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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컴퓨팅/클라우드

시스코가 서버를 만든다고?

【사람중심】시스코가 서버를 만든다고? 2009년 2월, 데이터 네트워크 솔루션 분야 부동의 1위 기업 시스코시스템즈가 블레이드 서버 제품을 발표할 때 나온 반응이었습니다.

시스코는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 가상화 기술, 통합 관리 기능이 결합된 이 제품이 단순한 서버가 아님을 강조했고, ‘UCS(Unified Computing System)’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차세대 IT 환경 즉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최적으로 지원하는 컴퓨팅 시스템이라는 것이 시스코의 설명이었죠.

UCS 출시 이후 시스코는 상시적인 공격과 비아냥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HP, IBM 델 등 오랜 파트너 관계에 있던 서버 제조사들은 경쟁사가 된 시스코를 향해 “네트워크 전문업체가 서버 시장에 왜 들어오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물론, “IT의 핵심이 되는 서버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나?”라며 성능을 불신하는 질문도 쏟아냈습니다. 또, “네트워크 전문업체가 서버만 보유한다고 차세대 데이터센터를 구현할 수 있나?”는 공격도 있었습니다.

네트워크 업계에서는 난공불락의 시스코가 외도를 했다는 것이 문제를 삼을 만한 소재가 됐습니다. “UC, 텔레프레즌스 등에 공을 들이더니 아에 완전히 외도를 했다”거나, “시스코는 네트워크의 본류인 스위치·라우터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들이 잇달았습니다.

UCS는 클라우드 환경 구현하는 ‘차세대 컴퓨팅 시스템

그러나 시스코는 섣불리 서버 시장에 뛰어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물론, 시스코 스스로는 UCS 출시가 서버 시장에 뛰어드는 신호탄이 아니라, 차세대 데이터센터 환경을 구현하려는 작업이라고 꾸준히 강변해 왔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블레이드 서버만 내놓은 것이 아니라,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서버·네트워크·스토리지·관리를 하나의 장비에서 모두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UCS의 컨셉이었고, 이에 걸맞게 가상 서버 환경을 지원하는 가상화 네트워킹과 데이터센터 안의 복잡한 케이블을 한가닥의 케이블에서 통합 지원하는 FCoE(Fiber Channel over Ethernet) 같은 기술들이 등장했습니다.

또, 기존 서버와 비교해 동일한 장비에서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큰 메모리 성능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메모리 확장 기술, 서버의 입출력(I/O) 속도를 높이고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기술, 원격지 데이터센터 사이에 대규모 시스템을 이동시킬 수 있는 기술 등을 함께 발표해 단순히 또 하나의 서버 브랜드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에 요구되는 기술이 집약된 차세대 시스템을 만들어 냈습니다.

주요한 특장점은 아닐 수도 있지만, 냉각 방식과 관련된 변화도 흥미로웠습니다. 모든 시스템 공급업체들이 ‘저전력’을 이슈로 삼고 있는 가운데, 시스코는 UCS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선보였습니다.

기존의 블레이드 서버는 시스템 뒷면의 개구율(뚫려 있는 부분의 비율)이 25% 안팎인데, 시스코 UCS는 60%가 넘었습니다. 공기의 순환이 원활하기에 시스템에서 발생되는 열이 빨리 공기 중에 흩어지고, 이 때문에 굳이 냉각팬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시스코의 설명이었습니다. UCS의 뒷면 개구율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바로 블레이드 서버의 복잡한 케이블링을 단 몇가닥으로 줄였기 때문입니다. 케이블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장치가 없어도 되니 그만큼 빈 공간을 많이 둘 수 있는 것입니다.

‘UCS 개발은 외도’ 비난 속 출시 2년만에 3위에 올라

시스코 UCS가 나온 뒤 한 컨설팅 회사에서는 시스코 장비의 아키텍처가 기존 서버 전문업체들과 비교해 12개월 가량 앞서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해외에서는 시스코 UCS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확산이 더디지만, 단지 케이블링이 단순해진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시스템을 도입하는 고객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봄 시스코 존 챔버스 회장이 직원에게 쓴 편지에서 “시스코가 그 동안 잘못한 부분이 있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을 때 또 한 번 타깃이 된 것이 UCS였습니다. “네트워크나 잘 할 것이지 그럴 줄 알았다”, “시스코가 어려운 이유는 외도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죠. 그러나, 시스코는 기존의 주요 사업 영역(UCS를 포함해서)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시스코는 8일, IDC의 ‘x86 기반 브레이드 서버 시장점유율’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자료를 보내왔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시스코는 2011년 1분기 전세계 x86 기반 블레이드 서버 시장에서 HP, IBM에 이어 3위를 차지했습니다. 3위라는 순위도 눈길을 끌지만, 시장점유율이 9.4%나 된다는 점은 더욱 놀라운 부분입니다. 올해 1분기 x86 블레이드 서버 분야에서 미국 시장과 전세계 시장을 막론하고 IBM, HP, 오라클은 모두 매출 하락세를 보였지만, 시스코만이 높은 성장세를 보였습니다(세계 시장 10.5%, 미국 시장 19.7%).

블레이드 서버 시장에 진출한 지 정확히 2년만의 성과이고, 클라우드·가상화 열풍 속에 블레이드 서버 가운데서도 x86 기반 시스템의 가파른 성장세가 예고되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성적도 기대해 볼만 합니다.


찻잔 속의 태풍인가? 트렌드의 혁신인가?

시스코는 2005~2006년부터 ‘3세대 데이터센터’라는 자료를 만들어 업계에서 가장 먼저 가상화·자동화된 데이터센터로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시스코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고객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지사 관계자에 따르면 시스코는 2005년 즈음부터 IBM, HP 같은 주요 파트너들에게 차세대 데이터센터를 위해 서버-네트워크-스토리지의 아키텍처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2년 여간 이들을 설득하던 시스코는 결국 직접 새로운 컨셉의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고,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UCS라고 하는군요.

시스코는 여전히 서버 시장의 마이너이고, 네트워크 분야 ‘공공의 적’을 넘어 서버 분야에서도 ‘공공의 적’입니다. IT 업계를 대표하는 서버 시장의 거인들을 상대로 ‘변화’를 외치고 있는 시스코의 도전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 도전자들이 만들어낸 혁신의 새로운 사례가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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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