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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아이리스 vs. 아이티리스(ITless)

화제의 드라마 아이리스(IRIS)가 지난주 17일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아이리스는 호화 캐스팅, 국내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스케일 등 드라마 내용과 규모는 물론, 한국영화사에 블록버스터의 문을 연 영화 ‘쉬리’의 영문 제목을 거꾸로 나열해 지었다는 드라마 제목과 관련한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의 모든 요소가 화제였죠.

물론, 극 전개나 이런저런 상황에서 개연성이 떨어지기도 한 탓에 드라마를 한회도 빼놓지 않고 보면서도, 치밀한 이야기 전개가 인기의 원천이 되는 외국의 첩보·액션 드라마를 따라 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도 뭐. 첫술에 배부를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꼬투리조차 밟히지 않은, 그 무시무시한 비밀조직(아이리스)이, 몇 명 안 되는 우리편 주인공들한테 맨날 얻어터지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게 얘기를 풀어갈 수 있는 내공이 언젠가 쌓일 거라고 봅니다.

제가 그래도 IT 분야에 오래 몸담고 있는 C급 기자이다 보니, 오늘은 드라마 아이리스에 나온 IT와 관련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이리스에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드라마 보다 IT 기술·제품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첨단을 달리는 조직들 간의 대결구도인 만큼 IT 제품이 드러나는 빈도가 이전 드라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또 그 아이템 또한 지금까지 드라마에 잘 나오지 않던 것들이었죠.

그런데 아쉬운 것은 IT를 통해 주인공들이 얼마나 최정예 조직인지, 순간순간 얼마나 긴박한 상황에 놓였는지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IT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더군요.

아이리스에 나온 IT 분야의 주요 아이템을 놓고, 제 나름대로 느낀 허술함? 또는 아쉬움? 뭐 하여간 그런 것들을 얘기해보겠습니다.


한쪽 귀를 막아주는 블루투스 헤드셋

우선 ‘블루투스 헤드셋’입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휴대전화로 통화를 할 때 전화기를 조작하지 않고도 통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요즘은 귀에 블루투스 헤드셋을 걸고 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이 장치를 애용하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특히 이번 드라마에 나온 제품들은 제가 평소에 잘 보지 못했던, 탐나는 디자인의 제품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각종 총기류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아이템이었던 블루투스 헤드셋은 제 역할을 못 해내고 있었습니다. 주인공들이 급박한 순간에 블루투스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으면서도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기 일쑤였거든요. 정말 황당 시추에이션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블루투스 헤드셋을 항상 너무 잘 보이도록 촬영이 되어 있었다고 하면, 제가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걸까요? 하여간 블루투스 헤드셋의 용도는 상당 부분 ‘한쪽 귓구멍을 막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한 가지, 제가 블루투스 마니아이다 보니 눈에 거슬렸던 점인데, 주인공들이 블루투스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제대로 통화가 될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블루투스 헤드셋의 마이크 부분이 주인공들의 뺨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게 다반사였는데, 오랜 경험에서 볼 때 이렇게 착용하면 상대방이 내 얘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합니다. 소리가 엄청 울리고 탁해지거든요.

사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데, 저는 워낙 블루투스를 워낙 즐겨 쓰는 사람이다 보니 왠지 그런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통령 : TP 준비하세요.  
어머니 : 뭐라카는기고?

다음으로,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입니다. 아이리스에서는 영상회의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했는데, 그 자체로도 놀라운 일이긴 했습니다.

드라마 내내 개인용 모니터에서 영상회의를 하는 모습만 보여주다가, 갑자기 마지막 회에 텔레프레즌스가 나왔습니다. 서프라이즈! 그런데, 테러범들이 대형 쇼핑센터에서 100여명의 인질을 잡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텔레프레즌스 회의실을 여러 차례 왔다갔다 하며 대책을 논의한다는 게 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청와대에서 테러 현장과 첩보기관 사무실을 동시에 연결해 영상회의를 하는 살뜰한 배려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현장 상황은 구두로 보고 받으면서 수사요원 얼굴 보면서 대화를 하면 답이 나올까요? 차라리 테러현장에서 첩보기관으로 실시간 전송한 동영상을 대통령에게도 보내 이걸 같이 보면서 회의를 했으면 더 긴박감도 묻어나고 좋았을 텐데요.


