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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전략과 정책

망치 한번 두들기는 비용이 1만달러라고?

[사람중심]  미국에서 철도가 운송수단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던 시절, 갑자기 기차가 운행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방법으로 동원해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자, 철도회사는 이 분야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달랑 망치 하나만 들고 현장을 방문한 기술자는 열차의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일에 집중하기는 커녕 차를 마시고 주변 사람들과 잡담을 하는 등 도무지 제대로 일을 한다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기술자가 갑자기 열차의 어느 부위를 망치로 한번 퉁하고 내려치자 열차는 거짓말처럼 다시 움직였습니다. 


그는 수리 대금으로 1만 달러를 청구했습니다. 철도회사 측은 열차가 운행을 재개했으니 1만 달러가 아깝지는 않았지만, 도대체 어떤 항목인지 궁금했기에 수리내역서를 제출할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이 기술자가 제출한 수리내역서 항목은 이러했습니다.

어느 부위에 망치를 두들겨야 할지 알아내는 비용 : 9,999달러

망치를 두들기는 비용 : 1달러



오랜 시간을 일하는 것이 전문가의 가치?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단순히 일을 한 시간이나, 물리적인 힘의 양, 동원한 비품·장비의 수, 투입된 사람의 수 등 수치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역량을 갖춘 인력 또는 회사를 고용할 때 이런 경우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그 회사(또는 사람)가 그만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 학습 및 실전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문가, 전문회사를 찾는 이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몇 명 왔는지, 몇 시간 일했는지는 일을 의뢰한 목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누구나 이렇게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상황에 맞닥뜨리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고작 그 정도 일을 했을 뿐인데, 비용은 왜 이렇게 비싼 거야!’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생각이 다르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화장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각이 달라지는 기업일 지라도, 전문가들이 그 능력을 갖추기까지 투자했던 노력과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를 똑같이 경험하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사무실에서 복사용지의 사용량이 많다고 해서 이 복사용지를 모든 기업이 직접 만들 필요 없는 것처럼 ‘잘 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기업 운영의 형태입니다. 


시스코의 도전 ‘서비스 제 값 받기’

네트워크 분야에서 가장 서비스를 강조해온 기업은 시스코시스템즈입니다. 고객이나 경쟁사들로부터 비난을 들어오면서도 시스코는 ‘서비스 제 값 받기’를 꾸준히 도모해왔고, 3년 전 ‘스마트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전체 서비스 사업을 재편했습니다. 한국 시장은 유독 이 전략이 먹혀들지 않는 시장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최근 들어서 조금 달라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시스코 서비스 아시아태평양, 일본, 중국 지역(APJC) 총괄 글렌 콕스 사장은 “네트워크 장비 유지보수 서비스를 받는 한국 고객의 절반 이상이 스마트 서비스를 구매했다”면서, “파트너들의 매출과 수익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스코는 서비스 사업을 위해 지적재산을 축적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지난 25년 간 구축한 5,000만대가 넘는 장비에서 각종 데이터를 수집해 장애와 이상징후를 모델링했습니다. 또, 9만건이 넘는 기술 문서와 매년 600만번 정도 발생하는 고객 응대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과 전문기술을 기반으로 장애가 일어났을 때 가장 신속·정확하게 대응하는 방법도 체계화했다는 설명입니다. 장애가 났을 때 86%는 시스코 기술센터에 전화만 하는 것으로 해결을 할 수 있다는군요.


이렇게 서비스의 지적 기반을 축적하는 것 만큼 시스코가 공을 들인 것이 파트너들의 역량 강화입니다. 시스코는 이를 ‘파트너 생태계’라고 표현하면서, “시스코의 역량과 파트너의 역량이 콤비네이션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스코와 파트너의 콤비네이션을 통한 고객 지원이 시스코의 지적재산권에 바탕을 둔 서비스로 표출된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글렌 콕스 사장(오른쪽 사진)이 맡고 있는 APJC 지역의 경우, 지난해부터 1000건 이상의 스마트 서비스 조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는데, 이를 기반으로 올해부터는 서비스 비즈니스를 더욱 가속화시킨다는 계획입니다. 가상화와 모바일 업무 환경을 기업들이 적극 수용하는 변화 속에서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파트너들의 역량을 더욱 강화시키겠다고 글렌 콕스 사장은 강했습니다.


