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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전략과 정책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 국가재난망 또 재검토

[사람중심] 국가재난망이 원점에서 다시 검토됩니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한국전자파학회와 재난망 연구용역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기존의 논의와 검토 결과를 참고한다고 하지만, 기술적합성이나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합니다.

국가재난망은 천재지변이나 대형 사고가 있을 때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소방·경찰 조직이 하나의 통신 체계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대응하고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2002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 이후 이러한 통합 통신 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2003년부터 당시 정보통신부에서 오랜 기술 검토를 거쳐 주파수 공용 통신 기술인 테트라(TETRA) 기술이 선정된 바 있습니다. 각종 사고·재난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경찰이 대부분 이 기술을 쓰고 있었고, 전세계적으로 재난망을 구축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쓰고 있을 만큼 이 분야에서 유용한 기능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내려졌기 때문이었습니다.


2008년 - 특정기업 몰아주기 논란
그러나 2008년부터 재난망 사업이 좌초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초의 논쟁은 왜 특정 벤더에게 시스템 공급권을 줬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업비가 과다하게 부풀려졌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논란이 불거지자 모 국책연구기관이 이와 관련된 연구 용역을 맡았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왔습니다. “(강원도 양양의 대형 산불사고 등을 감안했을 대) 산간, 농촌, 해안 지역 등 상대적으로 통신이 취약한 지역에 재난망 투자 예산을 더 늘려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종 테트라 시스템을 연동시키면, 즉 복수의 업체로부터 시스템을 공급받으면 비용을 낮출 수 있는데 왜 단일 업체의 제품을 선정했느냐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시스템 간의 연동이 쉽지 않은 상황이고, 기능이 뛰어난 시스템과 그렇지 못한 시스템을 연동하게 되면 결국 재난망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들은 쓰지 못하게 된다”고 밝혀졌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보고서는 “국가재난망은 복지국가의 척도가 되는 만큼, 재난망을 빨리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하지만, 결국 재난망을 재검토에 들어갔습니다. 언론은 물론, 일부 국회의원들도 부화뇌동했습니다. ‘특정 사업자 몰아주기로 혈세 낭비’로 코드를 맞추면 주목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당시에 특집 기사를 연재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한나라당 모 국회의원 보좌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 통화를 하면서 당시의 논란과 관련된 문제점, 재난망을 조기 구축의 중요성 등을 설명하고 취재를 통해 얻어진 자료들을 제공했는데, 정작 국회에서는 마치 애국지사라도 된 것처럼 ‘혈세 낭비’를 따지고 들더군요. 그래서 담당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인지 따져 물었더니 그 뒤로 전화를 받지 않더군요.


2010년, “와이브로로 해보자” vs. “너무 오래 걸려”
그렇게 중단됐던 재난망은 2010년 들어 갑자기 와이브로를 들고 나왔습니다. 토종 무선통신 기술인 와이브로를 재난망 기술로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구기관의 검토 결과, “와이브로로 재난망을 구축할 경우, 재난망에서 꼭 필요한 기능을 개발하는데 5년 정도가 소요된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재난망에는 특별한 기능들이 필요합니다. 위급한 상황을 각 재난대응 관련 기관에 한꺼번에 전달하는데 필요한 ‘무조건 가로채기 통화’, ‘우선순위 통화’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또, 1:1 및 1:多 보안이 확실이 보장돼야 합니다. 비상시에 다른 기관들과 새로운 통화그룹을 형성해 효율적인 통신을 할 수 있는 ‘통화그룹 재편성’ 같은 기능도 필수적입니다. 고속(시속 100~200km)으로 달리면서도 안정된 통화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기지국 통화권을 벗어났을 때는 단말이 중계기 역할을 해서 단말들끼리 통신할 수 있는 기능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2010년 당시 이와 관련한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열심히 기술 개발에 나서면 1~2년 정도면 되지 않겠냐?”고 얘기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기대를 걸면서 재난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자는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풍 곤파스가 밀려왔는데, 통신사들의 기지국 시스템이 훼손돼 통신이 되지 않는 지역들이 생겨났습니다.


2012년, 통신사 요청에 
 ‘상용 통신망’으로 재검토
이번에 한국전자파학회가 수행하는 연구의 핵심은 ‘상용망 이용’의 타당성 검토입니다. 통신사들이 이미 구축해 놓은 망을 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죠. 통신사업자연합회가 상용망 이용을 골자로 한 공동성명서를 채택하면서 재난망 사업과 관련해 또 하나의 가지가 뻗어나온 것입니다.

지금껏 재난망은 자가망을 구축하는 것이 대세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재난망에는 재난망으로서의 기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성명서를 냈고, 정부 차원에서도 상용망 이용을 검토한다는 것을 보면 자가망은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때를 같이 해 “상용망으로 결정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재난망 사업을 핸들링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상용망 검토’는 통신 업계의 관점에서 나온 얘기입니다. 보안이나 재난대응에 특화된 기능 등 기술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 논리로만 접근하면 또 다시 국가통합 재난망 사업이 고착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정부가 와이브로 재난망을 주창할 때도 특정 기업 및 통신사 밀어주기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가망 기술을 재난망에 쓰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재난망은 그 특수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부합하려면 특별한 기술적 기준과 기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재난망’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을 겁니다. 휴대전화가 한해 2,500만대 씩 팔리는 나라에서 일반적인 통화가 어려울까봐 재난망을 구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복지, 재난망 검토의 최우선 기준 돼야
앞서 정책연구기관의 보고서도 언급했듯이 재난망은 ‘복지’의 문제입니다. 대형 사고나 천재지변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가장 안전하고 완성도 높은 기술로 재난망을 구축하는 것이 ‘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만약 ‘사업’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문제가 달라질 것입니다. 재난망에 필요한 기능이 부족하거나 없는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채택하거나, 아니면 기술이 일정 수준에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주면 될 것입니다.

연구기관이나 재난 관련 공공기관들은 ‘복지’의 관점에서 자가망 기술을 이용해 재난통신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하게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꾸준하게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고, 재난망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복지’ 보다는 ‘사업’의 관점에서 결정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깁니다. 국민들 입장에서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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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