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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전략과 정책

통신기술 종가(宗家)의 절치부심

【사람중심】알카텔-루슨트는 통신기술 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던 미국의 루슨트 테크놀로지스와 유럽 시장의 빅3 중 하나였던 알카텔이 결합해 2006년 12월 1일 출범한 회사입니다.

알카텔과 루슨트의 합병은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IT 버블이 가라앉은 이후 루슨트가 어려움을 겪어오기는 했지만, 통신 기술 분야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던 회사가 인수를 당한다는 것도 놀라웠고, 통신 솔루션 시장의 공룡과도 같았던 두 회사가 뭉쳐 하나가 된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약 6개월 앞서 알카텔과 유럽 시장에서 자웅을 겨루던 노키아, 지멘스의 통신 솔루션 사업부가 결합한 조인트벤처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NSN)이 만들어져 규모 면에서는 이미 알카텔-루슨트 보다 거대한 통신 장비 전문업체가 탄생했지만,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은 알카텔-루슨트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루슨트라는 기업의 상징성도 있고, 루슨트가 국내 기업들과 오랜 기간 합작회사를 운영해 온 탓에 매우 인지도 높고 친근한 이미지였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알카텔이 루슨트를 인수했음에도 ‘알카텔-루슨트’하면 루슨트의 이미지가 훨씬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조직 규모도 루슨트가 매우 컸고, 한국에서의 활동도 더 활발했으니까요.

하지만, 알카텔-루슨트는 국내 통신 시장에서 그리 위력적인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광전송, 펨토셀 등 일부 분야에서는 꾸준한 실적을 올렸지만, 정작 이동통신 분야에서는 ‘메이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3G 액세스 분야에서는 삼성전자 다음으로 많은 매출을 올렸지만, 이는 LG-노텔을 만들어 국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노텔의 무선 사업부를 인수한 결과물이었습니다.

특히 알카텔-루슨트는 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LG유플러스, SK텔레콤의 LTE 장비 공급업체 선정에서 모두 고배를 들었습니다. 국내 프로젝트에서는 무조건 한자리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나, LG전자와 합작사를 만든 에릭슨에 밀린 것이죠. 이들 프로젝트에서는 투자 보호와 가격 측면에서 장점이 있던 NSN도 일정 지분을 확보했기에 알카텔-루슨트의 탈락은 좀 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적어도 국내 시장에서는 메이저 그룹에서 이탈했구나’하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알카텔-루슨트의 움직임이 눈길을 끕니다. 몇 년 간 이어질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고배를 들어 당분간 큰 기회를 잡기 힘들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을 내놓고 이것을 소개하는데 매우 적극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좌절을 겪었지만, 북미 등에서는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기에, 알카텔-루슨트는 이동통신 분야에서 새로운 선언을 하고 나섰습니다.


기지국 규모는 줄이고, 성능은 집적화한 ‘라이트 라디오’

알카텔-루슨트는 지난 2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라이트 라디오’라는 기술을 발표했습니다. 스마트폰의 급격한 증가와 이에 따른 무선 데이터 트래픽의 급증으로 대도시에 이동통신 기지국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질 것에 대비한 기술입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투자가 엄청나게 늘어나지만, 수익은 완만하게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했습니다. ‘라이트 라디오’는 코어 스위치와 제어부(콘트롤러), 기지국을 모두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구성하는 개념인데, OPEX 측면에서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알카텔-루슨트는 새로운 안테나, 새로운 베이스밴드, 새로운 무선 액세스 네트워크를 적용했습니다.

새 안테나는 700MHz~2.6GHz를 모두 지원하는 것으로 매우 작은 크기 안테나가 작은 ‘큐브’ 안에 들어 있는데, 이 큐브는 기존에 기지국에 별도로 있던 RF 증폭장치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개의 큐브로 2와트 정도의 출력을 지원할 수 있는데, 이는 크기와 훨씬 큰 기존의 안테나 보다 60% 뛰어난 것입니다.

