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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IT와 노동 착취

‘애플 팍스콘 공장’ vs. 반도체 ‘공정’ 발암물질


[사람중심] 최근 들어 IT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주제 가운데서 가장 뜨거운 것 중 하나가 중국의 팍스콘 공장입니다. 노동자 착취 행태가 도를 넘어 투신자살한 직원만도 17명이나 되는 이 회사는 우리에게 ‘애플 팍스콘 공장’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애플의 공장인 것이죠.

언론들은 마치 애플에 감정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연일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만들어 냅니다. ‘아이폰을 만드는 죽음의 공장’, ‘노동력 착취, 협력사 피땀으로 일군 애플, 그들만의 신화’, ‘화려한 애플 뒤에 있는 팍스콘 공장 아이들의 눈물’... 아마도 스마트TV를 둘러싼 삼성전자와 KT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좀 더 자극적인 제목들이 등장했을지도 모릅니다.


일체화된 개념…‘애플 팍스콘 공장’
그렇지만, 중국 노동자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이런 기사 내용에 팍스콘의 경영자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묵인하는 중국 정부를 성토하는 기사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팍스콘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이 30%가 안 된다는 사실도 언론에게는 관심거리가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고 애플이 비난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청 업체로서 협력사의 근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력 착취를 개선해야 될 책임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제조사들이 중국으로 가는 이유는 저렴한 생산비용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수익을 고려하면 제조비가 저렴한 중국 파트너들을 포기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애플은 팍스콘이 자사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지난 2006년부터 팍스콘 공장의 노동환경을 자체적으로 감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노동 착취를 찾아내지 못한 것인지, 모른 척한 것인지에 그 기간 동안 노동자들은 계속 뛰어내렸습니다.

팍스콘 문제가 불거지고 “아이폰5, 최초의 윤리적 아이폰 되라!”는 시위가 확산되자, 애플의 팀 쿡 CEO는 “납품업체들의 노동환경 논란에 방관 않겠다”고 입장을 밝히기에 이르렀습니다. 새해 들어 노동환경 개선과 관련이 있는 기업·대학들로 이뤄진 단체인 FLA에 가입했고, 팍스콘 중국 공장 노동환경 조사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반도체 공장 발암물질 검출, ‘담담한’ 언론보도
‘애플 팍스콘 공장’이 언론으로부터 정의의 심판을 받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IT 기업의 노동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보도가 나왔습니다. 삼성전자 등 백혈병 환자가 발생했던 반도체 사업장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국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비롯한 휘귀암에 걸린 근로자는 140여 명. 이 가운데 45 명이 숨졌습니다. 하지만 정부나 회사 측은 표본으로써의 가치가 없는 수치라고 주장하는 모양입니다. 휘귀암에 걸린 사람이 수만 명이면 모르지만, 140여 명은 개체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죠.

정부나 회사 측은 발암물질 검출량이 기준 이하라는 점을 강조하고, 피해자 유족 및 관련 단체들은 최신 장비로 교체된 뒤에도 발암물질이 나왔다면 1990~2000년대에는 훨씬 더 위험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번 조사에서도 비소는 기준치보다 6배가 넘게 나왔다고 하니 현재나 과거 모두 얼마나 열악한 환경인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들의 반응은 ‘애플 팍스콘 공장’과 사뭇 다릅니다. 기사 제목을 살펴보니 대부분 ‘반도체 사업장서 발암물질 검출…논란’, ‘반도체 공장 백혈병 유발인자 검출’... 이런 식입니다. 정상적인 작업 시간에 일만 해도 휘귀암에 걸리고, 사람이 수십 명 씩 죽어나가는데도 말입니다. 아예 ‘반도체 공장’이 아니라 ‘반도체 공정’이라고 표기하는가 하면, ‘반도체 공장서 백혈병 유발물질 발생… 인체에는 무해’라는 제목마저 등장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문제는 오랜 논란거리였습니다. 바로 옆에서 짝을 이뤄 작업하던 여성 노동자 두 사람 모두 백혈병으로 사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삼성전자나 정부는 늘 발암물질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업무와 연관성이 없느니 하면서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정말 어렵게 그런 변명이 뒤집혔는데도 언론들은 최대한 담담하려고 노력하는군요(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삼성전자의 10억원 제의를 거절하고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산재 인정을 받았을 때도 많은 언론이 침묵했습니다).


애플의 FLA 가입은 IT 기업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나이키 축구공을 만드는 아프리카·아시아 10세 미만 어린이들의 노동착취 같은 문제는 자주 거론됐어도, IT 분야에서 노동력 착취나 인권과 관련된 얘기가 화제의 중심이 된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IT가 우리의 삶과 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IT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한 노력의 부산물로 제조 공정이나, 부품 생산 공정, 원재료 채취·가공 공정에서 노동력 착취와 인권 탄압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IT와 노동착취
인터넷 검색창에 ‘IT 노동착취’라고 입력을 해봤습니다.

IT의 중요한 시장 중 하나인 콜센터가 ‘저임금 노동착취공장’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회색빛깔 금’으로 불리는 콜탄은 휴대폰의 핵심원료 탄탈륨의 원석인데, 70% 이상이 콩고에 묻혀 있습니다. 콜탄 가격이 수십 배 올랐음에도 콩고의 재정은 더욱 나빠질 뿐이고, 콜탄 채굴에 어린이들이 동원되는 실정입니다.


저 유명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서 돈을 번 IBM의 역사도 흥미롭습니다. 1930년대 IBM 기술의 절정이라고 불리는 다섯자리 홀러리스 숫자와 천공카드 기계는 나치의 유대인·집시 대량 학살에 이용됐는데, 2000대 이상이 강제수용소에 공급됐습니다. IBM은 단순히 기계만 팔지 않고, 기계 수리 및 나치장교 교육, 나치용 맞춤시스템 설계 등도 지원했다고 하니,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낙인을 찍어 관리하는데 쓰인 이 기계의 효과가 어떠했는지는 ‘종이와 연필로 수년이 걸릴 것을 홀러리스 컴퓨터로 수일만에 해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나, IBM 설립자 토머스 J.왓슨이 히틀러에게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IBM은 외면하고 있지만, 집시단체의 소송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삼성의 반도체는 애플에 공급됩니다. ‘애플 팍스콘 공장’처럼 ‘애플 삼성 공장’의 문제점을 꼬집는 기사들이 나올 수 있을까요? 물론, 언론이 그런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겁니다. 기사를 읽는 사람들의 화살이 애플로 향할 리는 만무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기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목적이야 어찌 됐든, 그런 기사들도 IT 업계의 노동 환경 문제를 개선하는데 일조할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니까 말입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