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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전략과 정책

짜증나는 교통정체, 복잡한 신호등 없는 네트워크가 있을까? ①

【사람중심】 2000년을 전후해 테헤란로에서 김포공항, 인천공항까지 가는 모노레일 구축 계획이 관심을 끈 적이 있습니다. 통신, 소프트웨어, 컴퓨팅시스템 등 IT 산업이 활성화됨에 따라 이 지역에 벤처기업 및 외국기업의 한국지사들이 속속 둥지를 틀게 됩니다. 지식기반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의 테헤란로 밀집도가 더 높아진 것이죠. 그런데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모이게 되자, 강남 테헤란로에서 공항까지 가는 교통편이 너무 번거롭고, 거리도 멀다는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출장이라도 한번 갈라치면, 외국에서 오는 손님이라도 마중 나가려면 이른 바 '길바닥에 뿌리는'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겁니다.


이에 강남구가 모노레일 구축 계획을 세웠는데, 테헤란로 어느 빌딩 고층에서 승차해 공항까지 ‘한방에’, 그것도 논스톱으로 하늘 위를 달리는 모노레일을 만든다는 얘기가 나돌았고, 소식을 접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거 괜찮네"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야 되거나, 택시를 타더라도 수많은 교통신호와 병목현상을 헤치고 공항까지 이동해 본 사람들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얘기였지요.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 주변 어느 고층건물  상층부에서 승차한다'는 제법 구체적인 얘기까지 떠돌았습니다.


2006년 이 계획이 백지화됐지만, 지금도 가끔 해외나 지방 출장으로 공항에 갈 일이 생길 때면 "논스톱 모노레일이 생겼다면 얼마나 편리했을까'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인프라에 너무 많은 세금을 쓰는 것은 반대입니다만, 도로는 복잡한데 길 위에는 자동차가 너무 많고, 짜증날 정도로 신호등도 많은 강남에서 인천공항까지 가기란 어떤 교통수단을 택하더라도 매우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신호등·차량정체…병목현상 급증하는 빅데이터 시대

빅데이터 시대의 데이터·트래픽 처리도 이와 같습니다. 서버의 성능이 강화되고, 가상화로 단일 시스템 안에서 여러 대의 서버(VM)가 돌아가게 됐습니다. 같은 규모의 서버 클러스터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작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서버 가상화 때문에 데이터센터의 구조는 더욱 복잡해졌죠. 데이터를 전달받을 상대편 데이터센터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비디오 콘텐츠 이용과 소셜미디어의 확산으로 데이터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데이터센터의 이용 방식도 변했습니다. 가정에서 일일이 전기를 생산해서 쓰지 않고 전기회사의 것을 쓴 뒤 사용량만큼 돈을 내는 것과 같은 방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IT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탐독했던 책 제목처럼 그야말로 '대전환(Big Switch)'의 시대입니다.


도로가 복잡해지고 자동차가 많아졌는데도, 도로는 확장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곳곳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도시는 심각한 교통체증을 겪게 됩니다.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0년 간 서버와 스토리지의 성능은 약 100배 정도 늘어났다고 하는데, 네트워크 성능은 1Gbps에서 10Gbps로 10배 정도 늘어나는데 그쳤습니다. 서버/스토리지의 입출력(I/O)에 병목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서버, 스토리지 전문업체들이 엄청난 처리 성능의 장비들을 내놓고 있습니다만, 이런 환경에서는 성능 강화 또한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서버·스토리지 성능 100배 확장 Vs. 네트워크는 고작 10배

네트워크 용량을 확장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느린 것과 함께 또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서버 가상화와 네트워크의 관계입니다. 서버 한대에서 하나의 애플리케이션만 돌아갈 때는 서버에 장착된 한개의 NIC(Network Interface Card)이 서버의 명령을 네트워크로 전달하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한대의 서버지만, 그 안에 10여대의 서버가 제각기 다른 애플리케이션 돌리는 가상화 환경에서는 문제가 다릅니다.


