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2017년이 되면 전세계에 보급된 스마트폰 수가 17억대를 넘을 것이라고 시장조사기관 오범(OVUM)이 발표했습니다. 이 같은 급성장의 가장 큰 동력은 개발도상국들입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이 2017년 스마트폰 수요의 5%를 차지할 것이라는군요. 지난해 전세계 스마트폰 공급량(4억 5000만대) 가운데 신흥 개발도상국의 비중이 35%(1억 6000만대)에 이르는 상황인데, 특히 이 가운데 중국이 2/3(66%)나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중국이 만들어내는 수치들은 언제나 놀라울 따름입니다.
5년 뒤 중국을 비롯한 신흥 개발도상국의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하게 된다면, 스마트폰 제조사들로서는 이 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을 겁니다. 어지간한 냉장고, 텔레비전 보다 비싼 스마트폰 시장이 4배 가까이 커진다면, 아마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가전제품 사업을 완전히 압도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과 그 시장에서 기존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입지를 넓히는 일이 꼭 정비례할 지는 의문입니다. 중국 기업들의 움직임 때문인데요, 최근 중국 기업들이 스마트폰 OS를 개발한다는 소식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에릭슨을 위협하고 있는 세계 2위의 통신장비 제조사 화웨이가 독자적으로 모바일 OS를 만든다는 뉴스가 있었고, 세계 1위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와 중국 최대의 검색엔진 바이두도 각각 모바일 OS를 개발하고 있습니다(바이두는 안드로이드용 모바일 브라우저 ‘바이두 익스플로러’도 개발한 바 있습니다).
중국기업들의 모바일OS 개발 러시
'삼성전자가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도 제대로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중국 기업들이 모바일 OS를 개발한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지난 9월 14일 눈길을 사로잡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만의 에이서가 알리바바의 모바일 OS '알리윤(Aliyun)'을 탑재한 스마트폰 '클라우드 모바일 A800'을 중국 시장에 출시하려다 구글의 반대로 취소한 것입니다. 구글은 에이서가 알리윤폰을 출시할 경우, 에이서의 안드로이드 OS 라이선스를 취소하겠다고 압박했습니다.
구글이 알리바바의 '알리윤'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중국 업체들이 개발하는 모바일 OS가 안드로이드 OS를 변형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알리바바의 알리윤 OS는 안드로이드를 본떴지만, 다른 안드로이드 단말기와 호환될 수 없을 정도로 수정된 플랫폼이다. 호환성은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중심에 있으며, 개발자·제조사·소비자들에게 지속적인 경험을 보장한다. 알리윤처럼 호환성이 없는 안드로이드 버전은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알리바바 측은 알리윤이 리눅스를 기반으로 개발됐을 뿐 안드로이드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이용해 호환성이 없는 변형 모바일 OS를 개발한 것은 알리바바가 처음이 아닙니다 . 애플 앱스토어의 수익성에 필적할 앱 장터를 갖고 있는 아마존의 태블릿PC 킨들이 바로 안드로이드와 호환되지 않는 변형 안드로이드입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모두 구글 주도의 OHA(Open Handset Alliance)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안드로이드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호환성' 포기(?)한 기업들이니 공개된 안드로이드를 가져다가 자체 OS를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중국은 with Google 전략이 먹히지 않는 유일한 시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구글이 에이서의 알리윤폰을 견제하고 나선 것은 앞으로 이런 움직임이 더욱 많아질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루빈 구글 부사장은 “우리는 알리바바그룹 최고전략책임자가 ‘우리는 중국의 구글이 되려 한다’고 한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알리윤OS는 분명히 안드로이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고 트위터에 썼습니다. 루빈 부사장에 따르면, 구글이 알리윤 웹사이트를 분석했는데 알리윤은 안드로이드와의 호환성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세계 최대 시장 중국을 장악하고 있고, 전세계 전자상거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알리바바의 이 같은 시도는 구글로서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알리바바는 야후 인수의 최우선 후보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독자 OS 기반의 스마트폰을 출시하려는 알리바바와 달리, 화웨이는 iOS, 안드로이드, 윈도폰 등 기존 모바일 플랫폼이 폐쇄적 정책을 강화할 경우, 이를 피할 수 있는 대안으로 독자 OS를 개발 중이라고 하는군요. 바이두도 자체 모바일OS ‘이(Yi)’를 개발했는데, 미국의 델이 이 모바일OS를 탑재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내놓기로 하고 제휴를 맺은 바 있습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dotory798
구글이 알리윤OS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구글의 정책 그리고 이제까지 중국에서의 경험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선 구글은 안드로이드 OS를 가져다 쓰는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 OS를 되도록 변형하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사들을 완벽히 통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안드로이드 첫 버전이 나온 뒤 구글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단말 맨 아래 쪽에 4개의 소프트 키를 둘 것을 권장했지만, 삼성전자 같은 경우 애플처럼 하드웨어 홈키를 달았습니다. 네모난 모양으로 말이죠. 어쨌든 구글이 안드로이드 정책을 잘 따른 단말에 ‘with Google’이라는 문구를 붙여주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를 일정 이상 변형한 경우, 검색이나 메일 등 구글의 핵심 모바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정책도 쓰고 있습니다.
글로벌 표준? 중국에선 중국 표준이...
