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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전략과 정책

보이스톡이 만든 게임…통신사 對 나머지 모두

[사람중심] 미국 시간으로 지난 5월 20일, 미국의 MVNO(가상이동통신사업자) <보이저 모바일>이 사고를 쳤습니다. ‘통신업계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버라이즌, AT&T 같은 기업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겁니다.


이 회사는 초저가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선보였는데, 월 19달러면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고, 월 39달러면 음성통화, 문자메시지, 무선인터넷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태블릿PC로 무선인터넷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상품도 조만간 내놓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파격적인 요금제 보다도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보이저 모바일>은 이 요금제를 5월 15일에 공개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품 출시를 앞두고 악의적인 네트워크 공격, 즉 DDoS 공격을 당해 계획대로 서비스를 출시할 수 없게 되어 발표가 1주일 가량 늦춰졌다는군요. 


과연, 누가 공격한 것일까요? 범인이 누군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 요금이 너무 싸지면 하루 온종일 전화통만 붙잡고 앉아 있거나, 인터넷 검색만 하는 폐단이 생길 수 있으니 이런 요금제는 나오면 안 돼.’하고 생각한 건전한 어느 소비자(?)의 조치는 아니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미국·일본은 문제없는데, 국내에서만 음성손실이 많다?

무료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 서비스 <보이스톡>을 출시해 통신 3사를 멘붕 상태로 몰아넣은 카카오의 이석우 공동대표가 지난 1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이동통신사에서 일부러 보이스톡 통화 품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우린 물증도 있다.”


오마이뉴스 보도를 보면 이석우 대표는  “보이스톡의 모든 콜을 모니터링하고 있어 이통사에서 장난치면 바로 알 수 있다”며, “보이스톡 국내 오픈 첫째 날과 둘째 날은 패킷 손실률이 0에 가까웠는데, 사흘째부터 갑자기 패킷 손실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단순히 주장만 한 것이 아니라, “패킷 5개마다 중간에 1개씩 빼는 식이다. 그래서 SK텔레콤의 경우 손실률이 16.6%인 경우가 많다. 정확히 1/6이다”고 구체적인 수치를 들고 나왔습니다. “요즘에는 아예 패킷 순서를 뒤바꿔버려서 음성이 뒤죽박죽되게 만든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14일에는 한 발 더 나갔습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카카오톡 ‘보이스톡’ 논란과 망중립성 긴급토론회>에서 이통사들의 ‘보이스톡 품질 조작’을 재확인하면서 손실률을 확인할 수 있는 그래프를 공개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LGU+의 손실률이 월등히 높았고, 뒤를 이어 SK텔레콤, KT 순이었습니다(LGU+는 <보이스톡>을 차단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한 뒤 주가가 4%나 올랐다고 합니다).



보이스톡 품질 기상도를 보여주는 또 다른 표에서는 서비스 사흘째인 6월 6일부터 일본, 미국과 KT는 ‘맑음’인 반면, SK텔레콤, LGU+는 ‘비내림’이었고, 6월 9일부터는 국내 통신 3사 모두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카카오 측은 앞으로 국내 이통사와 국가별 3G 음성 데이터 손실률을 매일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할 계획입니다).



통신사, 방통위는 멘붕 상태?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통신사들은 카카오 측 주장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데, 우연의 일치로 믿어주기를 바라는 걸까요? 미국·일본의 <보이스톡> 음성 손실률은 거의 0에 가까운데, 왜 국내에서만 음성 손실률이 큰 걸까요? <보이스톡>이 사대주의정신에 입각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이석우 대표는 “통신사들이 <보이스톡>을 불허하겠다는 44요금제 이하의 요금제를 이용하는 고객에게도 보이스톡을 차단하지 않으면서 통화품질만 떨어뜨리니까 고객들이 우리 쪽에 항의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우연의 일치일까요?


출처 : 오마이뉴스


카카오가 예상 외로 강공을 택하면서 통신사의 멘붕 상황은 더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이미 멘붕 상태일 겁니다. 긴급토론회에서 참석하지 않은 방통위를 향해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방통위가 참석 안 한 건 통신업계 중대 사안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어떤 견해도 얘기할 수 없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수수방관위원회’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카카오는 ‘통신사들이 통화품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 통신 3사를  공정위에 제소하는 문제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공정위는 과연 이 문제에 정확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mVoIP 문제로 통신 시장이 떠들썩한데도 이와 관련해 어떠한 정책도 나와 있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공정위 역시 멘붕 대열에 합류하게 될지 모르겠군요.


통신역사의 전환점이 될 mVoIP 논쟁

<보이스톡>의 등장은 우리 통신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에도 통신 3사에 과도한 권한과 혜택을 주는 문제가 지적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수익이 잘 나야 재투자를 하고, 재투자를 해야 IT 시장이 산다”는 한결같은 협박과 행정당국의 살뜰한 보호 속에 늘 통신사가 이겨 왔습니다. 이건 곧 소비자가 지기만 해왔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보이스톡> 논란은 지금껏 몇몇 이해당사자와 통신사 사이에서 쟁점이 되어 왔던 해묵은 논쟁을 ‘통신사 對 나머지 모두’의 구도로 만들었습니다. 통신사가 꼼수를 부렸다는 주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료까지 나왔으니 어떤 식으로든 제대로 한번 결판이 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과연 방통위나 공정위는 ‘나머지 모두’의 편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나머지 모두’는 통신사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일 줄 모르고,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요?


최근 KT경제경영연구소는 “mVoIP를 전면 허용하면 KT 매출이 향후 3년 간 2조 3,000억원 정도 줄어들 것”이라는 내용의 비공개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정보통신연구원은 이와 달리 “3G망에서 mVoIP를 전면 허용하더라도 이통사의 매출 감소폭은 0.73%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습니다.


“통신사 과점 허용은 ‘보편적 복지’ 제공하라는 것”

14일 토론회는 자신들의 의견을 밝힐 좋은 기회였지만, 통신 3사와 방통위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정말 좋은 얘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말입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통신사업자에게 국민과 콘텐츠 사업자들이 투자 비용을 대서 안정적인 과점 상황을 만들어준 건 보편적 서비스를 하라는 것이다” - 박석철 SBS 전문위원


“앱 기반 사업자가 망 사업자 눈치를 봐서는 혁신적인 인터넷 서비스가 나올 수 없다. 모바일 인터넷 환경에서는 물리망을 갖추지 않은 전화 서비스도 허용하고 있는데, 기존 음성 전화와 경쟁 관계라는 이유로 경쟁 사업자의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지위 남용이다” -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


“이통사에서 지난해 말 SMS와 카카오톡이 똑같은 서비스니 같은 규제를 받으라고 해서 안타깝게 여겼는데 지난 3월부터 방통위에서도 같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망도 없고 음성망을 재판매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식의 규제는 서글프다.” - 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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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