10대의 서버가 동시에 명령을 수행할 때 한대의 NIC는 어떤 서버의 어떤 데이터를 우선 처리해야 할까요? 각 서버의 명령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골고루 역량을 배분할 수는 있는 걸까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위치 공급업체들이 가상화 네트워킹 기술들을 내놓고 있지만, 각 업체별로 기술의 성격과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호환하는 것도 만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더넷이라는 기술이 ‘가상화’라는 환경을 염두에 두지 않고 개발된 것이다 보니, 가상화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복잡한 절차가 끼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아직 국내에서 생소하기 그지없는 인피니밴드(Infiniband)라는 기술입니다. '무한한 네트워크 대역' 쯤으로 해석하면 될까요? 


최강 성능과 무한대의 확장성…‘인피니밴드’에 주목

인피니밴드는 프로세서와 입출력 장치 사이의 데이터 흐름을 정의한 규격으로, 보다 큰 대역폭과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확장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입니다. 초당 최대 2.5GB의 처리량, 6만4000개 주변장치 지원 등을 주요 사양으로 하는데, 대용량 데이터 처리와 안정성 향상을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이 기술은 제어 정보에서 목적지 주소까지 이동할 메시지 경로를 결정해주기 때문에 개별 시스템 버스, 즉 데이터가 지나다니는 개별 통로 자체가 하나의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서버와 저장장치 양쪽에 주소를 지정할 수 있는 여러 개의 기억공간을 지원합니다. ‘인피니밴드 기술이 가상화에 최적화되었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128비트 주소와 함께 IPv6를 사용하기 때문에 주변장치를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인피니밴드는 원래 IBM·HP·컴팩이 개발한 Future I/O라는 설계와, 인텔·MS·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이 개발한 Next Generation I/O가 결합되어 탄생한 것입니다. 서버의 입출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됐기 때문에 InfiniBand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까지는 아예 ‘System I/O’라고 불리기도 했다는군요.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 톱500 목록을 들여다보면, 데이터 급증의 시대에 인피니밴드의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자료에서 인피니밴드는 톱500 슈퍼컴퓨터 중 226대에 적용됐습니다. 기가비트이더넷이 적용된 시스템은 188대라고 하니, 확실한 우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기가비트이더넷은 이제 막 40G 장비가 도입되고 있는 반면, 인피니밴드는 이미 56G 장비가 보편화되었고, 올해 연말이면 100G 장비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IT·멀티미디어 서비스 '성능 보장의 열쇠'

이러한 장점을 기반으로 인피니밴드는 기업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오라클은 자사 데이터분석 시스템에, MS는 윈도서버 2012에 인피니밴드를 채택했습니다. 인피니밴드는 거의 모든 서버, 스토리지 제조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들 제조사가 자사 시스템의 I/O 아키텍처로 인피니밴드를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국가보훈처는 200대 가량의 서버를 가동하는 정보 분석·전송 작업에 인피니밴드 기술을 이용 중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엔진 빙(Bing.com)의 지도 서비스가 인피니밴드 기술 위에서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기술이 보다 많은 데이터를 더욱 빠르게 처리해야 서비스에 최적을 성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임을 증명합니다.


시스코가 서버-스토리지-네트워크 통합 시스템(UCS)를 개발한 것이나, HP·델이 네트워크 벤더를 인수한 것은 네트워크 장비가 단순히 ‘IT 인프라의 한 영역’이어서가 아닐 것입니다. IT가 통합돼야 최고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며, 한발 더 나아가 클라우드·빅데이터 시대에 네트워크가 IT 서비스의 성능을 책임지는 핵심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I/O의 병목을 줄이는 작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현재 네트워크 기술의 주인공은 이더넷입니다. 앞으로도 그 위상은 크게 변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서버 to 서버, 서버 to 스토리지의 데이터 전송량이 늘어날수록 고용량·고속 인터커넥트 기술의 필요성은 커질 것입니다. 인피니밴드 기술은 ‘시스템 I/O’를 넘어, ‘IT·멀티미디어 서비스 성능 보장의 열쇠’로 그 위상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