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초고속 인터넷과 IPTV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통신사업자들은 최근 들어 고민이 적지 않습니다. 높아지는 투자비용에 걸맞는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통신사업자들의 이러한 고민은 클라우드컴퓨팅 사업자와 OTT(Over-The-Top: Internet video streaming service provider)들의 등장에 따른 것입니다. 클라우드컴퓨팅 사업자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데다, 돈이 되는 콘텐츠 서비스는 OTT에게 뺏기고 있는 실정이죠.
기업은 IT 인프라와 솔루션을 전기·수도·가스처럼 서비스 받기를 원하고, 일반 고객은 콘텐츠를 자신의 기호에 맞게 맞춤형으로 제공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통신사업자의 사업 기반은 이러한 시장의 요구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통신사업자의 핵심 인프라는 당연히 ‘네트워크’인데, 통신사업자들이 하는 비즈니스의 거의 대부분은 이 네트워크를 그저 회선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더미 파이프’나 ‘빨랫줄 장사’ 같은 표현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죠. 문제는 더미 파이프를 제공하는 오래된 이 사업 방식은 ‘가격’ 말고는 차별화 포인트가 없다는 점입니다. 대중의 주목을 받는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해도 회선 제공자는 수익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트래픽이 늘어나면 인프라를 증설해야 되지만, 수익은 OTT의 몫이 됩니다(2012년 하반기 북미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33%가 Netflix이고 15%가 YouTube로 두 회사의 트래픽이 거의 50%에 육박한 상황입니다.).
통신사업자와 비교해서 콘텐츠 사업자는 고객의 서비스 만족도가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고객의 구미에 맞는 서비스를 대령하기 때문입니다. 고객의 음악적 취향을 파악해 선호할 만한 음악을 제공하는 서비스, 고객의 특별한 이벤트에 맞게 식당과 공연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고객의 로열티를 높여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드웨어에 의존하는 네트워크의 한계
그런데 왜 네트워크는 그렇지 못할까요? 이 차이는 통신사업자의 문제라기보다는 네트워크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XaaS(Everything as a Service)라는 용어가 보편화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은 모든 IT 리소스(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맞춤화된 온디맨드 형태로 제공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네트워크만은 그렇지 못합니다.
최근 SDN(Software Defined Network)이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네트워크는 여전히 하드웨어 어플라이언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통신사업자가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한다고 하면 그것은 ‘새로운 하드웨어(네트워크 장비) 도입’과 동의어가 됩니다. 구축하는데 수년~수개월이 걸리고, 변경이나 재구성이 어려우며, 비용 회수에 오랜 기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실패했을 경우 만회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네트워크는 경직되기 마련이고, 운영 역시 수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네트워크 트래픽이 급증하는 것은 통신사업자 입장에서 오히려 고역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 회선 제공 사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통신사업자의 인프라가 클라우드컴퓨팅 시대에 걸맞는 유연한 인프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술 측면에서는 물리적 인프라 종속에서 벗어나 가상 인프라를 적극 도입해야 합니다. 사업 측면에서는 단순 연결 서비스에서 벗어나, 사용자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능동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인프라 운영은 더욱 쉬워져야 하고 때때로 고객이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네트워크 운영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프라와 서비스 모두가 클라우드 모델로 가기 위한 필연적인 변화입니다.
통신사업자의 고민을 해결해줄 네트워크 가상화 기술은?
이런 요구사항들이 대두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상화 네트워크 기술은 하나의 장비를 여러 개로 나누거나, 여러 개의 장비를 하나로 묶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데이터센터입니다. 데이터센터 내부의 네트워크를 가상화하거나 데이터센터와 데이터센터 간의 연결이 주된 관심사입니다.
이런 가운데 주니퍼네트웍스가 올해 초 선언한 ‘High-IQ 네트워크’를 구현할 구체적인 솔루션들을 발표했습니다. 통신사업자와 클라우드사업자의 네트워크를 손쉽게 스케일 업/아웃/다운할 수 있고, 패키지화된 NFV 솔루션으로 네트워크 서비스를 손쉽게 가상화할 수 있으며, DevOps를 통해 자동화된 운영모델을 제공하는 것이 High-IQ 네트워크의 핵심 가치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니퍼는 가상화 라우터인 ‘vMX’와 오픈스택 기반 소프트웨어 플랫폼 ‘콘트레일 클라우드(Contrail Cloud)’, 프로그래밍을 통해 IP 및 IT를 통합운영할 수 있는 ‘주노스 데브옵스(JUNOS DevOps)’ 기능이 그것입니다.
▲ vMX
x86 서버에 탑재할 수 있는 가상라우터로, 주니퍼 라우터 최고 인기모델인 MX 라우터를 소프트웨어로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합니다. “기존의 물리 라우터와 동일한 성능·기능을 갖는 최초의 가상 라우터”라는 것이 주니퍼의 설명입니다. 네트워크 OS가 같기 때문에 기존 MX 라우터와 똑같이 운영할 수 있고, MX 라우터와 vMX 라우터 간에 서로의 네트워크 구성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주니퍼의 JUNOS가 통신사업자들이 15년 이상 운영해 오던 단일OS라는 것도 강점입니다(경쟁사들은 여러 OS가 혼재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vMX는 통신사가 새롭게 라우터를 설치해야 될 상황이 왔을 때 x86 서버에 설치해서 바로 런칭할 수 있고(스케일 아웃), x86서버 한대로 제공하다가 얼마든지 병렬로 늘리거나 물리 라우터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스케일 업). 또, vMX에 새로운 서비스를 런칭했다가, 예상만큼 반향이 없으면 곧바로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 있습니다(스케일 다운).
