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최근 네트워크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오픈플로우(OpenFlow)’입니다. 네트워크 장비가 제공하는 각종 정책 제어 기능과 데이터 전송 기능을 분리하자는 개념입니다. 제어 기능을 하는 콘트롤러를 따로 독립시키고 스위치는 데이터 전달만 하도록 만들면, 네트워크 관리·운용이 훨씬 쉬워질 뿐 아니라 지금보다 훨씬 큰 네트워크도 손쉽게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방식은 철저하게 ‘공개 표준’에 기반을 두는데, 어느 회사의 스위치를 쓰는가에 상관없이 완벽하게 관리되면서 구조는 매우 단순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네트워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라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HP는 6일 오픈플로우 네트워크와 관련해 자사의 전략을 밝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HP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HP는 오픈플로우 네트워크 연구를 가장 많이 시작했고, 가장 많은 스위치에 이미 오픈플로우 아키텍처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세계 60여 테스트베드, 국내 4개 사이트 운영
HP는 이미 2007년부터 스탠포드대학과 함께 오픈플로우 아키텍처의 전신인 Ethane을 연구해 왔다고 합니다. 그 결과, 현재 16개 기종의 스위치에 이 아키텍처를 적용했습니다(지원하는 포트수로 계산하면 1,000만 포트가 넘는다는군요). 현재 HP 외에 오픈플로우 기반의 스위치를 제공하는 기업은 IBM이 유일한데, 하나의 스위치 모델에서만 지원이 됩니다.
HP는 자사 스위치에 오픈플로우 아키텍처를 심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테스트베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2008년에 처음 오픈플로우 스위치의 테스트베드를 구축했던 HP는 이미 전세계 60여 사이트에서 테스트를 진행중인데, 이는 전체 오픈플로우 테스트베드의 95%에 해당하는 비율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이트가 대학과 연관기관으로, 우리나라에도 4개의 테스트베드가 있습니다.
오픈플로우 네트워크를 위한 연합체 ONF에는 HP 외에도 시스코, 주니퍼 등 주요 네트워크 전문업체들이 모두 소속돼 있습니다. 하지만 HP가 오픈플로우 지원 스위치 수나, 테스트베드 수에서 월등한 것은 얼마나 투자하느냐의 차이라고 합니다. HP 조태영 상무는 “ONF 안에서의 활동은 다들 열심히 하지만, 이것을 상용화시키는데 얼마냐 투자를 하느냐에서 전략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무래도 네트워크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은 오픈플로우가 확산되는 것이 탐착치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브랜드에 종속되지 않는 네트워크’는 주도권을 쥐고 있는 기업에게는 마뜩치 않은 개념이겠지요. 반면에, 도전자 입장인 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HP가 오픈플로우 전략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도 국내 시장에서 경쟁자들에 한발 앞서 이 주제를 끌고 나가기 위함일 것입니다.
올해 스위치 전기종 오픈플로우 아키텍처 적용
HP는 올해 안으로 모든 스위치 기종에 오픈플로우 아키텍처를 적용할 계획입니다. 현재까지는 기존 HP 프로커브 제품군에만 적용돼 있던 것을, 쓰리콤 스위치 라인업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HP의 목표가 ‘오픈플로우 스위치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HP는 “오픈플로우 표준을 더욱 발전시켜 새로운 네트워크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HP 네트워크 컨설턴트인 서영석 과장은 “표준화된 네트워크 가상화 기술을 이용해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오픈플로우 아키텍처는 네트워크 확장성의 한계, 구성의 어려움, 관리의 복잡성을 획기적으로 해결해줄 것이다. 네트워크를 구축·운용하는 고객들의 불편을 크게 해소시켜줄 기술이다”고 설명했습니다. 더욱 더 크고, 관리가 쉬원 네트워크는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합니다.
오픈플로우 아키텍처를 테스트해보는 방법은 의외로 쉽습니다. HP 프로커브 스위치를 이미 사용중이거나, 새로 도입한 기업은 HP.com에서 무료로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아 스위치에 설치하면 됩니다. 오픈플로우 스위치와 호환되는 콘트롤러는 리눅스 기반으로 많이 개발돼 있기 때문에 이 역시 SDK를 내려받아서 서버에 설치하면 해당 서버가 오픈플로우 네트워크 콘트롤러가 됩니다.
HP는 쓰리콤을 인수하면서부터 ‘네트워크 시장의 룰을 바꾸겠다’고 얘기해왔습니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쓰리콤을 인수했고, HP의 브랜드 파워도 있으니 시스코를 견제해 보겠다”는 정도로 이해했는데, 오픈플로우 네트워크와 관련된 HP의 전략을 듣고 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네트워크 시장의 룰을 바꾸겠다”
HP의 전략은 네트워크 장비를 도입하는 방식, 네트워크를 디자인하는 방식, 운용하는 방식 모두에서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기업을 견제하거나, 매출을 끌어올리는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룰을 바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룰을 바꾸어야 시장에서 HP네트워크의 위상이 달라지겠지요.
HP는 지난해 12월 ‘플렉스(Flex) 네트워크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그 요지는 ‘기업이 특정 프로토콜이나 특정 벤더에 종속되지 않고 여러 벤더들이 개발한 혁신 기술들을 두루 도입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하며, 가상화·클라우드를 지원하는 완전히 새로운 네트워킹 기술이 필요하고, 기업의 비즈니스가 원하는 대로 IT인프라가 매우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극도로 쉬운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픈플로우라는 말이 관심사가 되기 전에는 미처 인식을 못했는데, ‘플렉스 네트워크’는 HP만의 오픈플로우 네트워크 아키텍처였습니다.
관련기사 - HP네트워크의 새로운 역할론, 플렉스 아키텍처
HP는 데이터 네트워크 분야에서 확실한 선두기업으로 분류되는 시스코·주니퍼 만큼의 지명도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반면, 브랜드 파워 때문에 무시 못 할 존재라는 것만은 누구나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정쩡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쓰리콤 인수 이후 HP는 네트워크 분야에서 가장 도전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기업입니다. ‘완전한 공개표준의 새로운 아키텍처로 네트워크 시장의 룰을 바꿔보겠다’는 HP가 과연 어정쩡한 자리를 벗어나, 확실한 존재감을 보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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