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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4년 연속 인터넷 감시국가’의 이상한 순기능

[사람중심] ‘초고속 인터넷 1등 국가’, ‘가정용 인터넷 품질 세계 최고’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우리나라가 4년 연속으로 ‘인터넷 감시국가’에 이름을 올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정부가 인터넷을 감시, 검열하는 나라라는 겁니다.

‘인터넷 감시국가’ 선정은 국제언론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매년 ‘인터넷을 검열하는 나라’로 선정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RSF는 12일 발간한 ‘2012년 인터넷 적대국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러시아, 태국, 스리랑카, 튀니지, 터키 등 12개 나라를 ‘인터넷 감시국가(countries under surveillance)’로 지정하면서, “한국 정부가 정치적 의견을 온라인에 표현하는 행위에 검열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감시국 지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인터넷 강국 코리아, ‘인터넷 감시국가’ 4연패

RSF는 이와 함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에서 삭제를 요청한 콘텐츠가 지난 2009년 1,500건에서 2010년 8만 449건으로 급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1년 사이 무려 54배나 늘었습니다. (인터넷 콘텐츠와 관련해) 수사에 착수한 사례 역시 2009년 이전에는 58건에서 불과하던 것이, 2010년 91건으로 57% 늘어났고, 2011년엔 8월까지 집계만으로 150건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네요.

RSF는 지난해 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페이스북과 트위터 심의 절차를 강화한 것을 인터넷 검열의 사례로 꼽았으며, 딴지일보의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전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후보와 관련해 제기한 의혹이 법적 분쟁에 휘말린 내용도 사례로 들었습니다.

한편, 북한은 중국, 쿠바, 이란 등과 함께 인터넷 감시국보다 더 심한 검열국가인 ‘인터넷 적대국(enemies of the internet)’에 포함됐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정은이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는 과정을 통해, 북한 정권이 언론과 내부 정보를 절대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는 것이 RSF의 설명입니다.

현 정부가 이른 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기간 동안 진행된 여러 변화 가운데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꼽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 기간 동안 우리나라 정보통신 산업이 크게 부흥했는데, 과거 두 번의 정부에서 이룬 성과라고 생각되는 것에 현 정부가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이 때문에 현 정부 들어서는 정보통신 분야의 국가 아젠다를 세우거나, 미래 성장동력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소홀했습니다. 공공기관들이 발표하는 자료는 온통 “시장을 어떤 규모로 키울 계획이며, 일자리가 얼마나 만들어질 것이다”하는 공허한 얘기들만 넘쳐났습니다.

정부의 ICT 정책 수립 및 추진에 적극 참여해 왔던 한 교수는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찐빵 만드는 기술에 열심히 투자해서 찐빵 반죽과 소 만드는 기술, 찐빵을 찌는 기술 등이 높은 수준에 올랐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는 ‘이제 기술은 됐으니까 찐빵 많이 만들어서 시장을 키워라’고만 한다”고 말입니다. 그는 “지금은 다른 나라들도 열심히 찐빵 기술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새로운 재료의 반죽과 소를 개발하고, 찐빵 외에 만두·도넛 같은 분야로 새롭게 진출하지 않으면 결국 기술 차별화가 없어진다”고 안타까움을 털어놓았습니다.


정책으로 구글·페이스북 만든다?

몇 년 전 이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ICT 분야의 전략이 제대로 서 있지 않고, 이전 정권과의 연관성 때문에 ICT 분야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4년 연속 인터넷 감시국가’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접하고 보니, ‘초고속 인터넷 강국’,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발표가 얼마나 무색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트위터·페이스북에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선거일에 투표하자고 독려하거나, 나는 어느 후보가 좋다고 지지하는 것 자체를 불법으로 몰고 갔으니 ‘인터넷 감시국가’ 선정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정부가 인터넷으로 여론을 감시하고, 비판 의견을 감시하는 것을 순기능이라고 바라본다면 우리가 인터넷 강국에 올라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처럼 인터넷에서 공유되는 시시콜콜한 내용들을 꼼꼼하리만치 감시·검열하면서도 정부는 페이스북·구글 같은 인터넷 신화, 마크 주커버거 같은 청년 벤처 사업가를 발굴해 내겠다는 정책을 수시로 쏟아냅니다. 정책으로 벤처 성공신화를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은 인터넷을 통제해야 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레리 페이지(구글)나 마크 주커버그가 우리나라에서 창업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각종 규제를 어떻게 피할지 고민하다가 꿈은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했거나, 정부가 인정한 각종 규제는 피했을지언정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은 하지 못했을 겁니다.

네티즌이, 벤처가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검열하도록 만드는 구조에서 정부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통제된 여론의 형성, 불만 댓글의 획기적 감소 같은 것이겠죠. 하지만 이미 주류 언론이 심하게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인터넷 여론까지 통제를 하면 실제로는 ‘제 3의 대안’으로서의 인터넷 여론이 더욱 성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입니다.

