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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통신 서비스

4G 시대의 소녀시대

【사람중심】 흑백 영상 속의 콘서트 현장.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한 눈동자. 쉴 새 없이 팔을 흔들어 대고, 열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무아지경에 빠진 여성들.

최근 자주 보게 되는 광고 속의 이 영상은 1969년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우리나라에서 공연할 때의 것이라고 합니다. 69년 10월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린 이 공연에서 우리나라 여성 팬들이 세계적인 꽃미남 가수를 향해 손수건을 던졌는데, 입고 있던 팬티를 던졌다고 와전되어 젊은 층들이 무분별하게 서구 문화에 빠져든다는 비판 기류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상이 갑자기 컬러로 바뀌자 파란 눈동자와 금발의 서양인들이 우리 가수의 등장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열광합니다. ‘Run Devil Run’이라는 노래에 맞춰 등장하는 소녀시대의 모습은 너무도 당당하고 멋있습니다.


이 광고를 보면서 통신 3사가 LTE 서비스에 거는 각오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탄을 소재로 한 SK텔레콤의 광고를 보면서는 감각적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서비스에 하나를 더 얹었다는 느낌이 들 뿐이었습니다. KT야 아직 LTE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고 있으니, 와이브로 얘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와이브로야 워낙 오래 들어오던 이름이고, 서비스의 편의성 등이 기존 3G와 비교해도 확실히 나은 점을 찾기 힘듭니다. 또 경쟁자들이 LTE 얘기를 하는 마당에 홀로 와이브로를 내세우고 있으니 왠지 ‘나도 끼워 달라’고 호소하는 듯 힘에 부치는 광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혁신을 코드로 내세운 LG유플러스 LTE 광고

그런데 LG유플러스 광고는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낌이 대단했습니다. ‘혁신’을 코드로 내세웠다는 점이 가장 신선했고, 외국의 사례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그러했습니다.

저는 이 광고를 극장에서 처음 봤는데, TV에서와 달리 마틴 루터 킹/오바마 버전과 소녀시대 버전이 연달아 나왔습니다. 마틴 루터 킹/오바마 버전을 보면서 ‘오,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다가, 소녀시대 버전을 보면서 ‘와!’하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흑인이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대통령까지 되는 것 같은 혁신의 역사를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만들어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을 이을 혁신의 다음주자는 그 뒤에 등장하는 로고의 주인공 LG유플러스입니다.

이 광고는 ‘LTE 시대에는 이전까지의 핸디캡이나 설움을 떨처버리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LTE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그렇고, 일단은 SK텔레콤 보다 서비스 지역이 더 많은 것도 이러한 의지의 반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선두주자’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는 성공한 것이니까 말입니다. 실제로 LG유플러스는 광고에서만이 아니라, 표면적인 서비스 내용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7월 1일 상용화 시점에서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의 LTE 서비스를 비교한 내용이 네오드의 이매진 월드(http://niw.kr/50114775249)라는 블로그에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아래 표는 이 블로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다운링크 최대 속도가 2배 차이 나는 것은 같은 주파수 대역 안에서 LG유플러스가 2배의 주파수 대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에게 물어 보니 “LG는 단방향 10MHz, SK는 단방향 5MHz를 받았기 때문에 다운링크 최대 속도가 72Mbps:36Mbps로 두 배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주변에 다른 사용자가 없어 혼자만 쓴다고 가정했을 때의 얘기이고, 실제 서비스에서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요금, 서비스 지역 등을 비교해도 일단은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네요.

LG유플러스는 지난 달 29일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하반기에 LTE 투자 8,500억 원을 지출할 예정이다. 9월에 LTE 스마트폰도 출시한다”고 밝혔습니다.


3위 탈출의 의지 ‘역사는 바뀐다. 4G부터는!

LG유플러스는 LG텔레콤 시절 늘 마이너였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통신시장 3강 중 하나였지만, 그 안에서는 늘 마이너 취급을 받았습니다. 가입자 수에서 1, 2위와 차이가 크다 보니 1, 2위는 늘 LG텔레콤을 논외로 한 채 경쟁구도를 얘기할 때가 많았고, 가입자 수 때문에 다른 통신사들보다 단말기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휴대전화 매장에 가면 선택할 단말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불리한 점이었죠. 하지만, 이런 핸디캡이 LG텔레콤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요금을 들 수 있는데, LG텔레콤은 항상 요금 경쟁을 주도했습니다. 과도한 보조금이나 광고로 고비용 구조를 만들기 보다는 통신비를 저렴하게 함으로써 차별화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가족을 묶어서 할인하는 제도라든지, 일정 이상 금액의 통신비를 사용하면 그 중 일정 비율을 할인해주는 제도를 가장 먼저 만들었고, 결국 다른 통신사들이 이를 따라 하게 됐습니다. LG텔레콤 가입자 시절, 비슷한 통화량의 동료들과 비교해 통신비가 많이 낮았던 기억이 납니다.

국내 휴대전화 단말기만을 기계적으로 공급하지 않고, 해외에서 단말을 수급해 와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카시오와 제휴한 ‘캔 유’ 시리즈는 국내 출시 첫 모델부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차별화된 디자인에 흠집이 잘 나지 않는 금형, 뛰어난 카메라 성능 등이 강점이었는데, 몇몇 모델을 써보면서 매우 만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3위였던 LG유플러스가 ‘역사는 바뀐다. 4G부터는!’ 이라는 문구로, 4세대 통신에서는 역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4G라고 해서 3G까지의 인프라 투자가 전혀 상관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LG유플러스는 여전히 핸디캡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핸디캡은 남보다 한발 앞서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남보다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시도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IT 분야에는 시장을 장악한 최상위 기업이 아니라, 자그마한 벤처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제품을 만들어낸 예가 적지 않습니다. 1위 기업은 기존의 기술, 기존의 영업 방식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그만큼 머뭇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산뜻한 출발, 그러나 승부는 지금부터

LG유플러스는 LTE 서비스 런칭이나, 마케팅 모든 면에서 한발 앞서 나가는데 성공했습니다. 앞서 나간다는 표현이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겠지만, 차별화된다는 평가를 받는 것에서 만큼은 확실하게 성공한 것 같습니다. 동영상 광고도 여기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메이저이면서 마이너의 길을 걸어 왔던 LG유플러스가 과연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도전이겠지만, 기대가 큽니다. 변화가 없는 세상은 재미없는 법이고, 3등이 1, 2등을 위협하게 되면 틀림없이 서비스는 좋아질 테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석이조가 되지 않겠습니까?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의 LTE는 9월에 LTE 휴대전화들이 쏟아져 나와야 제대로 된 경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어쩌면 KT가 서비스를 시작하는 내년이 제대로 된 LTE 매치 1라운드가 될 지도 모릅니다. 그 때가 되면 LG유플러스가 다시 예전처럼 상대적인 투자 열세나, 단말기 열세 등을 겪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선공이 여기서 끝난다면 LG유플러스는 ‘영원한 3위’라는 이미지만 더욱 강하게 심어주게 될 겁니다. LG유플러스가 LTE 시대의 소녀시대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기사를 준비하고 있던 어제, LG유플러스의 데이터 통신 장애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경쟁사들에게 공격받는 빌미를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3G 데이터 서비스가 없었던 LG유플러스 입장에서는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될 시행착오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영원한 3위에서 벗어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자격이 아닐까요?)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