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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유선네트워크

초대형 라우터의 시대

【사람중심】최근 주니퍼네트웍스와 알카텔-루슨트가 초대형 라우터를 내놓았습니다. 지금까지 보다 용량이 월등히 큰 라우터입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확산된 이후 ‘트래픽 폭증’이라는, 마치 군사용어와도 같은 말을 많이 들어 왔는데 엄청난 용량의 라우터가 출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트래픽이 늘어나는 규모가 어떤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라우터(router)는 인터넷상에서 데이터를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안내해주는 통신 장비입니다. 인터넷 시대에 통신 서비스의 안정성과 품질을 높여주는 여러 장비들이 있지만, 라우터는 그 가운데서도 핵심 중의 핵심이 되는 장비죠.


알카텔-루슨트가 최근 출시한 코어 라우터 XRS 7950은 초당 32테라비트(32Tbps)의 처리량을 가진 제품입니다. 회사 측이 “최상위 모델 '7950 XRS 40' 1대 분량의 라우터를 경쟁사 최상위 코어 라우터로 구축하려면 12대의 장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할 만큼 엄청난 용량입니다. 이 보다 조금 앞서 주니퍼네트웍스가 출시한 PTX는 8Tbps 장비로, 연말에 16Tbps가 출시될 예정입니다. 


트래픽 폭증→장비 증설→비용 증가의 악순환

통신장비 제조사가 이처럼 대용량 라우터를 내놓는 것은 통신사들이 트래픽의 홍수에 직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통신사의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당연히 네트워크 투자비가 늘어나게 되는데 문제는 통신비를 마냥 인상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비용은 늘어나는데 수익은 줄어들거나 겨우 수평그래프를 유지하는 것이 전세계 통신사들이 겪고 있는 고충입니다.


급증하는 트래픽을 감당하려고 통신 장비를 도입하면 이 장비의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운영 비용입니다. 네트워크 구조가 복잡해지니 관리가 어렵고, 장애가 일어났을 때 처리하기도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비를 설치할 공간, 전기료 등도 만만치 않습니다.

초대형 라우터는 폭증하는 트래픽을 감당하는 것과 동시에 급증하는 운영비용(CAPEX)를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기존 12대의 라우터를 1대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처럼 데이터센터 공간과 전력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현재 대형 통신사들의 전체 비용 가운데, 전력 비용이 30%에 육박합니다), 네트워크 구조의 복잡성을 획기적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두 회사의 신형 라우터는 전력 비용을 줄이는 기술에서도 큰 진전을 보였고, 네트워크 구조를 단순하게 하면서도 망은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제품설명회에서 알카텔-루슨트 관계자의 설명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2016년이 되면 현재의 코어 라우팅 시스템을 계속 쓴다고 했을 때 통신사는 라우터 장비를 놓는 데만 128평방미터가 필요하다. 농구장 255, 축구장 15개 크기다.” 이처럼 엄청난 공간에 늘어놓아야 할 네트워크 장비 수가 매우 적어질 수 있다면, 네트워크 구조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주니퍼 PTX…MPLS코어 전용, 멀티섀시로 256테라까지 확장

5월 중순에 발표된 주니퍼의 슈퍼코어 라우터 PTX는 출시 전부터 화제가 됐던 장비입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트래픽을 만들어내고 있는 구글의 요청으로 개발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 장비는 대형 통신사들 사이에 연결망을 제공하는 통신사인 런던인터넷익스체인지(LINX)에 이미 구축됐습니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트래픽 폭증에 대비한 것이죠. 구글은 한창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는군요.