3년 간 이어진 NTT도꼬모의 서비스 무장애

시스코는 현재 전체 매출 가운데 20%가 서비스 비즈니스에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다른 네트워크 장비 업체와 비교해 보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비중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파트너들은 이 비중이 더욱 높아 50%나 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파트너의 수익에서 70% 이상이 서비스에서 나온다는군요.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 수치가 그대로 적용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시스코는 “비슷한 추세로 가고 있다”는 정도로 답변했는데, 누구나 인지하듯이 우리나라 기업들은 서비스, 소프트웨어, 컨설팅 같은 지적재산권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인색하기로 이름이 높습니다.



서비스나 컨설팅과 관련해 우리나라와 종종 비교되는 시장이 일본입니다. 일본은 장비 성능 비교 테스트에 참가한 장비 공급업체들에게도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서비스 비용도 우리보다 훨씬 높이 책정돼 있다고 합니다.


시스코는 이 일본 시장에서 지난 3년 간 ‘서비스 매출 성장률 세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시스코 일본 매출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가깝다고 하니, 쉽게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일본 내 시스코 서비스의 가장 큰 고객인 NTT도꼬모는 통신 인프라 관련 지출의 50% 정도를 서비스에 쓴다고 합니다. 우리 통신사들이 5~10%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죠.


더욱 중요한 것은 ‘얼마를 쓰느냐’가 아니라, 그 결과, 즉 ‘얼마나 장애가 없냐’일 것입니다. NTT도꼬모는 시스코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한 뒤 지난 3년 간 통신서비스 무장애를 기록 중이라고 합니다. ‘서비스에 얼마를 쓸 것인가?’를 좌우하는 기준은 어쩌면 ‘통신서비스 가용성 100%를 지켜내겠다’는 생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비스의 가치를 인정하십니까?

서비스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유지보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전진단을 통해 장애의 가능성을 미리 제거하고, 만에 하나 장애가 났을 때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이 서비스의 목적입니다. 미래를 예측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는 것도 서비스의 역할이죠.


시스코가 ‘서비스’라는 덕목을 점점 더 강조하는 것은 IT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 서비스 경쟁력이 새로운 필살기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모바일 라이프의 확산과 클라우드·가상화 시대의 도래, 실시간 비디오 서비스의 급증 등 IT 환경의 변화는 더욱 똑똑한 네트워크를 원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의 지능은 곧 서비스의 지능·안정성과 직결될 것입니다.


네트워크 사용자의 기대치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떤 단말로든 무선 인터넷에 접속해서 회사 업무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고품질 모바일 서비스를 받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모바일 스트리밍 서비스에 장애가 생기면 고객을 붙잡아 두기 어렵습니다. 직원·고객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런 서비스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려면 매우 안정된 고성능 네트워크가 뒷받침돼야 할 것입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전 사회적 화두입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도입했느냐가 ‘기업이 얼마나 똑똑한가’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아마 클라우드 시대에 네트워크 서비스는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빌려쓰는 IT’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성능’일 것이고, 네트워크는 그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죠. 기업들이 이렇게 인식한다면 네트워크 전문업체들은 ‘서비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 글 맨 처음에 철도회사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국내에 정보통신 산업이 한창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2000년 전후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회사의 서버가 갑자기 가동을 멈춰 IT 부서에서 온갖 조치를 다 해 봐도 서버가 동작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전문가를 불렀는데, 잠깐 동안 상태를 점검하던 전문가가 서버 뒤쪽으로 가서 빠져 있던 전원 코드를 꽂으니 다시 작동을 했다.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 낸 것이 그 회사 IT 부서 인력들과 이 전문가의 차이였다......>고 하는.


‘성공을 위해서는 우리 회사가 잘 하는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전문회사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전문회사에 줘야 할 비용을 아끼는 방법을 고민한다?’, 아니면, ‘전문회사에 맡기고, 우리의 일에 집중한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