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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전략과 정책

트래픽 폭증의 시대, 네트워크를 무한정 늘릴 수 없다면...

[사람중심] '트래픽'은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등장하는, IT 분야 최고의 화젯거리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모바일 동영상 트래픽, SNS들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 스마트폰 게임 앱으로 실시간 양방향 게임을 즐길 때 유발되는 트래픽 등 트래픽의 증가 속도는 가히 놀라울 지경입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확산에 따른 모바일 데이터 서비스 이용 증가, 인터넷 기반의 전화/방송 서비스 이용자 증가는 통신사들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정작 통신사들의 표정은 밝지 못합니다. 통신망 확장의 부담감 때문입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데이터 이용량이 많다고 해서 그에 비례해 마냥 이용료를 높여 받을 수도 없고, 도심의 인구밀집 지역에서는 벌어들이는 이용료 보다 많은 투자를 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통신사들로서는 데이터 요금 수입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변화지만, 예상 못한 속도로 데이터가 증가하는 통에 원래 계획보다 훨씬 빨리 네트워크에 추가 투자를 해야 한다면, 차라리 데이터 서비스 수입을 포기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네트워크에 내시경을 장착하는 기술

그런데, 데이터 트래픽이 급격히 늘어나면 통신사들은 일단 네트워크 용량을 늘리고 봐야 하는 것일까요? 혹시 네트워크 운용을 좀 더 똑똑하게 해서 최대한 네트워크 투자를 줄이면서도 늘어나는 트래픽을 감당할 수는 없는 걸까요? 


통신사들은 이미 이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트래픽을 정밀하게 분석해서 고객별로, 애플리케이션별로 네트워크가 어느 정도 사용되는지, 어떤 패킷이 네트워크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애플리케이션 때문에 네트워크에 부하가 걸리는지 하는 점들을 파악하는 겁니다. 이런 솔루션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이 DPI(Deep Packet Inspection) 솔루션입니다. 말 그대로 패킷을 깊숙이 들여다봄으로써 위에 나열한 여러가지 특성, 패턴을 파악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DPI 솔루션을 쓰는 이유가 네트워크 상태를 정밀하게 파악해서 네트워크 성능에 문제가 없도록 대비하거나, 네트워크 대역폭이 낭비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서비스공급업체(SP)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활용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의 통신사들이 DPI 기술을 이용해 자사 고객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남아프리카의 대표 통신사업자 중 하나인 복스텔레콤(Vox Telecom)은 온라인 게임을 구매하는 자사 가입자에게 게임 성능을 우선 지원하는 40GB 용량의 대역폭을 추가로 제공하는 상품을 최근에 출시했습니다. 데이터 용량 소비가 많은 대용량 인터넷 게임을 저렴한 비용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대용량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고, 게임을 좋아하는 경쟁사 고객들을 불러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네트워크 확장 없이 저렴한 대용량 서비스 제공하기

그런데 40GB나 되는 데이터 서비스를 매우 저렴한 비용에 제공하는 방법이 재미있습니다. 이 서비스를 위해네트워크 용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네트워크에서 놀고 있는 대역폭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전체 네트워크 용량 가운데 고객들이 사용하는 실제 용량을 제외한 나머지를 가지고 40GB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려면 해당 지역의 가입자들이 실제로 네트워크를 어느 정도 이용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될 것이고, 남는 대역폭을 몇 사람의 게임 고객에게 (40GB씩) 나눠 줄 수 있는지도 예측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또, 정액제나 부분종량제에 가입했지만, 데이터 사용량이 많지 않은 고객들의 서비스 품질 보장을 위해 어느 정도의 대역폭을 남겨둬야 되는지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어야 되고,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실제로 많은 대역폭을 할당하지 않으면서도 이들 애플리케이션의 품질을 보장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트래픽의 추이와 고객이 서비스 이용 추이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 특징을 파악함으로써 네트워크 추가 투자 없이도 일반 고객들에게는 기존의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고, 게임을 즐기는 고객들에게는 대용량 데이터 서비스를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합니다. 게임을 즐기는 고객 입장에서는 대용량 인터넷 게임을 마음껏 즐기면서도 빌쇼크(Bill Shock), 즉 요금폭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복스텔레콤은 캐나다 기업 샌드바인(Sandvine)의 DPI 기술을 이용해 이 같은 서비스 차별화에 성공했는데, 샌드바인은 DPI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입니다. 통신사와 방송사 같은 SP 고객만을 대상으로 DPI 솔루션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국내에서는 SK브로드밴드가 고객입니다. 


네트워크 분석…비즈니스 인텔리전스의 시작

21일, '넷이베츠 아시아태평양 2013(태국 푸켓)'에서 만난 샌드바인의 헨릭 글러드 영업담당 이사는 "샌드바인은 트래픽 관리 기술과 사용 관리(Usage Management) 기술을 이용해 네트워크 트래픽을 정밀히 분석해 대역폭 낭비와 성능저하를 막고, 보다 나은 서비스 상품을 제공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트래픽 관리 기술은 비즈니스 로직,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등의 요소를 고려해 네트워크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한정된 네트워크 자원 안에서 가입자에게는 보다 나은 서비스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서비스 제공업체에게는 네트워크 구축 비용을 절감하면서 수익은 향상시킬 수 있게 해줍니다.미래의 트래픽 예측을 통해 가장 경제적으로 인프라 확장에 투자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해 줍니다.


사용 관리(Usage Management) 기술은 고객이 유무선 네트워크 및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 및 분석함으로써 과금을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서비스 제공과 관련한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해줍니다.


글러드 이사는 "샌드바인은 이러한 두 가지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SP 고객에게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를 제공한다"면서, "과거와 현재의 네트워크를 이해하고, 미래의 네트워크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더 나은 비즈니스 전략을 세울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는 "네트워크의 흐름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특징을 분석할 수 있으면, 네트워크 확장・운용 계획과 새로운 서비스 계획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트래픽 정밀분석은 과유불급?

그런데, 통신사가 고객의 네트워크 및 서비스 이용 현황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과 관련해 이용자들 사이에서 “내가 어떤 서비스를 쓰는지를 통신사가 들여다보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내 시민단체들이 mVoIP 서비스를 차단한 KT와 SKT를 고발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분명한 것은 DPI 솔루션을 도입하는 것이 단순히 트래픽과 서비스 이용 현황을 분석하는 솔루션을 도입하는 일이 아니라, '서비스 혁신을 도입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통신사는 DPI 기술을 이용해 정확한 현황을 파악할 수 있고, 합리적인 기준과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그 혜택은 이용자에게 돌아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서비스 향상을 위해 이용자의 사생활을 침해해도 되느냐?" 하는 점은 여전한 논란거리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절적한 선은 어디까지일까요? 기술이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닙니다.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서비스 개선을 위한 면밀한 분석'과 '고객의 사생활을 보장하는 수준의 분석'의 절묘한 경계를 찾아주는 방법론 혹은 기술은 없을까요? 빅데이터 기술 같은 것을 이용해서 특정 기업의 고객들이 사생활 침해, 서비스 향상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피력했는지를 면밀히 분석한 다음 절묘한 기준점을 제시해주는 컨설팅 서비스가 있다면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요? 기업들이 오로지 '비즈니스'만을 쳐다보지 않고, 고객의 사생활 보호와 인권 같은 가치를 최고로 생각하는 세상이 온다면, 한번쯤 해볼 만한 사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