▲ 콘트레일 클라우드
콘트레일 클라우드는 NFV를 어떻게 네트워크에 도입할 것인지를 고민한 주니퍼의 결과물입니다. 서버와 스토리지를 포함하고 있고, 주니퍼 연구진이 최적화한 오픈스택 플랫폼도 결합되었습니다. 이것을 네트워크와 연결하기 위해 라우터와 스위치도 통합되어 있습니다.
콘트레일 클라우드에는 주니퍼의 가상 방화벽을 비롯해 여러 파트너들의 네트워크 기능을 탑재할 수 있습니다. 아카마이, 샌드바인, 리버베드 같은 회사들이 파트너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국내 업체가 경쟁력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면 통신사업자 인프라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게 됩니다.
▲ JUNOS DevOps
JUNOS DevOps 기능은 프로그래밍을 통해 네트워크 운영·관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해줍니다. 이 기능의 가장 큰 장점은 네트워크 OS인 JUNOS의 연속성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기존에는 네트워크 OS가 필요할 때 오랫동안 검증하고 파일럿 테스트를 거친 뒤 업그레이드를 완료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는데, 이처럼 지난한 과정은 타임투마켓을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JUNOS DevOps 기능을 이용하면 OS의 버전 업데이트 없이도 새로운 하드웨어 기능을 추가하거나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PC에서 특정 드라이브를 업데이트하는 것처럼 네트워크 기능을 쉽게 업데이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가상CPE 등 진일보한 네트워크서비스 제공
그렇다면 주니퍼의 새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 ‘가상 CPE(customer premises equipment:가입자단말장치)’ 서비스를 할 수 있습니다. 통신사업자가 기존에 고객의 회사에 설치했던 네트워크 장비를 이제 자사(통신사) 네트워크단에 설치해 서비스할 수 있습니다. 통신사업자 입장에서는 장비의 관리가 쉬워지고, 서비스를 유연하게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가상 PE(provider edge)’ 기반의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를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물리적 라우터 하나를 가상화해서 다수 고객에게 서비스를 하는 경우, 한 고객에서 업그레이드가 일어나면 일시적으로 모든 고객의 서비스를 중단해야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vPE를 이용하면 고객별로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포팅할 수 있습니다.
또, 기존의 서비스를 다른 퍼블릭·프라이빗 클라우드에도 설치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사 데이터센터와 KT 클라우드컴퓨팅 센터에 설치된 vPE 사이에 VPN 터널을 연결하면, 프라이빗 클라우드과 퍼블릭 클라우드를 완벽히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가상 RR(route reflector), 가상 BNG(broadband network Gateway)가 모두 지원되기 때문에 네트워크 운영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높일 수 있게 해줍니다.
통신사업자 인프라의 고민 “클라우드사업자와 경쟁할 수 있도록”
주니퍼네트웍스 오동열 이사는 “High-IQ 네트워크 아키텍처는 통신사업자가 클라우드컴퓨팅 사업자와 경쟁할 수 있도록, 기존의 인프라를 좀 더 유연하고 효율성 높은 인프라로 전환시켜 준다. 새로운 솔루션과 기능은 이러한 High-IQ 네트워크 아키텍처의 사상을 실제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시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니퍼네트웍스는 미국의 AT&T가 추진하고 있는 인프라 가상화 프로젝트 ‘도메인 2.0’에도 공급업체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여러 통신사와 네트워크 가상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NFV는 통신사업자 입장에서 클라우드컴퓨팅 보다 훨씬 큰 개념입니다. 클라우드 사업자들과 같은 서비스 유연성을 갖게 해주는데다가, 기존 회선 서비스에 부가서비스를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통신사들이 전사적으로 NFV를 검토·추진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NFV와 관련된 발표가 끊이지 않으면서도 어떤 서비스를 해야 될 지 정확한 상이 없는 것이 통신사업자의 고민거리입니다. 인프라를 가상화해서 유연성을 높이더라도, 제공하는 서비스는 물리 네트워크에서 제공하던 것을 가상화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주니퍼의 조언은 “당장에 획기적인 서비스가 나오지 않겠지만, 아키텍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고, 서비스 유연성과 즉시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뭔가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기존에 했던 고민과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적절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주니퍼네트웍스의 가상 라우터와 NFV 플랫폼은 통신사업자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에 초점을 맞추는 경쟁사들과 조금 다른 행보입니다. SDN·NFV를 놓고 통신사업자들의 고민이 점치 깊어지는 상황에서 “기술·사업·운영관리라는 모든 측면에서 통신사업자가 클라우드컴퓨팅 사업자와 경쟁할 수 있는 인프라로 전환하는 것을 돕는다”는 주니퍼의 전략이 과연 얼마나 시장에 어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
'네트워크&통신 > 전략과 정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VM웨어의 네트워크 가상화...“파트너는 주니퍼” (0) | 2014.12.05 |
---|---|
“당신의 아이디어를 연결하라”…주니퍼 아태지역 애널리스트&미디어 이벤트 (0) | 2014.12.04 |
국내기업들, 네트워킹·데이터센터 분야 ‘외부펀딩’ 늘린다 (0) | 2014.08.04 |
네트워크 기술, 클라우드서비스의 미래를 정의한다 (0) | 2014.05.09 |
서비스가 불안하다… 네트워크가 문제일까? (0) | 2014.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