럼 작은 기업들의 사업환경을 개선하는 논의는 기대하기조차 힘든 실정입니다.

정부 경제 정책이나 지원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는 중소기업은 IT의 혜택에서도 소외되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과거에 꽤나 유용했던 경제논리처럼 IT 분야에서도 ‘일단 대기업이 잘 돼야 중소기업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요?

‘닌텐도 같은 것’, ‘한국형 스티브잡스 육성 정책’으로 대변되는 「IT 정책 부재’의 시대」에 제대로 된 중소기업 IT 지원 정책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중심 김재철>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