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勞心焦思(노심초사). 자주 쓰는 말이고 대략 무슨 뜻인지 짐작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마음속으로 애를 쓰며 속을 태운다’고 나오네요.
최근 언론들이 몹시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ICT(정보통신기술) 생태계의 뿌리, 통신산업이 흔들린다>, <돈줄 마르는 국내 통신사…투자는 남의 일 되나>는 그래도 양반입니다. <눈물 뚝뚝 통신3사, 이게 다 누구 때문?>, <‘동네북’통신업계가 사는 법>에는 애처로움과 분노마저 묻어납니다. 기사 제목이나 내용들을 보면, 이제 통신사들은 다 죽게 생겼습니다.
지난해 이동통신 요금 기본료 1,000원을 인하하는 바람에 실적이 아주 나빠졌고,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통신요금 인하와 관련된 공약들까지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통신사들이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참다못한 언론들이 총선 전부터 슬슬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최근 통신 3사의 1분기 실적 발표가 나오자 본격적으로 ‘KT, SKT, LGU+ 일병 구하기’에 나섰습니다.
전우들 사이에는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걸까요? 언론들이 통신사의 위기를 걱정하는 논리는 어쩌면 그렇게도 통신사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논리와 똑 닮았을까요? 언론사 걱정을 쏟아내는 언론들의 얘기는 ‘통신산업이 전체 정보통신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엔진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정부가 강제로 요금을 내리도록 만들고, 선거철마다 요금인하 공약을 들고 나와서 통신서비스업을 해먹을 수가 없다’ 뭐 이런 겁니다.
- 통신사는 우리 사회의 기간 인프라에 투자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 요금이 인하돼서 수익이 낮아지면, 투자가 위축된다.
- 투자가 위축되면 새로운 기술·서비스에 투자하기가 어려워져 전체 ICT 산업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이것이 통신사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논리입니다. 협박의 3단논법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소연의 3단논법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실제로 통신사들의 수익이 악화된 것은 지나친 마케팅 경쟁 탓이 큽니다. 지난 2010년 방통위가 통신사들에게 연매출의 22% 안에서만 마케팅비를 쓸 것을 권유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가이드라인을 지키면 통신사의 EBITDA 마진율이 1~5%까지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습니다.
(EBITDA 마진율 :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이전 이익)
통신사들은 지난해 마케팅 비용과 광고비로 7조원을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LTE 시장 선점에 전력투구한 것이죠. 그런데, ‘힘들어서 죽겠다’는 통신사들이 올해 1분기에도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습니다.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이 정도 수익을 냈다면, 요금 인하 여력이 충분할 것이라고 보도한 언론도 있더군요.
우리 통신사들은 다른 통신선진국들과 비교해 유독 과보호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망 중립성이나 MVNO처럼 통신 생태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제도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점이 그러한 지적을 반증합니다. 이 때문에 통신망에 투자하고 나면, 콘텐츠나 서비스 발굴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네트워크 독점권이 있으니, 좋은 서비스·콘텐츠를 들고 나오는 똘똘한 MVNO나 ISP가 등장하더라도, 네트워크만 쥐고 있으면 걱정이 없는 것이죠.
통신사의 자회사나 작은 벤처기업이나 똑같은 조건에 네트워크를 빌려 쓸 수 있게 하는 정책이 좋은 서비스·콘텐츠의 등장을 이끌어 내고, 이로 인해 서비스 이용이 늘어남으로써 통신사의 수익을 향상시키는 것이 선순환 구조입니다. 해외에 이런 좋은 선례가 많이 있지만, 정부나 통신사 모두 현재 통신산업 구조 혁신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온실 속의 화초로 지내다 보니, 보호받으면서 원하는 수익을 내고 그 중 일부를 재투자하는 것을 선순환구조로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바일 단말의 확산과 고화질 콘텐츠, 고용량 애플리케이션의 급증으로 통신사의 트래픽은 급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의 서비스 모델에 안주하면서 요금을 큰 폭으로 올려 더 많은 수익을 얻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업이라면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ICT 생태계의 맏형’의 역할이 그런 것이라면, 누가 해도 상관없을 겁니다.
통신사는 언제까지 정책이나 선거 탓만 하려는 걸까요? 요금은 계속해서 인상되어야만 한다는, 그 신앙과도 같은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혹시 그 신앙심이 통신사들로 하여금 새로운 수익원 찾기 노력을 게을리 하도록 만든 원인이었던 걸까요?
통신사 실적이 발표되거나, 요금인하 논의가 있을 때마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를 걱정하는 언론의 호들갑은 또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국민의 통신비 부담. 통신사나 단말 제조사의 횡포 같은 것에 소비자들이, 중소기업들이 얼마나 불이익을 당하는지를 놓고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한번쯤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관련기사 - 통신요금 논란…어김없이 등장한 ‘전가의 보도’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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