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주니퍼네트웍스가 한국 지사장으로 채기병 전무를 승진 임명했습니다. 신임 채기병 지사장은 2003년 한국주니퍼네트웍스에 합류했으며, 최근까지 통신사업자 영업본부를 총괄해 왔습니다. 지난 10월 말 강익춘 전임 지사장이 퇴임한 뒤 지사장 업무를 대행하며, 대내외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쏟아 왔습니다.
주니퍼네트웍스 아시아 담당 케빈 액커스트 부사장은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초고속인터넷의 성장은 폭발적이다. 아울러 고객들의 혁신 의지 또한 대단히 크다. 따라서 주니퍼의 ‘뉴 네트워크(New Network)’ 비전은 이러한 시장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면서, “주니퍼 입사 이후 꾸준히 역량을 발휘해온 채기병 신임 지사장의 리더쉽과 혁신이 한국의 고객, 파트너, 직원들에게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주니퍼, 신임지사장에 채기병 전무 승진발령
사실 IT 업계에서 유명 외국계 기업의 지사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 온갖 소문들이 돌아다니곤 합니다.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누구누구가 물망에 올랐다’는 소식이 며, 그 중 특정인물과 관련된 나쁜 소문에 이르기까지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이렇게 무수한 소문들 속에서 수개월이 지나는 동안 가장 힘든 사람들은 그 지사의 직원들입니다. 새 지사장은 누가 될지, 그가 누구를 데려올지, 조직은 어떻게 흔들어 놓을지... 어우선한 분위기를 해결할 길이 없으니까요. 주니퍼 한국지사의 신임 지사장 임명 소식은 최근 IT 업계에서 보기 드문 소식입니다. 지사장을 내부에서 승진 발령했기 때문입니다. 직원이 수십명 규모인 지사에서는 정말 드문 일이죠. 주니퍼네트웍스는 만 10년 동안 한국지사를 이끌어 왔던 강익춘 전 사장이 벤처기업에서의 도전을 위해 자진 사임한 이후 약 한달 간 지사장 공백 상태였는데, 내부에서 채기병 전무를 발탁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네트워크 업계의 외국계 지사장 자리가 네트워크 분야에 경험이 없는 인사들에게 돌아가는 일이 되풀이되어 왔습니다. 해당 분야를 잘 모르는 인물이, 그 인물의 정확한 정보(평가)를 얻기가 쉽지 않은 본사(및 아태지역)의 결정에 의해, 지사 직원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결정되었습니다.
네트워크 분야에 유독 인재가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결정은 지사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력서의 ‘어디어디 출신’ 또는 ‘지사장 유경험자’라는 조건만 보고 지사장을 뽑았으니, 정작 본사가 새로운 지사장에게 바라는 항목들은 제대로 검증해 볼 방법이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더러 망가져 가는 지사들도 생겨납니다.
외국계 지사장 선임의 나쁜 본보기들
이렇게 간판만 보고 뽑은 지사장은 지사 내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해당 분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서 자신만의 방식을 밀어붙이거나, 그 분야에 경험도 없는 ‘자기 사람’을 여기저기에 꽂아넣습니다. 당연히 기존 인력들과 불화가 생길 가능성이 적지 않고, 전략이 제대로 세워지기도 힘이 듭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운이 좋았는지 꽤 경쟁력 있는 IT 기업의 지사장에 오른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사장이 됐다는 소식에 이전 직장의 동료들은 하나 같이 “그 사람이 왜?”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나오게 된 이유가 ‘무능력’ 때문이라는 것이 한결같은 평가였죠. 그런데 그가 새로운 회사의 지사장이 되고 나서 유일하게 하는 일은 ‘매일 저녁, 영업사원들을 무조건 회사로 불러들여 그날 업무를 보고받고 퇴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불만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만 그의 주변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사의 핵심 분야가 한국에서 급성장을 해 몇 년 간은 별 탈이 없었는데, 올해 들어 이 회사의 매출이 갑자기 급락했습니다. 그 동안 급성장을 즐기고 있었기에 새로운 먹거리도 발굴해 놓지 못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걱정이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내년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 지사장뿐입니다.
