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시스코시스템즈가 28일, 새 한국지사장을 선임했습니다. 데이터 네트워킹 분야 부동의 1위 기업이자, 전체 IT 산업 가운데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시스코이기에 한국지사장이 누가 될 것인지가 큰 관심사였는데, 월요일 아침에 전격적으로 발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발표는 전임 지사장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새 지사장이 선임되었고, 신임 지사장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장성호 신임 지사장은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고, 시스코 합류 전에는 HP 본사에서 서비스 관련 업무를 해온 인물입니다.
시스코의 새 지사장 선임은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전임 지사장이 회사를 떠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0대 초반이고 다른 벤더의 현직 지사장이라거나, 서버 쪽이 아닌 시스템 벤더에서 온다는 등 설 등이 있었는데, 그런 설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사장 발표 보도자료가 나온 것은 의외입니다.
특히 전임 지사장이 퇴임과 함께 삼성전자로 옮겨 갔고, 시스코 코리아를 떠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새 지사장이 선임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지 않겠냐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예측이었기에 월요일 오전 일찍 받은 보도자료에 느닷없이 한방 맞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상 보도자료를 받고 보니, 얼마 전 만났던 모 업계 인사가 “새 지사장은 이미 결정된 것으로 안다. 40대 초반인 것은 맞지만,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뽑았다. 네트워크 분야는 아니고, 하드웨어 업체에서 뽑은 것으로 안다”고 했던 말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점도 놀라웠습니다.
시스코 신임 한국지사장으로 임명된 장성호 사장은 1968년생. 한국 나이로 올해 44세입니다. 일반적으로 인사 관련 보도자료에서 나이를 알릴 때는 만으로 나타내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한국 나이로 표기가 됐습니다. 새 지사장의 나이가 너무 젊어서였을까요?
어쨌든 신임 지사장의 나이는 역대 시스코 한국지사장 가운데, 가장 젊습니다. 또, 알카텔-루슨트, 주니퍼, 어바이어, 익스트림 등 주요 네트워크 전문업체 지사장들과 비교했을 때도 매우 젊은 나이입니다. 시스코가 처음인 젊은 지사장이 조직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스코의 새 지사장 선임 소식을 접한 김에 몇 가지 소회를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시스코는 지금까지 시스코 코리아 내부에서 지사장을 발탁한 전례가 없습니다. 홍성원 전 사장이 취임했을 당시에는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해석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HP, 마이크로소프트, 액센추어에서 영입을 했습니다.
이 같은 결정의 밑바탕에는 아마도 ‘서비스’라는 시스코의 과제가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시스코는 2000년대 초반 ‘서비스 전문 기업으로의 진화’를 선언했습니다. 전문조직을 강화하면서 “IBM을 롤 모델로 삼겠다”고 구체적인 상도 제시했죠. 그 이후부터는 기업의 업무용 솔루션이나 IT 컨설팅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기업에서 새로운 지사장이 오는 것이 정례화된 것 같습니다.
급기야 장성호 신임 사장 직전에는 아예 컨설턴트 출신을 지사장으로 뽑았습니다. 당시 시스코 관계자들은 “본사에서 ‘서비스, 컨설팅 중심의 접근’을 강조하는데, 한국에서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고, 컨설팅 전문가를 영입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얘기했습니다.
이후로 시스코 코리아는 ‘컨설팅’을 더욱 밀어붙였습니다. 외부에서 컨설팅 전문가를 다수 영입해 부문장 및 팀장을 맡기기도 했죠. 하지만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얘기됩니다.
컨설팅 업체 출신의 지사장 및 간부들이 네트워크 영업 인력들을 너무 무시한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고, 이 때문에 기존 시스코 코리아 인력들과 새로 영입된 인력들이 융화되지 못하고 따로 논다는 소문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또, 개편된 조직 체계에서 컨설팅 역할을 수행하는 팀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 오히려 영업에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큰 프로젝트가 있을 때 컨설팅 역할을 하는 여러 조직들이 각자 다른 시각에서 다른 포인트로 접근하다 보니 한 가지 목표를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이러다 보니 결정을 못 하고 논의만 길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각자의 판단은 얘기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영업 쪽에서 책임을 질 때는 특정 시점이 되면 어떤 패를 쓸 것인지 일단 결정이 내려져 그에 맞게 움직였는데, 그런 모습이 사라지면서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는 것이 시스코 코리아 관계자가 들려주었던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조직 관리라도 잘 했던 전임 지사장이 차라리 나았다”는 얘기도 시스코 코리아 직원들에게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연유로 시스코 코리아가 생긴 뒤 가장 조직 내부에 갈등이 많았다고 평가받는 시기였던 만큼, ‘내부를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시스코 코리아 안에서 지사장이 선임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지사의 내부 갈등은 본사의 고민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전임 지사장이 회사를 떠난 뒤 발빠르게 새 지사장을 선임한 것이 구심점을 세움으로써 내부를 추스르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다독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냐’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 좋은 선택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시스코 코리아에 오래 몸담아 왔던 직원들 입장에서는 본사가 이 업계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지사장으로 앉히는 바람에 불필요한 고생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후속 조치 또한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죠.
시스코 코리아의 새 지사장 선임된 마당에 이번 임명이 잘 되었냐, 잘 못 되었냐를 따지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임 지사장들의 활동 가운데서 잘못된 부분은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관심거리는 새로운 지사장이 한국 시장, 한국 지사의 특성과 상황을 얼마나 잘 파악해서 그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대개의 경우, 새로 임명된 지사장들이 시장에 이해가 부족하면 기존의 방식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기 마련인데, 오랫동안 국내 네트워크 시장에서 습득된 경험치들을 중요한 자산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전제된 상황에서 본사의 정책을 어떻게 융합해 나가느냐가 성공하는 지사장의 관건이겠죠.
사실 외국 기업들이 한국지사장을 선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본사의 정책을 기계적으로 이식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인가?’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창의성도 도전정신도 필요 없는 겨우 그 정도 역할을 맡기고자, 그토록 화려한 스펙을 따질 필요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당분간 시스코 코리아 직원들도, 시스코 국내 파트너들도 새 지사장의 성향이 어떤지, 정책은 어떻게 바뀔 지 파악하느라 어수선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어수선한 기간이 새로운 체제가 경쟁력을 발휘하는 워밍업 과정이 될 지, 내부의 불만과 경쟁사들의 네거티브한 비판을 양산하는 기간이 될 지 지켜봐야 되겠습니다. 이미 이 같은 상황을 2년 여 간 겪어 온 시스코 코리아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숙제가 될 테니까 말입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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