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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워크

백년지대계 교육, 4년에 끝내겠다?

【사람중심】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국내 IT 업계가 가장 기대하는 공공 IT 사업을 꼽으라면, 단연 ‘스마트 스쿨(smart school)’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디지털 콘텐츠를 수업에 적극 활용하고, 교과 특성에 맞는 교육, 학생의 능력·적성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초·중·고등학교의 교실 수업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입니다. 


초·중·고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은 그 동안 멀티미디어 교실, 전원학교 등의 이름으로 꾸준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4대강 정비 등 이른 바 ‘대형 국책사업’에 밀려 정작 본 사업이 추진되지 못하다가 올해 들어 다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콘텐츠 서버와 스토리지, 무선랜 인프라에 태블릿 PC, 출결 관리 시스템, 인증 서버 등 다양한 IT 시스템, 솔루션이 투입될 예정입니다.


정부는 스마트 스쿨 사업에 2005년까지 모두 2조 2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인데, 업계가 기대하는 것은 내년입니다. 올해와 내년에 1조 4000억원이 집중 투입된다고 하는데, 사실상 올해는 거의 추진된 것이 없다 보니 내년 물량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죠. IT 업계에서는 “최근 몇 년 간 공공시장마저도 말라붙었다고 할 정도로 IT 시장이 불황이었는데, 스마트 스쿨 사업으로 모처럼 숨통이 트이게 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교과서를 스마트 스쿨에 적합한 디지털 교과서로 만드는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만 5700여억원이 책정돼 있습니다.


한 예로, 태블릿PC 업계는 ‘대박’이 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 멀티미디어 교실 시범사업 등을 진행할 때 한 학교 당 2개 교실을 디지털화했는데, 이 때도 태블릿PC에 배당된 비용이 가장 많았습니다. 초·중·고 IT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한 SI사 관계자는 “중학교 한 학년에 교실 2개씩만 디지털화한다고 가정하고 한 교실에 태블릿PC가 30대씩이라고 계산하면, 한 학교 당 태블릿PC만 180대가 된다”면서 “스마트 스쿨이 전국 사업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물량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무선랜(WiFi) 업계도 디지털 교과서 사업에 기대가 큰데, 스마트 스쿨이 기본적으로 태블릿PC와 유비쿼터스 교육 환경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학교들에 무선랜 AP(액세스 포인트) 및 네트워크 케이블에서 전원을 공급해주는 POE(Power over Ethernet) 스위치 등 약 5000~6000만원 규모의 장비가 구축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미 무선랜을 구축했던 학교들도 콘텐츠 사용량 증가 등에 대비해 무선랜을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예상돼 관련 업계의 기대감이 높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2015년까지 2조 2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것 외에는 정확한 사업 추진 계획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거 ‘멀티미디어 교실’ 사업 때는 ‘1차년도에 몇 개 학교, 2차년도에 몇 개 학교...’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 나와 있었습니다. 학교들도 여기에 맞춰서 사업 신청을 하고, IT 업계도 영업 계획을 세워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국 모든 학교를 스마트 스쿨로 바꾼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으니 어떻게 준비를 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IT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입니다.


이런 와중에 최근에는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가 지극히 낮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유은혜 의원(민주당)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디지털교과서 연구학교 299개교를 조한 결과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는 것이죠.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를 학업성취도, 자기주도 학습 능력, 문제해결 능력, 교과태도, 학습몰입도 등 5개 항목으로 평가했는데“의미있는 효과가 있었다”고 답한 비율이 21.%%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자체 분석한 결과에서도 “별 효과가 없었다”는 응답이 78%였습니다.


학생들은 디지털 교과서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는데 “3시간 이상 사용하면 눈이 아프다”, “수업 준비시간이 많이 걸린다”, “콘텐츠와 단말기 오류가 자주 일어난다”는 등 여러 가지였습니다. 특히 이번 조사를 위한 질문 대부분이 긍정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것이었는데도, 효과가 극히 낮은 것으로 나왔다는 것은 사실상 효과가 없다는 의미라는 게 유은혜 의원과 조사를 함께 한 좋은교사운동의 지적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디지털 교과서 사업을 강행한다는 방침입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측은 “유의미한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학생들이 다양한 매체 익숙한 상황이므로 조금씩 학습환경을 바꿔가자는 의미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는군요.



디지털 교과서, 스마트 스쿨 사업이 다양한 교육 매체에 적응력을 키워주는 사업이었던가요? 기존의 교실 환경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켜서 학습 효과를 높이고, 이를 통해 창의적 인재 양성, 자기주도학습·개별학습·협력학습 등 다양한 학습 참여, 교사의 학습자료 준비 부담 해소, 학부모의 학습 부담 및 교육비 부담 줄이기 등을 도모하는 사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스마트 스쿨 사업의 단초가 되었던,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스마트교육 추진전략(안)’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이 추진전략의 슬로건은 ‘인재대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수조원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의 효과가 없음이 이미 확인되고 있다면, 전략의 재점검해서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고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또,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가면서 효과와 오류를 검증하는 접근법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사고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고, 그 당연한 인식을 간과했을 때 생기는 엄청난 폐해는 4대강 사업을 비롯한 몇몇 국책 사업에서 충분히 확인된 바 있습니다.


교육 환경을 개선해서 인재대국을 만드는 사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업의 목적은 ‘정부가 교육 분야에 통크게 투자한다’거나, ‘학생들이 다양한 교육 매체에 적응됐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그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업이 추진됐을 때 ‘그 사업을 내가 주도했다’고 이름을 높이거나, 사업과정에 참여해 이득을 얻는 일부 사람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누군가 이득을 얻고, 누군가 이름을 걸었다고 해서 교육 환경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4대강 공사로 돈을 번 건설회사나 그 사업을 주도한 공무원들이 녹조와 범람, 가뭄으로 얼룩진 생태계를 되돌려 놓지는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도대체 왜 생겼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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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