모든 조직이 이렇게 되리라는 법은 없지만, ‘우리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법도 없습니다.
지사장을 제대로 뽑지 못하면 채널 파트너와의 관계도 틀어집니다. 외국계 기업들은 거의 대부분의 영업을 채널을 통해서 하게 됩니다. 서로 뜻을 맞추고 의기투합해서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 길동무인 거죠. 그런데, 그 회사의 사정을 잘 모르고, 해당 분야의 경험도 없는 지사장이 임명되면 채널과의 관계가 틀어지기가 다반사입니다. 지사장이랍시고 채널을 무시하거나, 해당 분야를 잘 모르면서 자기 고집대로 채널을 끌고 가려고 하거나, 자신과 친한 회사를 채널로 영입하기도 합니다. 손발을 다 묶어놓고 검투장에 나서겠다는 꼴입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채널들이 돈도 안 되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열심히 해서 기반을 닦아 놓았고, 새 지사장이 취임과 함께 시장이 열려 영업이 급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채널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전 지사장은 늘 채널 파트너의 입장을 대변하고,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챙겨주려고 애썼는데, 신임 지사장은 채널의 마진을 자기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영업이 잘 되니 울며겨자먹기로 채널을 하고 있지만, 오래는 못 갈 것 같다”고 말합니다. 최근 영업이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는데, 과연 채널들이 의리를 지키려고 할까요?
좋은 인력은 늘 회사 밖에 있다?
다국적 IT 기업들이라고 이런 뻔한 이치를 모르지 않을 텐데, 늘 지사장을 뽑을 때가 되면 ‘혹여나 지사 인력들에게 소문이 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늘 ‘회사 외부에, 다른 분야에 좋은 인력들이 있다’고 스스로를 쇠뇌하는 것 같습니다.
주니퍼는 이번에 참으로 드물게도 내부 인력을 지사장으로 승진 발령했습니다. 그것도 전임 지사장이 퇴임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내린 결정입니다. 지금 같은 불경기에, 지사장까지 공석이고, 외부의 이런저런 인물이 거론되어 뒤숭숭하기를 바라는 경쟁사들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지사장 문제가 빠르게 그리고 직원들이 바라던 방향으로 정리됐으니 주니퍼 한국지사는 별 동요가 없는 듯합니다.
특히 채기병 지사장의 선임은 전임 강익춘 사장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고, 본사가 한국지사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루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외국계 기업의 한국지사가 바라는, 지사장 선임의 가장 이상적인 방법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직원의 의견이 최우선’, ‘파트너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 같은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기업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외국계 기업들이 헤드헌팅 회사에만 의존해 지사장을 뽑는 관행은 그들이 ‘가족’이라고 얘기하는 지사 직원과 채널 파트너 입장에서 보면 사기를 떨어뜨리고,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소개했던 사례처럼, 비즈니스를 망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훌륭한 영어 실력, 출신 대학, 유명 IT기업 근무 경력. 지사장 경험의 유무. 다국적 기업들 중 어디라도 지사장을 뽑는 기준 가운데 앞에 열거한 네 가지가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기업은 없을 겁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 기업의 인재 채용 기준이나 철학이 놀림감이 될 것이니까요.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뽑고 있습니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점점 더 이 기준만을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잘 되는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주니퍼와 같은 사례가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래야 한 분야에, 한 회사에 오래 몸담고서 열정을 다해 일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가치가 인정받는다면, 회사를 위해 곁눈질하지 않고 땀을 흘리는 인재들이 많아질 겁니다.
관련기사 - 챔버스, 시스코 한국지사장은 왜 내부승진 없나요?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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