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스마트TV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지난 10일, KT가 “스마트TV의 과도한 트래픽 사용 때문에 다른 고객들에게 피해가 갈까 우려된다”며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접속을 제한하자, 삼성전자는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습니다.
17만 명에 이르는 삼성 스마트TV 이용자들이 사흘이 넘도록, 영화, 애플리케이션, 웹브라우저 등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인지 KT의 조치를 비난하는 여론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만, 네트워크 사용대가와 관련된 협상을 회피한 삼성전자도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KT 측이 “LG전자는 협상하려는 의지를 보여 접속제한에서 제외했다”고 한 것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에게도 스마트TV 고객을 볼모로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 온 책임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KT와 삼성전자 사이의 인터넷 사용료 문제가 아닙니다. 통신망 사용과 관련된 정책이 그 핵심입니다. 이른바 ‘네트워크 이용대가’ 또는 ‘망 중립성’이라고 하는 문제이지요. 간단하게 말해서 통신사가 망을 임대하는 데 있어 자사 계열사나 외부의 사업자에게 차별을 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망 중립성’이라는 주제의 핵심입니다.
스마트TV, 제조사도 망 이용료 내라?
그런데, 이 주제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TV 제조사 쪽에서 터져 나온 것이 이번 사건이 이전의 논란과 다른 점입니다. 이제껏 망 중립성과 관련된 얘기들은 모두 거대 통신사와 중소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거대 통신 통신사와 CP(Contents Provider)의 관계 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망 중립성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별로 효력이 없었습니다. 상대적으로 통신사 보다 훨씬 힘이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리가 만무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통신정책이 거대 통신사 위주로만 짜여 있는 나라에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TV라는, 가정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전자기기가 갑자기 ‘네트워크 먹는 하마’가 되어 버리면서 망 중립성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통신사 못지않은 거대 기업, 그것도 삼성전자가 논쟁의 상대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용자들이 인터넷 사용료를 내고 있는데, 스마트TV의 콘텐츠 이용료를 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는 주장도 있고, ‘네트워크 관리와 투자에 대한 책임은 모두 통신업체로만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특정 콘텐츠가 트래픽을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따로 요금을 지불하라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과거 전화 모뎀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다가, 이더넷을 사용하는 인터넷PC가 나왔다고 해서 그 PC를 만든 제조사에게 통신료를 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전화 모뎀과 ADSL 이용자의 통신비가 달랐던 것처럼, 스마트TV 이용자는 100Mbps 광랜을 사용하게 한다는 정도의 차이를 두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줄 장사에 목매는 통신사, 혁신의 DNA는 없나?
KT의 이번 조치를 보면서 업계에 공공연하게 얘기되는 ‘통신사의 위기’가 더 이상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통신사의 투자 부담은 높아지지만, 수익성은 예전만 못합니다. 좋은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서 수익성을 높이고, 네트워크 구축·운용에 있어서 보다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오지 않은 통신사들은 수익성 악화로 점점 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몇 달 전 어떤 세미나에 패널 토론자로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멀티미디어 스트리밍과 관련된 세미나였는데, 그 자리에서 망 중립성과 관련된 질문이 나왔습니다. 질문을 받은 통신사 임원은 “통신사가 적정한 수익을 올려야 그것이 재투자돼서 새로운 통신 기술에 투자하고, 서비스도 좋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답했습니다.
질문자가 제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기에 “싸이월드에서 발생하는 모바일 트래픽이 SK텔레콤 전체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의 22% 정도 된다고 들었다. 22%는 고사하고 통신사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의 2%만 차지하더라도 엄청난 콘텐츠가 될 텐데, 망 중립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망 이용료 폭탄을 맞거나 이용료를 올려주지 않으면 통신사가 망 임대를 거부할 수도 있다. 정말 좋은 콘텐츠 하나가 사장될 수도 있는 거다”고 말했습니다.
‘돈을 벌어야 새로운 기술에 투자할 수 있고, 요금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는 통신사가 오랫동안 휘둘러온 전가의 보도입니다. ‘열심히 일해라. 회사가 돈 많이 벌면, 월급 많이 줄께’라고 얘기하는 무능력한 기업주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통신사가 더 이상 빨랫줄, 즉 네트워크 그 자체만 가지고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망 이용료를 적게 받더라도 수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좋은 콘텐츠·서비스를 갖춰야 하는데, 그걸 통신사 혼자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이용자들이 돈을 내고 싶을 만큼 좋은 콘텐츠들이 많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겠죠.
(용산전자상가 가전 매장에서 스마트TV에 접속을 시도하자 '연결중'이라는
메시지만 뜰 뿐입니다. - 연합뉴스 보도)
망 중립성이 지켜지는 것이 이 환경을 만드는 첫 번째 단추를 꿰는 일입니다. 망 이용에 부담이 없어야 ‘좋은 콘텐츠만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든 사람이 돈도 많아야만(망 이용료를 많이 낼 수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통신서비스 환경은 분명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문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스마트TV는 분명히 기존의 다른 스마트 기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껏 다른 스마트 미디어에서 발생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트래픽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스마트 기기가 나올 때마다 그 단말을 만든 제조사에 대가를 요구한다면 통신사의 역할은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귀한 자식 강하게 키우는 망 중립성 정책
통신은 나라의 큰 자산입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전 국토를 그물처럼 연결하고 있는 것만으로 기간 시설이었겠지만, 스마트 시대에 통신의 역할은 단순히 연결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부를 대신해서 도심에 터널이나 고가도로를 만들어놓고 통행료를 받는 민간 업체(SOC 사업자)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통행료를 내리거나 무료로 전환합니다.
통신사업자에게 이런 것까지 요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천문학적인 마케팅비는 쏟아 부으면서도 정작 새로운 서비스·콘텐츠로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은 게을리 한다면, 그 책임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부의 정책에도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보의 통신 정책은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터질까’였습니다. 통신사를 온실 속 화초처럼 보호해 왔습니다. 그것이 우리 통신사들의 체질을 약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경쟁사들이 잘라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만년적자에 허덕이던 영국의 BT가 세계 최고의 통신사로 재도약하게 된 첫 출발이 영국 정부의 망 중립성 정책이었다고 합니다. 네트워크 임대에서 이전만큼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싸게 망을 임대한 사업자가 좋은 콘텐츠로 공격을 해오자, BT 역시도 콘텐츠·서비스 혁신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BT가 콘텐츠 개발과 관련해 ‘개방’ 정책을 택하자 내부의 콘텐츠팀에서 ‘우리가 혁신할 수 있다’고 항변했지만, 경영진의 대답은 ‘외부 개발자들과 똑같이 경쟁하라’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기득권이라는 울타리 속에 오랫동안 안주해왔던 집단에게는 절박함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귀한 자식 매로 키워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통신시장에 이 속담을 적용하면, 통신사들이 튼튼해질 뿐만 아니라, 콘텐츠 시장까지도 튼튼해집니다. IPTV 서비스가 실패한 이유가 콘텐츠 때문인데, IPTV 서비스 초기에 망 중립성 정책이 제대로 세워졌더라면 어땠을까요? 옛 어른들 말씀, 하나 틀린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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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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