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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전자주민증…21세기 주홍글씨?

【사람중심】 올해 의료 서비스 산업의 IT 지출 가운데 최우선 순위는 전자건강기록(EHR)이 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데이터 관리 전문 기업 컴볼트(www.comvault.com)는 자사의 의료 서비스 부문 고객을 대상으로, 올해 데이터 및 정보관리 기술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요소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자건강기록 시스템에 가장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설문에는 컴볼트 고객인 주요 의료기관, 종합병원 시스템, 지역 의료센터 및 전국의 외래 환자 시설 등 30곳 이상의 의료 시설이 참여했습니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컴플라이언스 준수 보장, 재해복구 계획, 새로운 애플리케이션 및 시스템의 지원을 올해 IT 부문 지출에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세 가지로 꼽았습니다.

전체 응답자 중 40%는 전자건강기록(Electronic Health Records)을 올해 IT 예산 지출 1순위라고 응답했으며, 재해복구 및 비즈니스 연속성 계획이 2위, 의료 데이터웨어하우스 및 정보 거버넌스가 3 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전자의무기록)에서 좀 더 진화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EHR은 미국에서 전면적인 채택을 앞두고 있는데, 보건정책 입안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합니다. 환자 개인의 정보를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미국 의료계는 환자의 기밀 유지 외에도 데이터 보안, 운영 직원 교육 등 다양한 과제들 때문에 도입하기가 망설여진다는 반응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처방전을 의무화한 OCR과 엑스레이 촬영 정보를 디지털화한 PACS 시스템 구축이 활발해져서 병원의 의료 서비스 및 운영 효율을 상당히 향상시킨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EMR은 기대만큼이나 문제점도 많이 제기됐습니다.

EMR이 병원의 디지털화를 완성할 시스템으로 기대를 받기는 했지만, 의사의 입장에서는 컴퓨터를 다루는 데 그만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가 있었고, 환자들은 “의사들이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다”, “불친절하다”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정부가 입법발의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에도 개인의 행정 정보 및 건강 관련 정보를 수록한 전자주민증과 관련된 내용이 있습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현재의 주민등록증을 IC칩을 내장한 전자주민증으로 바꾼다는 것인데, “응급의료 상황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혈액형 정보를 넣을 것이라고 합니다.

전자주민증은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 없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보건의료단체연합)은 8일, 전자주민증에 혈액형 정보를 넣는 것은 위험하고 불필요한 행위라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응급의료 상황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혈액형 정보를 넣는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못박았습니다. “전자주민증에 기입된 혈액형정보는 실제 수혈에서는 사실상 사용될 수 없다. 잘못된 수혈은 생명을 좌우하게 되기 때문에 응급수혈이라 하더라도 혈액형 검사는 수혈 전 다시 이루어진다”는 것이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지적입니다.

이 단체는 개인정보를 전자칩에 내장하면 것은 발급에서 이용에 이르는 여러 단계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전자주민증 자체에 반대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행안부는 주민등록증 위·변조를 막고자 전자주민증을 도입한다는 입장인데, 한 해 500여 건도 되지 않는 주민등록증 위ㆍ변조를 막고자 5,000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 전자주민증을 도입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전자주민증은 2000년대 초반에도 활발하게 논의되다, 무산된 바 있습니다. 개인정보 유출로 인권이 침해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반발과 예산낭비라는 지적 속에 백지화됐습니다.

환자 개인의 모든 건강 기록을 디지털로 보관하는 것도 양날의 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건강 기록을 보관하고 있으면, 좀 더 정확하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밝히고 쉽지 않은 개인의 정보가 유출되거나 악용될 여지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신상 정보와 관련된 이런 시스템은 역시 ‘실행’ 보다는, ‘꼭 필요한가’를 수없이 따져보는 일이 우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나서도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되겠죠.

효율과 서비스가 목적이 아니라, 관리가 목적이라면 전자주민증이든, 전자의무기록이든 주홍글씨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지 않을까요?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