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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인터넷, 여론 그리고 정보권력

【사람중심】어제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7년 전 세상을 떠난 한 여성 아나운서의 추억에 잠겼습니다. 미디어오늘에 올라온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2004년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그는 사고가 있기 약 1년 전인 2003년 10월 어느 날,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질 않을 라디오 방송 오프닝 멘트를 했습니다.

2003년 10월 17일. 당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던 고 김주익 열사가 구조조정 반대와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내걸고 129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던 85호 크레인에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닷새 뒤 고 정은임 아나운서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시작하며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또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라며, 고단한 현실에 맞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끌어나가는 모들 이들에게 애정 어린 인사를 던졌습니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진행했던 고 정은임 아나운서

한 달 남짓 지난 11월 18일 정은임 아나운서는 또 다시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된 시작 인사를 했습니다. “19만 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사발에 김치 한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한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 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바퀴달린 운동화)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고 김주익 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만 3,000원이 마음에 걸려있었습니다. 19만 3,000원, 인라인 스케이트 세 켤레 값입니다.”

미디어오늘의 기사는 ‘그 아버지를 대신해 김주익 씨의 자녀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준 이는 평범한 어머니와 노동자들이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날 정은임 아나운서는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구조조정에 내몰린 대기업 노동자들의 시위를 ‘노동귀족의 이기심’으로 몰아붙여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한마디가 아니었을까요?


2011년, 정은임 아나운서의 역할을 대신하는 SNS

8년 전 한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한 여성 노동자가 정리해고자 170명의 복직을 요구하며 161일 째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8년 전보다 훨씬 길어지고 있는 이 농성에 당시 정은임 아나운서 같은 응원을 보내는 방송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하지만, 김여진 씨 같은 연예인들의 지지가 이어지면서 8년 전보다 더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김여진 씨가 포함된 농성 지지자(희망버스)들이 현장을 방문했는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담 위에서 사다리를 내려주어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이걸 타고 담을 넘어갔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이를 두고 “외부 세력 대거 난입”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김여진 씨가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격려하고자 고공 크레인 위에 올라간 일이며, 한진중공업을 나오다가 긴급체포된 소식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가 연에인과 네티즌들의 지지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적어도 이 사안과 관련해서는 한 개인의 작은 인터넷 공간이 거대 언론의 방송·신문 보다 훨씬 믿음직한 언론이 되고 있는 것이죠.

김여진 씨를 비롯한 시민응원단의 방문으로 한진중공업 문제가 주목을 받자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억하는 이들의 글들도 속속 올라왔습니다. 여러 블로거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당시 정은임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를 소개했고, 이 소개글은 여러 사람들의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에 옮겨졌습니다. 노동문제와 관련해 그 어떤 사설이나 논평도 따라 올 수 없을 만큼 상황을 균형 있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힘이 주류 언론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만들어지는 상황입니다.

김여진 씨의 한진중공업 농성장 지지방문과 관련해 기존의 신문·방송 보다 인터넷에서 더 빠르고 더 적극적으로 의견이 수렴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니 문득, 2000년대 초반에 한참 많이 진행됐던 공청회·세미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인터넷의 등장, 주류 언론의 정보 독점 허물기

99년부터 시작된 인터넷 버블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서 진보단체들을 중심으로 정보의 공유, 인터넷 민주주의 같은 주제들이 담론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뉴스 사이트가 많이 생겨나면서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졌고, 진보·시민단체나 개인의 홈페이지에서 기존 주류 언론과 다른 시각, 주류 언론이 외면했던 소식을 다루기 시작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주류 언론의 시각은 매우 완고했습니다. 공신력 있는 언론사가 아닌 집단·개인이 뉴스를 생산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식이었죠.

사실 주류 언론들이 얘기하던 공신력의 잣대란 ‘얼마나 오랫동안 언론사를 운영해왔고, 얼마나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간’이 잣대가 된다면 제일 먼저 시작한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여전히 공신력이 떨어지는 언론일 수밖에 없으니 이는 제대로 된 기준이 될 수 없고, ‘독자의 수’ 또한 대형 인터넷 포털의 뉴스를 검색하는 사람이 기존 언론사들의 독자 수보다 많으니 주류 언론들이 원하는 결과로 이끌어 줄 기준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류 언론이나, 포털들이 다루지 않는 다양한 시각 그리고 때로는 더 ‘진짜’인 얘기들을 다루는 웹사이트까지 생겨나니, 주류 언론으로서는 위기감이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신문·방송에서는 인터넷에 다양한 소식들이 공유되고, 개개인이 의사를 적극 개진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위험하고 심각한 것인 양 걱정하는 기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주류 언론들의 이러한 반응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정보를 취합하고, 콘텐츠로 가공하고, 국민들이 정보를 확인하는 모든 창구가 (몇몇 언론사로) 한정돼 있을 때는 그것이 곧 권력이었고, 수익을 보장하는 힘이 됐다. 하지만, 이 권력(정보)의 창구가 늘어나게 되면서 기존의 창구가 예전만큼의 힘을 가질 수 없게 됐다는 것이 주류 언론이 화를 내고, 걱정하는 이유다”고 설명했습니다.

