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지난 27일 MVNO(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의 네트워크 이용 대가와 관련된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MVNO 출범은 최근 통신 업계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공청회에서 온세텔레콤, 한국케이블텔레콤(KCT), CJ헬로비전, 별정사업자연합회(KTA) 등 예비 MVNO들(이하 K-MVNO협의회)은 한 목소리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동통신 재판매 사업 고시안에 반발했습니다. 망을 빌려 쓰는 입장에서 최대한 좋은 조건을 따내려 하는 것은 당연한 노력이겠지만, 이번 공청회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 이외의 의미가 없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공청회에 앞서 방통위는 MNO(이동통신망사업자)들이 MVNO에 망을 제공할 때 적용되는, 이른바 ‘도매 제공’ 할인율을 30%선으로 고시했는데, 이 조건으로는 도저히 MVNO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예비 MVNO들의 주장입니다.
망 이용대가와 관련해서 ‘회피가능 비용’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회피가능 비용’은 MNO 즉 기존 통신사가 마케팅 비용 등 소매제공을 하지 않음으로써 줄일 수 있는 비용을 말하는데, 재판매 사업자에게 도매로 망을 빌려주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때의 마케팅 비용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도매 제공’ 비용은 소매요금에서 회피가능 비용을 제외한 금액으로 정해집니다.
망을 빌려주는 쪽에서는 전체 소매비용을 100원이라고 했을 때 회피가능 비용을 40원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MVNO는 60원을 내고 망을 빌려 옵니다. 예비 MVNO 측에서는 “60원을 내고 망을 빌려와 80원에 서비스를 한다면 원가가 75%나 된다. 25%인 나머지 20원으로 마케팅 비용 쓰고, 단말기 보조금 지급하고, 이윤까지 남겨야 하는데 과연 사업이 되겠냐"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60원에 망을 빌려오면 회피가능한 비용, 즉 MVNO가 이익으로 붙일 수 있는 최대치가 40원이기 때문에 100원에 공급하면 산술적으로는 이윤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기존 통신사와, 또 다른 MVNO들과 경쟁하려면 요금인하 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100원에 공급하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K-MVNO가 방통위 고시에 반발하는 것은, 이런 식이면 기존 이통사만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번다는 겁니다. “박리다매로 이윤을 취하는 도매의 경우 소매보다 마진율이 적은 것이 상식인데도, 현재의 방통위 안은 이통사가 도매활동으로 리스크를 줄이게 됨에도 불구하고 도매마진율이 소매마진율을 초과한다”는 게 K-MVNO의 설명입니다.
K-MVNO로서는 “도매제공 할인율이 현재 방통위 안인 30~35% 선에서 결정된다면, 큰 요금할인이 이루어져야 사업의 성공을 기대해볼 수 있는 MVNO 입장에서 사업성이 전혀 없다. 사업 참여 자체가 회의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이렇게 되면 사실상 방통위의 MVNO 정책이라는 것이 결국 MVNO 하지 말라는 정책이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기존 통신사 보다 안 좋은 조건으로 서비스 경쟁을 해서 어떻게 해서든 이길 테면 이겨보든지, 아니면 말든지”가 되는 거죠. 직접 망에 투자하지 않고 빌려서 쓰는 거니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냐는 의견들도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MVNO를 허용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국민들이 저렴하게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 하나가 없어지는 셈이기 때문이죠.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방통위의 이런 정책 결정은 이미 예견돼 온 것입니다. 정통부 시절부터 방통위로 바뀌고 난 이후에도 통신 정책의 핵심은 결국 ‘기존 통신사 기득권 보호’였습니다. 통신사의 기득권을 해칠 수 있는 그 어떤 정책도 허용된 바 없다는 것을 모로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망 중립성’이라는 얘기가 IPTV 서비스 출범을 앞두고 많이 논의된 바 있습니다. 차별화된 콘텐츠나, 특정 지역 안에서 고객 기반을 가진 서비스 제공업체(SP)가 통신사 망을 빌려서 IPTV를 제공할 수 있도록, 통신사가 모든 SP에게 동일한 이용료를 받고 망을 임대해야 한다는 것이 ‘망 중립성’의 골자입니다.
IPTV 서비스 시행을 앞두고 당시 정통부는 방송위원회가 딴지를 걸어서 서비스가 출범하지 못하는 것처럼 호도했지만, 사실은 망 중립성이 큰 쟁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대형 통신사가 IPTV 서비스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으려면, 망을 빌려서 서비스하려는 SP에 되도록 많은 비용 부담이 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니까요.
제 기억으로 2006년 즈음에 영국의 정보통신부(그 나라 정식 명칭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하여튼 우리의 정통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정부부처였습니다) 장관이 방한한 적이 있었는데, 정통부가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영국 정통부 장관도 IPTV 서비스를 빨리 시행하는 것이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단말, 통신장비 등 여러 시장에서 경제유발 효과가 크다고 했다”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방송계가 딴지를 걸고 있어 IPTV 서비스가 방황하고 있다는 ‘남의 탓’까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단기간에 IPTV 서비스가 크게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망 중립성을 철저하게 보장했기 때문입니다. 영국 최대 통신사 BT는 정부의 이런 정책 이후 망을 빌려 쓰는 여타 SP들에게 자신들의 자회사가 동일한 조건으로 망을 빌려줍니다. 영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통신서비스 선진국들이 이렇게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보도자료는 이런 내용이 쏙 빠진 채, ‘영국은 IPTV 서비스 이후 단기간에 SP가 수십개가 됐는데, 우리 현실은 안타깝다’는 식으로 호도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통신 정책을 담당하는 주무기관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최종 소비자 편에 서서 편익을 생각지 않고, 특정 통신사만을 고려한 정책을 고려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MVNO의 망 이용대가 산정과 관련된 이번 정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현 정부는 출범 전 대통령 선거 당시부터 ‘통신비 경감’을 내걸었고, MVNO 허용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무 부처의 정책은 자연스러운 경쟁 속에서 통신비를 경감시킬 수 있는 MVNO의 출현을 막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무부처는 정부 정책을 따르지 않으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정부의 정책이라는 것이 그냥 허울뿐인 공약(空約)에 불과했던 것일까요?
물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MVNO들이 대형 통신사한테 조금이나마 타격을 주고야 말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고 손해를 보든 말든 서비스 요금을 왕창 내리거나, 아니면 정부 시책에 적극 동참하고자 봉사하는 마음으로 가격을 내리면 됩니다. 둘 중 어떤 쪽이 됐든 망을 빌려주는 통신사(MNO)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예비 MVNO들은 적어도 소매가격과 비교해 60~70%의 할인율이 적용돼야 사업을 할 만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수치에 MVNO의 욕심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방통위 및 MNO와 생각의 격차가 너무 큰 것이 사실입니다(방통위의 고시안은 실제로 통신사 중 일부가 주장했던 할인율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과거 IPTV 사업과 관련해 케이블 업계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신사에 전국 면허를 주는 등 기존 방송 서비스 시장의 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통신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던 전례로 비춰볼 때 이번에도 약자인 예비 MVNO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제 예상입니다.
하지만, 예상이 틀리길 기대해 봅니다. 합리적인 할인율이 적용돼서, 보다 저렴하게 양질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중심 김재철>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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