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십년대계(十年大計). 10년 뒤를 내다보고 미리 큰 계획을 세워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십년대계는 미래를 예측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뜻으로 즐겨 쓰이는 사자성어이지만, 어쩐지 이 말은 IT 업계에는 어울릴 것 같지가 않습니다. 기술과 시장의 패러다임이 워낙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10년 뒤를 준비하며 기나긴 계획을 세우는 일은, 어쩌면 너무 무모한 시도인지도 모릅니다.
매년 세계 유수의 시장조사 기관이나 컨설팅 기관이 내놓는 ‘올해 주목받을 IT 기술’ 류의 보고서를 살펴봐도 같은 기술이 2~3년 넘게 이름을 올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고, 5년을 넘게 자리를 지키는 기술은 눈 씻고 봐도 찾기 힘든 지경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십년대계는 어쩌면 현재 시점에서 별다른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자들의 핑계거리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어제 놀라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미국 시간으로 29일(우리는 30일), IT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스토리지 관리 솔루션 전문업체 3PAR가 결국 HP의 품에 안기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주당 30 달러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HP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음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먼저 계약을 했던 델에 통보한 것입니다.
HP와 델은, 델이 3PAR를 인수한다는 발표가 나온 지난 16일부터 보름간 경쟁적으로 배팅(^^) 금액을 올리며 3PAR에 구애를 해왔습니다. 이 덕분에 이 작은 벤처 기업은 당초 거론되던 매각 금액(주당 16 달러)보다 66.7%나 높아진 20억 달러라는 거액에 팔리게 됐습니다.
* 10년을 준비해온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
그런데 놀라운 얘기는 그 짧은 기간에 3PAR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그럴 수 있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가상화, 클라우드 컴퓨팅에 최적화된 스토리지 관리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스토리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로 하여금 고객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스토리지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손쉽게 구축·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회사의 주특기입니다.
3PAR는 자사 솔루션을 설명하면서 서버 구입비용을 50% 줄일 수 있고, 구비해야 될 스토리지 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고 선전합니다. 이를 통해 전력 비용도 75%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가상화된 서버 환경에서 스토리지 관리 시간을 90%까지 줄여줄 수 있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물론 기업이 하는 얘기를 모두 믿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회사가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독특한 차별화 요인을 갖고 있음은 HP와 델의 이번 경쟁에서 충분히 확인됐습니다. 도대체 스토리지 분야의 메이저 기업도 아니고, 관리 솔루션 분야에서 오래 활동해 온 전통의 명가도 아닌 이 작은 회사가 어떻게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요?
3PAR는 10년 전부터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컨셉이 주목받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해 유틸리티 스토리지 기술을 개발해왔다고 합니다. 스토리지를 필요로 할 때 원하는 만큼 빌려 쓸 수 있게 하는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10년을 준비해 왔다는 것이죠.
그 결과 이 회사는 포브스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술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됐습니다. 올해 4월에서 이 회사는 4위에 올랐는데 순위가 구글(10위), 애플(21위)보다 훨씬 앞쪽입니다. 비즈니스위크는 ‘차세대 하드웨어 개척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십년 간 한우물만을 파 온 노력과 끈기는 세계적인 IT 기업들의 치열한 인수전 속에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몸값이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3PAR가 델에 사흘 간의 말미를 줬고, 델이 어떤 결정을 할지는 이 사흘이 지나봐야 알 수 있습니다. 델이 3PAR를 인수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가 더 크다고 얘기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델은 또 고민을 할 것입니다.
* 스마트폰, 십년대계냐? 화무십일홍이냐?
십년대계와 정반대의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비되는 개념으로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기업들이 다가올 시장에 대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발빠르게 다른 제품을 모방할 수도 있고, 외형에 더 치중해 눈길을 끄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가격을 엄청나게 내려서 단숨에 시장을 장악하는 방법도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거둬들인 성과가 과연 십년대계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까요? 화무십일홍의 감흥조차 누리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십년대계의 좋은 예는 애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플은 아이팟을 처음 내놓은 직후부터 휴대폰 개발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휴대폰과 블랙베리, MP3플레이어를 모두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이를 모두 더한 하나의 단말만 들고 다니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는군요. 그런 단말을 준비하지 않으면,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이던 아이팟의 지위가 머지않아 위협받을 거라는 위기의식과 함께 말입니다.
남들이 ‘휴대폰에 그런 기능까지 필요할까?’하고 생각할 때 ‘그것 하나면 모든 휴대용 디바이스를 대체할 수 있는 휴대폰’을 고민한 것이 오늘날 아이폰의 성공을 만들어낸 원동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와 비교해 최근 휴대폰 업계의 대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화무십일홍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는 기분이 듭니다. 10년을 내다보려는 시도, 과감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발상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용기가 십년 뒤 경쟁력의 원천이 되지 않을까요?
관련기사 - 클라우드스토리지 3PAR, HP 품으로
<사람중심 김재철>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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