그런데, 구글의 이런 정책에 아랑곳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시장이 중국입니다. 모바일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사가 공급하는 스마트폰에 안드로이드를 채택하면서 필요한 만큼 플랫폼을 변형한 최초의 기업이 차이나모바일이라고 합니다. 이는 5억명이 넘는 가입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검색, e메일, 지도서비스 등을 구글에 의존하지 않고 중국 시장에서 개발된 것을 쓰겠다는 것은, 자국 시장이 워낙 크니 해외 진출을 고려해 구글의 표준을 따르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구글이 중국 기업들의 리눅스 기반 모바일 OS 개발에 민감한 것은 당연한 반응일 겁니다. 리눅스 기반 모바일 OS를 개발할 때 안드로이드 플랫폼은 중요한 모델이 될 것이고요.
물론,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습니다. 지난 9월 초 인터넷 뉴스에 중국의 짝퉁 아이폰 기사가 났습니다. 구폰이라는 중국기업이 시중에 사전 유출된 아이폰5의 디자인을 그대로 카피한 안드로이드폰 ‘i5’를 발표한 것입니다. 생김새는 아이폰5와 똑같고, 뒷면에는 안드로이드 로고를 꿀벌 모양으로 변형한 이 스마트폰을 내놓으면서, 구폰이라는 회사는 중국시장에서 특허를 냈습니다. 아이폰5가 중국에서 판매를 할 경우 고소하겠다고 합니다.
애플 아이패드가 지난 2월 중국에서 판매금지된 것도 비슷한 사건입니다. 애플이 중국 선전프로뷰테크놀러지의 자회사인 대만계 회사로부터 아이패드 상표권을 넘겨받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중국 내 아이패드 상표권은 여전히 선전프로뷰가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자, 중국 검열관들이 애플 매장에서 아이패드2를 압수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 또한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쥐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차별화 어려운 스마트폰, 중국기업들의 의미있는 시도
이제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스마트폰 업계의 고민은 OS가 한정적이고, 전면이 터치스크린인 기기의 특성상 디자인을 차별화기도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체 플랫폼 생태계를 지니고 있는 애플 정도가 그나마 경쟁에서 조금 앞서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핵심 부품을 내재화 했기에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다고 하지만, 애플과의 소송에서 보듯이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
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업체 관계자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UI가 대단한 기술로 만들어져서 특별한 경지에 올라 있는 것처럼 선전하지만, 사실은 도진개진이다. 일부 업체들의 UI가 좀 더 최적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경쟁사들이 카피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고 전했습니다. 크게 차이도 없는데 카피를 했다가 오히려 망신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 때문에 MS 윈도폰8이 출시되는 것을 계기로, OS를 다변화하는 것이 부담을 더는 방법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MS의 경우 애플과 다각도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어 분쟁의 소지가 적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라는군요. 어쨌든 차별화가 쉽지 않다 보니, UI를 앱 형태로 표현해 특색을 강조하는 방식도 고민되고 있습니다.
앱으로 UI 차별화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OS를 건드리게 되면 버전 업그레이드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 일부 스마트폰에서 안드로이드OS 업그레이드가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UI라도 차별화하기 위해 OS를 조금씩 건드리게 되는데, 구글은 제조사들마다 약간씩 변형한 OS를 업그레이드해주지 않고, 제조사는 일정 기준 이상으로 OS를 변형했을 경우 스스로 OS를 업그레이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죠.
이처럼 스마트폰의 차별화가 어렵고, OS는 몇몇 글로벌 대기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국업체들의 시도는 성공 여부를 떠나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앱 형태로 UI를 최적화하는 방식도 중국 업체들이 활발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는군요.
중국기업의 모바일OS 개발, 반면교사로 삼아야
중국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미국과 한국을 위협할만한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화웨이를 비롯해 그 동안 통신사들에게 OEM으로 스마트폰을 공급해 오던 기업들이 자체 브랜드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 상하이에서 열린 ‘모바일 아시아 엑스포’에 다녀왔는데, 화웨이처럼 우리가 이름을 아는 기업은 물론이고, 생소한 기업들까지도 LTE 스마트폰과 7인치, 10인치 태블릿PC를 대거 출품했더군요.
화웨이의 차세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ZTE의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제품군
스마트폰에서 어느 정도 기술력을 쌓은 중국기업의 다음 타깃이 모바일 OS입니다. 구글이 알리윤OS를 견제하고 나선 이유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이 OS가 클라우드 기반이라는 점입니다. 고성능 컴퓨팅이 요구되는 기능 등을 클라우드 공간에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저가 스마트폰에서도 고사양 스마트폰과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죠. 차이나모바일이 OS를 조금 과도하게 변형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변화, 아니 진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저가폰에서 고성능을 지원하는 이러한 진보는 스마트폰으로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는 기존의 단말 제조사들이 꺼리는 접근법이라는 점에서 알리윤OS의 차별화 전략이 돋보입니다. 구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알리윤폰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막대한 소비자군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 단순한 모방을 넘어 기존 OS를 뛰어넘으려는 새로운 시도 그리고 전세계 시장에서 4조 달러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화교상인들의 영향력까지 고려하면 앞으로 중국의 모바일OS와 스마트폰이 이루어 낼 성과를 섣불리 추측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알리윤OS는 구글의 주장대로라면 안드로이드를 카피한 것이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탄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전자가 모바일OS 개발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오고 있는데, 중국기업들의 행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무분별한 도용은 나쁜 것이지만, 장점을 취하면서 원작자가 시도하지 않았던 혁신을 시도하는 것은 따라 배워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륙의 ***’ 시리즈를 보며 중국의 부정적인 면들을 비웃곤 했는데, 중국의 스마트폰은 이제 더 이상 ‘씹던 껌’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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