새로운 베이스밴드는 기존 베이스밴드의 라인카드를 손톱만한 크기의 칩으로 바꿈으로써 크기를 절대적으로 줄였습니다. 하나의 칩에서 GSM, WCDM, LTE를 모두 지원합니다. 새로운 무선 액세스 네트워크는 앞서 얘기한 클라우드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무선 백홀 성능 3배 향상, TCO 절반으로

알카텔-루슨트가 내세우는 ‘라이트 라디오’의 차별성은 우선 큐브 안에 들어간 RF 컴포넌트를 들 수 있는데, 압축을 지원하지 않던 기존 CPRI(Common Public Radio Interface, 공공 무선 인터페이스)와 달리, 3배 정도의 압축 성능을 지원하기 때문에 통신사 입장에서는 모바일 백홀 투자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같은 양의 데이터를 전송할 때 그만큼 대역폭을 적게 쓰기 때문입니다. 거리도 40km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광네트워크 구축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크다고 하는군요.


무선 데이터 통신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인프라 투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CPRI 백홀망은 통신사들이 중요한 고민꺼리가 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입니다.

또, 크기에 큰 차이가 있는데 큐빅 하나의 크기가 6×6×10cm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설치하는 데 있어 장소의 영향을 덜 받게 됩니다. 라이트 라디오 제품군 가운데 ‘메트로셀’이라는 펨토셀(소형 기지국)이 있는데, 이 제품 역시 패널에 8개까지 꽂을 수 있을 만큼 작아서 설치가 쉽기 때문에 서비스 음영 지역을 쉽게 해소할 수 있습니다.

알카텔-루슨트는 “밸랩에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라이트 라디오’를 도입하면 기존 이동통신망 환경과 비교해 TCO를 50% 줄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습니다. 장소 임대 비용은 66%, 설치 비용은 50%, 전력 사용은 51%, 운영관리 비용은 25%가 줄어든다고 하는군요.

세계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 차이나모바일과 공동개발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끄는 ‘라이트 라디오’ 기술은 무선 광대역 분야의 혁신을 이끌 것으로 평가받아 ‘넥스트 제너레이션 네트워크(Next Generation Network, NGN) 리더십상’을 받았습니다. 시장조사기관 인포네틱스의 수석애널리스트 스테판 테럴은 “라이트 라디오는 현재 무선통신 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핵심 사안들의 해결책으로 출시됐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400G 네트워크 칩셋 발표

지난 6월 알카텔-루슨트는 유선 네트워크 분야에서 또 한 번 주목할 만한 발표를 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400Gbps 성능을 낼 수 있는 네트워크 칩셋을 공개한 것입니다.

‘FP(Flexible Pass)3’이라는 이름의 이 칩셋은 2003년의 FP1(10G), 2007년의 FP2(100G)에 이은 것으로, 이미 이 칩이 탑재된 프로토 타입 장비도 나와 있습니다. 올해 말부터 통신사 네트워크에서 시험 운용을 시작해 내년 상반기에는 상용 장비가 출시될 예정입니다 .

네트워크 프로세서는 네트워크 장비의 성능을 좌우하는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FP3는 현재 쓰이고 있는 칩셋들보다 4배나 빠른 속도를 제공합니다. 동시에 7만 개의 HD급 동영상을 스트리밍할 수 있는 성능이라고 합니다. 성능이 이처럼 향상됐음에도 전력 소비량은 50%나 줄이는 혁신을 이루어냈습니다.


FP3는 네트워크 프로세서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CPU 클럭 수가 계속 높아지다가 어느 순간 멀티코어 단계로 넘어갔는데, 이는 발열·집적도 등 여러 부분에서 CPU 성능을 더 이상 높이기 힘든 단계에 이르렀을 때 프로세서를 병렬로 처리함으로써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네트워크 프로세서가 이런 단계로 진화한 것이 FP3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입니다.