인터넷이 일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경로를 만들었고, 주류 언론이 다루지 않거나 숨겨 왔던 이야기들까지 접할 수 있게 만든 상황은 정보 권력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후퇴한 사회, 진화하는 언론으로서의 인터넷

인터넷 그리고 인터넷에서 형성된 자발적인 여론은 이처럼 정보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에서 출발해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는 데 일조하기도 했고, 정부가 잘못을 할 때는 광장으로 사람들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기사에 댓글을 단 사람까지 처벌하는 무리수를 두게 된 것은 그만큼 인터넷이, 네티즌이 힘 있는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은 정보를 습득·확인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던 과거의 인터넷과 달리, 여러 사람의 뜻을 모으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정 사이트에 들어가서 뉴스를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물처럼 연결된 개개인들이 실시간으로 새로운 소식을 주고받게 됐습니다. 소식을 접하는 즉시 여럿이 의견을 모아 행동에 옮기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전파해 더 큰 여론을 만들어 냅니다. 주류 언론이 인터넷상의 여론을 왜곡하거나 무시해서 자신들만의 견해를 강조하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했을 때 인터넷은 촛불시위나 구매 거부, 항의 전화처럼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움직임을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인터넷상에 개인의 의사를 표현한 몇 줄의 글까지도 감시와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는 역행이 일어났습니다. 국민들이 어떤 사안에도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됨으로써 어떠한 여론이 있는지를 쉽게 파악해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정부 스스로 닫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여론을 이런 식으로 잠재우려 한다고 언제까지나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는 신문·방송·인터넷이 막히자 휴대전화로 SNS나 블로그에 소식을 전하고, 사람을 모아서 민주주의를 실현해 냈습니다. 구글 같은 기업은 스마트폰이 아닌 일반 휴대전화기(피처폰)에서도 SNS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주류 언론들은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시민혁명을 열심히 소개하면서 인터넷과 SNS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지만, 우리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는 외국의 것만큼 매력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시민혁명 속의 SNS, 등록금 시위 속의 SNS

최근 대학등록금 반값 실현 촛불시위나 한진중공업 지지 방문 같은 사건은 네티즌들이 직접 참여하고, 실시간으로 SNS에 이 소식들이 전파되면서 과거 광우병소 촛불시위 때 보다 한발 더 진화한 느낌입니다. 주류 언론은 ‘촛불에 머리 조아리면서 무슨 정치하겠다는 건가?’라며 정치인들을 질타하는 기사를 써서 민심과 정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지만, 이런 기사들이 안쓰러울 만큼 SNS와 블로그에서 전해지는 얘기들은 생동감과 현장감이 넘쳐납니다.

SNS나 블로그에서 만들어지는 여론의 파급력이 커지면 이를 통제하려는 움직임도 생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막 보급됐고, 인터넷 뉴스보다는 종이 신문을 훨씬 선호하던 당시와 달리, 이제 개개인이 언론사 하나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든 뉴스를 다 확인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예전 같으면 정부 입장에서 ‘몇몇 종이 신문 독자만 아니면 못 보겠지...’라고 생각하던 기사들이, 이제는 인터넷·스마트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뉴스가 되고 있습니다.

종이 신문 외의 정보 습득 창구가 인터넷 뉴스 사이트로 한정돼 있을 때는 이들 사이트를 통제하거나 코드가 맞는 뉴스 사이트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런 효과를 보려면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SNS, 블로그를 만들어야 될 지도 모릅니다. 주류 언론이 어떤 입장에서 소식을 전하더라도 ‘여론’이라는 측면에서는 인터넷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블로거가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억하며 “트위터로 사람을 모으고, 35m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투사가 트위터로 상황을 생중계하는 시대지만, 플랜카드는 80년대와 달라지지 않았다”며, “8년 전, 지상 35m 위 85호 크레인에 목을 맨 김주익 씨도 그 김주익 씨를 눈물로 애도하던 아나운서 정은임도 모두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되었고 지금, 또 저 85호 크레인 위에 김진숙 씨가 올라가서, 잘려나가는 동료들을 지키려 싸우고 있다. 인터넷이, 스마트폰이 나왔다고 해서 와이파이가 잘 터진다고 해서 세상이 변한 게 아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겉모습은 발전했지만, 내용은 역행하고 있는 2011년의 모습을 이렇게 잘 표현한 신문기사나 논평이 있었던가요? ‘열독률’, ‘구독률’, ‘가장 많은 지면’을 과시하는 낡은 사고로는 따라 올 수 없는 새로운 언론의 모습을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미디어오늘 기사 - 고공농성에 되살아난 정은임 아나운서의 오프닝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