또 한 가지 당황스러웠던 것은 대통령이 “TP 준비하세요”라고 말한 장면입니다. --;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중 몇 사람이나 알아들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함께 시청하시던 저희 어머님께서 한마디 하시데요. “뭐라카는기고?”

이걸 공급한 회사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던 자신들의 주력 제품 명칭이, 그것도 인기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등장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마는...

드라마 막판의 중요한 순간에 대형 텔레프레즌스룸을 수시로 보여준 것이나, ‘텔레프레즌스’라는 말도 생소해 죽을 판에, 대통령이 더 알아듣지 못할 ‘TP’라는 말을 쓴 것 까지...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엔딩 자막에 표기됐던, IT기술협찬 시스코시스템즈에 보내는 진한 애정과 감사의 마음이 묻어나서 훈훈했습니다.


 컴퓨터 도사들의 불꽃튀는 열전!

마지막으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초특급 수퍼 울트라 ‘컴퓨터 도사’들 얘기를 해볼까요.

드라마 속 첩보기관 NSS에는 두명의 컴짱들이 나옵니다. 또 핵테러를 시도하던 테러범들 가운데도 컴짱이 한명 있었고요.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밖의 등장인물들도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수시로 컴짱으로 돌변하는 건 좀 이상합니다. ‘공화국 최고의 전사’ 선화(김소연 분)도 어지간한 해커쯤은 찜쪄먹겠던데요.


어려운 상황에서 이사람 저사람이 수시로 컴짱이 되어 위기를 돌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은 드라마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요소였습니다. 그런 장면이 자주 나오기도 했고요. 그만큼 각본이 탄탄하지 못했다고 할까요.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전문 직업군이냐 비직업군이냐를 막론하고 다들 초특급 해커들입니다. 못 뚫는 시스템이 없고, 못 캐내는 정보가 없었습니다. 원양어선을 탈취해 국내로 들어오던 테러범들이 출입국 관리소의 모든 CCTV 시스템을 실시간 조작하는 장면은 놀라웠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한 일인지...

그런데 이처럼 출중한 분들이 자신들의 이동경로가 추적될 수 있는 도로변의 CCTV는 그대로 두는 바람에, 결국 은신처가 드러나고 말았죠. 실력은 좋은데 꼼꼼하지 못한 넘들 같으니라고!


개연성 있는, 액세서리가 아닌 IT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를 보면 IT가 고도로 발달한 미래의 현실을 가상해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IT가 단순히 액세서리에 그치지 않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뼈대가 됩니다.

꼭 IT가 내용의 한축을 담당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다이하드 4편에는 탁월한 컴퓨터 전문가들을 동원해 도시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거액을 요구하는 테러범이 나옵니다. 컴퓨팅 기술을 이용해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고 경찰이 손을 쓸 수 없게 만드는 장면들이 일관성이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테러범 측이 그 정도 능력을 가졌으면, 당연히 경찰 측이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리스에서는 IT가 매 상황상황에 필요했다기 보다, 화려함을 더해주는 액세서리였거나 탄탄하지 못한 스토리를 어물쩡 덮고 가는 수단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주인공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도 쓰였지만, 결과적으로 돋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왜? 다들 워낙 잘하니까.

이병헌이나 전준호가 명사수였지만, 결정적인 장면에선 늘 김태희가 더 잘 쐈던 거 기억하시죠?

일상생활에서 IT의 역할은 더 없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IT 강국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IT가 단순히 액세서리로 등장하는 수준을 넘어, 극 전개에 중요한 매개체가 되거나 줄거리에서 중요한 고민거리를 제공하는 모티브가 되면 좋겠습니다.

IT 업계 종사자도 아니고, IT를 오래 취재했지만 C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자가, 순전히 지 마음대로 쓴 글이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사람중심]을 꿈꾸는 C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