주니퍼 PTX는 MPLS(Multi Protocol Label Switching) 전용 라우터입니다. 시스코나 알카텔-루슨트는 이 장비가 MPLS 전용이어서 용도가 한정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이 부분에서 주니퍼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대부분의 통신사들이 MPLS 코어망을 가지고 있고, 사업자가 코어 라우터 사용이 대용량 패킷 전달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여러 기능을 제공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니퍼는 라우터의 대용량화에 더욱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멀티섀시 기술을 채택해 확장성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주니퍼 한국지사의 김병장 상무는 “지금 슬롯당 400Gbps인 것을 슬롯당 1.6Tbps로 확장하면 PTX 한 대가 32Tbps를 처리할 수 있고, 이를 8대까 연결하도록 설계됐다. 최대 256Tbps까지 증설할 수 있어 대형 통신사들에서 지금보다 훨씬 큰 코어 네트워크가 요구되더라도 라우터를 교체하지 않고 계속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니퍼 PTX는 올해 말 IP over DWDM 인터페이스가 지원돼 광전송 네트워크와도 연결되는데, 내년에는 장비 안에 DWDM 모듈(또는 쉘프)가 장착되기 때문에 IP 코어와 옵티컬 코어를 한 대의 장비에서 통합할 수 있게 됩니다.


알카텔-루슨트 7950 XRS…최대 용량에 다양한 기능까지

7950 XRS는 이제껏 통신사업자의 IP 코어용 라우터를 보유하지 못했던 알카텔-루슨트가 이 시장에 처음으로 던지는 출사표입니다. 최대 32Tbps 용량에 경쟁사 최대 용량 장비와 비교해 전력 소모량은 66%에 불과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용량이 훨씬 큰 것을 감안하면, 전력 소모량은 상당한 경쟁력이라고 생각됩니다.


7950 XRS에는 지난해 발표한 세계 최초의 400G 네트워크 칩셋 FP3가 탑재됐는데, 이 때문에 대용량에, 다양한 기능까지 제공합니다. 알카텔-루슨트 아태지역본부의 레이먼트 장 이사는 “코어 라우터는 용량과 기능을 다 충족하기는 어렵다는 이분법을 버렸다”면서, “단순히 트래픽 폭증만 해결한다고 통신사업자의 고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7950 XRS는 현재 요구되는 다양한 기능과 미래의 요구사항들까지도 수용할 수 있게 개발된 차세대 코어 라우터다”고 설명했습니다.



알카텔-루슨트는 자신들의 첫 코어 라우터가 데이터센터 스위칭에도 강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회사 측은 “데이터센터 안에 매우 많은 가상서버들이 돌고 있는데, 여기에 연결되는 앞으로 이것들을 얼마나 많이 묶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고민거리가 된다. 연결 지점이 많아지면 그만큼 데이터센터 구성이 복잡해지고, 서비스에 지연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7950 XRS는 데이터센터를 아주 크게 만들면서도 가상서버들을 묶기 위한 애그리케이션 라우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코어 라우터이지만, 가상화 아키텍처가 지원되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7950 XRS는 MPLS 코어용으로만 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확인 결과, IP 코어에도 쓸 수 있는 장비라고 합니다. 다양한 용도에 쓸 수 있고,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것은 시스코와 주니퍼가 양분하고 있는 통신사 코어 라우터 시장에서 도전장을 내미는 알카텔-루슨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기의 통신사를 구원할 노아의 방주는?

경쟁사들의 추격에 시스코 코리아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반응입니다. 알카텔-루슨트는 국내 통신사 코어 라우터 시장에서 지분이 없고, 주니퍼의 새 장비는 MPLS 코어용으로만 한정돼 있어서 국내에서 고객을 잡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더군요. 통신사가 자사 코어 라우터 최상급 장비인 CRS3를 코어망에 도입하면 기존 CRS1을 에지로 내려 투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통신사 코어 라우터 시장의 절대강자인 시스코. 막강한 경쟁자 주니퍼. 이 시장에 처음 뛰어들지만 에지 라우터 시장 1위이면서 통신시장에서 영항력이 막강한 알카텔-루슨트. 통신사들이 ‘트래픽’에 몸살을 앓고 있는 시대에, 초대형 라우터 경쟁을 시작한 세 회사의 싸움은 그동안 별다른 뉴스꺼리가 없던 코어 네트워크 시장에서 새로운 흥미를 불어넣는 희소식입니다.



과연 초대형 라우터는 제조사들의 말대로 위기에 빠진 통신사를 구원할 노아의 방주가 될 수 있을까요? 새롭게 펼쳐질 코어 라우터 시장에서 3사가 받아들 성적표는 각 회사 입장에서도 노아의 방주가 될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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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