알카텔-루슨트의 FP2, FP3는 는 이전 버전 칩셋보다 성능은 크게 향상됐음에도 전력 소비는 매번 50%씩 줄여오고 있습니다. FP3의 전력 사용량은 Gb 당 2.5와트입니다. FP3를 채택한 네트워크 장비는 같은 전력으로 기존 장비(100G 칩셋을 탑재한) 보다 4배나 많은 포트를 제공할 수 있어서 데이터센터 공간이 그만큼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네요. 또, ‘액티브 파워’라는 기술이 적용돼 데이터 전송만 할 때는 프로세서에서 WiFi나 멀티미디어 쪽은 전력을 자동으로 차단, 전력 사용을 최소화하는 기능도 제공됩니다.


‘트래픽 급증→네트워크 투자 급증’ 해결에 초점

올해 들어 알카텔-루슨트가 유선과 무선 통신 분야에서 발표한 이 두 기술은 통신사들이 최근 맞닥뜨리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철저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선 무선 통신 분야는 스마트폰의 보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통신사들의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그야말로 폭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선 액세스 네트워크를 늘려서 여기에 대응을 해야 하는데 구축 비용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관리에도 어려움이 커집니다.


알카텔-루슨트의 ‘라이트 라디오’는 통신사들의 크기는 훨씬 작으면서도 보다 고성능의 기지국을 운영할 수 있게 해줍니다. 클라우드 기술을 통해 관리의 부담도 줄였습니다. 또, CPRI 인터페이스에 압축 기술을 적용, 기존보다 3배나 많은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게 함으로써 통신사들이 백홀망 투자를 최대한 천천히 진행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400G 네트워크 칩셋 ‘FP3’는 비디오 콘텐츠의 증가, 모바일 데이터 통신의 활성화로 데이터 트래픽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를 봤을 때 앞으로의 데이터 트래픽은 쉽게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델오로그룹은 최근 ‘100GE 포트 수요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200%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인포네틱스는 “100GE 포트 도입 비용을 줄여주는 FP3 칩셋이 통신사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100G 네트워크로도 버거운 상황이 머지않은 모양입니다.

비용“매분기 시장 주도할 혁신 기술 발표한다”

알카텔-루슨트 한국지사의 신원렬 지사장은 “최근 전세계 매니지먼트 팀이 프랑스 본사 연구소에 모여 회의를 했다. 전략·비전과 관련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밸랩이 새로운 기술 경향과 관련된 발표를 했는데 그린 IT, 무선, 비디오가 주를 이뤘다”고 말했습니다.

신 사장은 “통신사들의 수익성이 좋지 않다 보니 예전처럼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투자는 그 시기를 놓치면 반드시 서비스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서, “투자의 필요성과 비용 부담 사이에서 고민하는 통신사들의 맘을 움직일 수 있도록 기술을 차별화하고, 마케팅과 영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것이 알카텔-루슨트의 전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무선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할 수록 액세스 네트워크를 쉽게 확장할 수 있는 스몰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인터넷에서 비디오를 비롯한 대용량 콘텐츠의 비중이 늘어날수록 더 대용량의 네트워크가 요구될 것입니다. ‘라이트 라디오’와 ‘FP3’는 이런 측면에서 경쟁사들에 한발 앞서 시장을 개척하려는 알카텔-루슨트의 의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 하겠습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최근 발표된 알카텔-루슨트의 기술들은 머지않아 비용과 수익의 역전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 통신사 입장에서 매우 흥미로운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알카텔-루슨트는 “우리는 기술에서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앞으로도 매분기마다 시장을 끌고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기술·전략을 발표하고자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알카텔-루슨트가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평가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만, 통신기술 종가가 절치부심한 결과물들은 눈길을 끌만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매 분기마다 혁신적인 새 기술들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점도 흥미롭습니다.

과연 알카텔-루슨트의 새 기술들이 통신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국내 통신사들의 LTE 프로젝트에서 고배를 든 상황에서도 새 기술(라이트 라디오)에 기반을 둔 스몰셀을 공급할 수 있다면, 매우 의미 있는 결과물이 될 것 같습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