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석과 전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e메일·SNS에 밀려난 편지 그리고 우체국

【사람중심】 미국의 우체국이 망할 위기라고 합니다. 뉴욕타임즈는 미국 현지시간으로 4일, 미국우정공사(USPS)는 예산이 바닥나 9월 말 55억 달러에 이르는 퇴직자 건강보험 비용을 내지 못할 전망이라고 전했습니다.

미국우정공사는 올해 적자가 92억 달러 규모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2012년 초 미국 의회가 비상 조치를 내놓지 못하면 직원들의 월급은 물론이고, 우편 배달 트럭의 유류비도 충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뉴욕타임즈의 설명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간 30억 통에 이르는 우편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할 수도 있다고 하는군요.

미국의 우체국이 이처럼 심각한 자금난을 겪게 된 것은 e-메일과 온라인 결제 시스템의 발달 때문이라고 합니다. 종이에 정성스레 자신의 마음을 담던 편지가 전자우편으로 대체되고, 우체국을 이용한 송금 등 금융 거래도 인터넷에 자리를 빼앗긴 것입니다.

올해 미국 우체국의 우편물 취급 규모는 5년 전에 비해 22%나 줄어든 1670억 통에 그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감소세는 앞으로도 계속돼 2020년에는 1180억 통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뉴욕타임즈는 추정했습니다. 그야말로 ‘편지의 몰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가을 즈음에 ‘플랫폼의 변화’라는 주제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용카드, 닌텐도DS, 대형 할인점, 구글은 단순히 하나의 상품이나 브랜드가 아니라, 플랫폼의 변화를 가져온 혁신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신용카드는 돈을 지불하는 방법을, 닌텐도DS는 오락실에서 동전을 들고 좋아하는 게임기 앞에서 기다리던 방식을, 대형 할인점은 모든 상점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했던 상품 구매 방식을, 구글은 광고를 하는 방식을 바꿔놓은 플랫폼의 변화라는 것이죠.

e-메일도 그런 것들 중 하나입니다. 나뭇잎에, 천조각에, 금속판이나 돌판에, 종이에 마음을 담아 써내려가던, 인간이 수 천 년을 이어오던 생각의 전달 방식을 급격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자우편이 아무리 득세를 해도 종이 편지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전망이었고, 전자우편이 등장한 지 이미 20년이 다 되어 가기에 전자우편과 종이 편지는 저마다의 지분을 나누어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뉴욕타임즈의 이번 뉴스가 종이 편지의 몰락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막상 미국의 우체국이 망할 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하니, e-메일의 위력이 새삼 무겁게 느껴집니다. 편지를 쓰고 나서 5~10분이면 상대방의 답장을 받을 수 있고, 단 몇 분 만에 수천 수만 명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장점은 확실히 기존의 편지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신용카드나 닌텐도DS가 바꾸어 버린 기존의 것들과 달리, 편지는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지켜온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뉴스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한참 써내려가던 편지지를 여러 차례 구겨 버리고, 그렇게 완성한 편지에 틀린 글씨가 있는지, 상대방이 오해할 만한 구석은 없는지 여러 번 읽어본 뒤 네 귀퉁이를 맞추어 조심스럽게 접어 내기까지 편지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는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좋은 감정이 담겨 있든, 분노가 담겨 있든 보내는 사람의 마음가짐도, 받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느낌도 전자우편과는 확실히 다를 겁니다.

종이 편지의 위기를 뉴스로 접하면서 문든 ‘신문’이 처한 상황도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송도 비슷한 처지이기는 하지만, 위기감은 신문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세계 제1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은 올해 초 온라인 신문 ‘더 데일리’를 창간했는데, 이 매체는 오직 아이패드에서만 서비스됩니다. 종이신문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이미 영향력이 많이 약해졌는데, PC와 달리 ‘들고 다닐 수 있는’ 온라인 신문의 등장은 과거 인터넷 신문의 등장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받아들여집니다. 뉴욕타임즈의 CEO도 “언젠가 종이 신문의 발행을 중단할 것이다”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가장 보수적이고, 기존의 유통 방식이 깨어지지 않는 종이 신문에도 플랫폼의 변화라는 혁명이 도래하게 될 거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주류 종이 신문 보다 훨씬 정확하고 날카로운 글들을 쏟아내는 인터넷 신문, 개인 웹사이트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주류 신문의 기사나 논조에 불만을 느낀 국민들이 광고 거부 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정부와 주류 신문들이 손을 잡고, 인터넷의 ‘여론’을 고발하고 벌주는 웃지 못 할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 신문의 발전이나 태블릿 PC의 확산은 단순히 신문이라는 정보 전달의 플랫폼만 바꾼 것이 아닙니다. 여론이 만들어지는 창구를 다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론이 정부나 특정 집단의 목적에 맞게 각색되는 폐단을 감시하고 바로잡는 역할까지 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정보 전달·여론 형성의 플랫폼을 변화시킨 것을 넘어, 정보 왜곡·여론 조작의 폐단을 바로잡는 ‘건강한 여론 형성 사회로의 플랫폼 변화’라고나 할까요?

IT 기술의 발전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합니다. 이것의 발전이 가져다 준 편리함과 유익함의 이면에 좋은 문화나 습관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이 적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겠습니다.

IT가 가져온 새로운 변화를 기존의 대체제로만 받아들인다면 전통이 숨 쉴 공간은 갈수록 좁아질 것입니다. 기존 것의 불편함은 개선하면서도 기존 것만이 가진 가치를 더욱 빛내주는 역할로 IT를 인식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인터넷 공간에서 정치·사회적 토론이 활발해진 것은 십분 환영할 일이지만, 광장에 마주앉아 있으면 웹 게시판에서 짧은 글귀만 주고받는 데서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도 없을 것이고, 단순히 토론·격론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 대안이 그 즉시 만들어 질 수도 있을 겁니다.

온라인 공간 또는 IT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정해진 매뉴얼은 없습니다. 시대와 상황의 변호에 맞게 우리들이 직접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전통과 첨단의 경계를 너무 모나지도, 너무 불분명하지도 않게 정리하는 일은 늘 어렵고도 중요한 숙제입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