댓글 알바?

정부의 인터넷·SNS 통제 정책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인터넷 기사 보다, 이를 비판하는 댓글에 수천개의 추천이 올라오는 이런 상황은 이른 바 ‘댓글 알바’나, ‘트위터 전문가 영입’ 같은 사고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인터넷 시대에 여론을 조작하기는, 거대 방송사나 신문사를 통제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어려운 일이거든요.


검열·통제할수록 커지는 인터넷 여론
몇 년 전, 우리나라가 ‘인터넷 인프라 속도’에서는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실제로 이것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는 OECD 나라 가운데 최하위권이라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나 애플리케이션처럼 진짜로 ICT를 생활과 업무에 활용하기 위한 투자는 매우 낙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인터넷 속도만 빠르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였기에 창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기다가 이제는 ‘인터넷을 감시하는 나라’라는 불명예도 4년 연속. 아예 고정 타이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튀니지의 시디 부지드(Sidi Bouzid)에서 한 노점상이 저항의 표시로 분신한 사건을 국민들이 알게 된 것은 누리꾼들 덕분이었습니다. 인터넷 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젊은 누리꾼 칼레드 사이드가 경찰에게 타살된 것을 이집트 국민들이 알게 된 것도 누리꾼들 덕분이었다. 이른 바 ‘아랍의 봄(Arab Spring)’의 초석이 된 것은 소셜네트워크 덕분이었다고 모든 언론이 떠들어 댑니다. 이것이 인터넷이 가진 언론의 역할, 순기능입니다(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인터넷 검열, 인터넷 여론조작에 무심한 언론들일 수록 ‘아랍의 봄’은 열정적으로 보도합니다. 하지만, ‘아랍의 봄’을 보도하기 이전에, 노점상과 젊은 누리꾼의 죽음을, 왜 죽게 됐는지 그 이유를 먼저 알리는 것이 원래 언론의 역할이지요.)


지난해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200일이 가깝도록 농성을 하고 있을 당시, 여배우 김여진 씨가 이곳을 방문했고, 거기서 겪은 내용들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대다수 언론들이 다루지 않던 얘기를 네티즌들이 알게 됐습니다. 당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김여진 씨를 지지하는 한편, 200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 정은임 아나운서(MBC)의 얘기가 회자되었습니다.


2003년 당시 ‘FM영화음악’이라는 코너를 진행하던 정은임 아나운서는 10월 17일 오프닝 멘트에서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당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던 고 김주익 열사가 구조조정 반대와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내걸고 129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던 85호 크레인에서 목숨을 끊은 지 닷새 뒤였습니다.

아직 SNS라는 것이 생기기 전이었는데, 정은임 아나운서의 이 멘트는 메신저를 통해서 엄청나게 퍼져 나갔습니다. 당시에 주요 방송사나 신문사의 한진중공업 사태 보도가 정은임 아나운서의 짧은 한마디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지난해 대중들이 김여진 씨 트위터에 열광한 것 또한 한진중공업 사태 보도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론통제 對 ‘제대로 뉴스데스크·뉴스타파’의 고공행진

김여진 씨의 트위터 생중계로 SNS의 여론 형성 기능이 부각된 것이 결과적으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유명인들이 트위터·페이스북에 투표를 독려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여론을 통제·검열하겠다고 나선 것이죠. 하지만, 이른 바 개념 연예인들은 ‘나 잡아봐라’하듯이 투표 인증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수많은 누리꾼들도 동참했습니다. 검열로 여론을 통제해보려던 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여론을 통제하려는 것은 정권의 속성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MBC, KBS, YTN의 연대파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암울합니다. 하지만, 여론을 통제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분명 순기능이 생길 것입니다. 물론, 여론을 지나치게 통제해도 순기능이 생기는 이상 현상이 일어납니다. MBC 파업기자들이 만드는 ‘제대로 뉴스데스크’나 ‘파업채널 M’, MBC·YTN 해직기자들이 만드는 ‘뉴스타파’, MBC 출연금지 당한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의 ‘이슈 털어주는 남자’ 등이 더욱 정확한 보도를 하고, 그로 인해 인기 고공행진을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 본 최승호 전 MBC PD수첩 PD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정부와 경영진의 지나친 보도 통제로 MBC가 파업을 하는 것과 관련해 미디어오늘이 쓴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4대강을 하겠다고 해도, 현 정부의 인사 청문회를 보도하겠다고 해도 위에서 다 막았다. 60명 정도 되는 PD조직에서 경위서 안 써본 PD가 없고 10여명은 제작과는 상관없는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PD수첩>에서 FTA 문제를 세게 다뤄 여론이 악화된 적이 있는데, 방송을 보고 노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토론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 갖고 방송해 달라’고 했다. 지금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검찰에서 찾아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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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은 토론하자던데, 지금은 곧바로 검찰 조사”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