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산하 미디어 그룹 ‘테크놀로지 리뷰(Technology Review)’가 발표한 ‘세계 50대 최고 혁신 기술 기업(2012 TR50)’에 익숙한 IT 기업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5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IT 회사는 모두 9개로 알카텔-루슨트, 애플, 페이스북, 구글, IBM, 인텔, 퀄컴, 삼성전자, 트위터입니다(알파벳순).
‘TR 50’은 테크놀로지 리뷰가 선출한 위원단이 지난 1년간 가장 독창적이고 가치가 뛰어난 기술을 내놓고 이를 통해 사업 성장은 물론, 경쟁업체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기업을 선정한 것입니다. IT 외에도 에너지, 생물·의학, 소재 분야가 총망라된 이 명단에 오른 기업들의 이름은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상용화된 기술 혁신을 상징합니다.
이 명단에 삼성전자가 이름을 올렸다는 건 매우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매출이나 이익과 같은 기업 규모로만 평가된 명단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우연히 눈에 들어온 기사 한 꼭지에 씁쓸한 기분을 누를 수 없었습니다. 삼성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이 분야에서 역대 최고액이자 법정 한도액인 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당했다는 소식입니다. 법정 한도액이자, 역대 최고액이라... ‘역시 삼성’인가요?
월요일이 되니, 몇몇 신문에 이 기사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댓글들을 보니 삼성전자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자자합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자처하는 회사의 조사 방해 행위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죠.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밝힌 삼성전자의 조사활동 방해 실태는 ‘매우 조직적이고 치밀한’ 방식을 띠고 있습니다. 사전시나리오에 따라 건물 용역업체가 회사문 앞에서 조사요원들을 가로막은 사이에 회사 직원들은 PC에 담긴 자료를 삭제하거나, 허위자료를 공정위에 넘기는 수법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증거 인멸 행위는 내부 보고 문서와 CCTV, 임원 간 e메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 삼성전자 조사 방해 백태)
공무원이 조사를 나왔는데 직원들이 입구를 가로막고, 그 사이에 자료를 폐기한다는 건 아주 전근대적이면서도 폭력적인 방법입니다. 이것 한 가지만 봐도 삼성이라는 대재벌의 기업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일하던 직원들의 연쇄적인 백혈병 발병으로 정부가 조사에 나섰을 때 삼성의 대응도 이와 유사한 것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재계 일각에서는 폐쇄적이고 실적을 중시하는 범 삼성그룹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는 기사도 있더군요.
삼성은 단일 그룹으로 ‘최다 조사 방해’ 타이틀을, 삼성전자는 단일 기업으로 ‘최다 조사 방해’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삼성그룹의 핵은 삼성전자입니다. ‘최다 조사 방해’ 타이틀은 삼성이 좋아하는 ‘최고’, ‘최대’라는 타이틀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삼성은 늘 애플을 신경 씁니다. 애플이 가진 ‘혁신 기업’이라는 타이틀 때문이겠죠. 하지만, 삼성이라는 이름에는 제조, 아날로그, 실적 같은 단어가 오버랩될 뿐입니다. 스티브 잡스 생전의 애플에서는 잡스에게 ‘당신이 잘 못 되었다’면서 싸울 수 있는 직원들만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무노조 삼성’과는 분명 다른 DNA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미디어 오늘’의 기사를 보니 ‘대다수 경제지들은 침묵하지는 않았지만 무미건조하게 단신 기사로 신문 뒤쪽에 싣는데 그쳤다. 경제지 중에서 이 소식을 가장 신문 뒤쪽에 전한 매일경제는 18면 2단 기사<삼성전자에 역대최대 과태료>에서 과태료 부분은 언급했지만 조사 방해 행위가 수차례 일어났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삼성은 당연히 언론을 우습게 알 겁니다.
(관련기사 - 삼성전자 조사방해에 겨우 4억 과징금, 경제지들은 단신 처리)
공정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사 방해와 관련한 과징금이 애초 529억원으로 책정됐다가 공정위 전원회의를 두 번 거치며 142억원으로 무려 387억원이나 깍였습니다. ‘공공기관이 조사를 하러 갔는데, 이런 식으로 방해하는 게 말이 되나?’하고 생각했었는데, 삼성전자가 공정위를 우습게 아는 이유가 있었네요.
삼성을 고발하는 책, 삼성을 선망하는 책
많은 언론들이 과징금 부분은 쏙 빼놓고 ‘과태료 4억원’만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삼성이 콧방귀도 뀌지 않을 금액입니다. 북유럽 어느 나라의 기업 회장은 과속을 했다가 몇 억원의 벌금을 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재산에 맞게 벌금을 매겨야 벌금을 어렵게 생각하는 애초의 취지가 보호된다’는 정책 기조는 백번 생각해도 옳은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런 법이 있었다면, 삼성은 과연 과징금을 얼마나 내야 할까요? 액수도 액수이거니와, 법과 규범을 우습게 아는 기업의 버르장머리가 조금은 고쳐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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