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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컴퓨팅

디지털혁신 시대의 HR, IT솔루션 보다 ‘사람·문화’ 먼저

[사람중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디지털 기업, 디지털 이코노미.... 언젠가부터 IT 업계에서 ‘디지털 **’이라는 표현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디지털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표현들인데, 특히 IT 영역에서는 인프라, 플랫폼, 솔루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많이 이용됩니다. 운영성·확장성이 뛰어난 클라우드 플랫폼, 자동화된 가상화 네트워킹, 지능형 통합보안 플랫폼 같은 것이 디지털 혁신을 위한 주요한 요소로 강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도화된 플랫폼·솔루션이 아니라, 사람 즉 직원 관리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중요한 요소로 내세우는 기업이 있습니다. 인사·재무 분야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 전문기업 워크데이(Workday)입니다. 워크데이는 지난 28일 한국 진출을 기념해 국내에서 첫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특이하게도 패널토론회 형식의 기자간담회였습니다. 1시간 남짓의 기자간담회에서 패널토론회라니... 형식적인 패널토론회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오히려 회사 및 제품 소개에 할애된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는 진짜 패널토론회였습니다. 참석한 패널들도 기업의 현직 인사 담당 임원들과 인사관리 전공 학자까지 여느 인사 관리, 인적자원 관리 전문 세미나 못지않았습니다.


한국 노동자 직업만족도 ‘최저’... 28%가 “1년 내 이직”

패널토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워크데이는 한국 기업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는데, 놀랍고도 씁쓸한 내용이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노동자 1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우리나라 노동자의 직업 만족도가 가장 낮게 나온 것입니다. 설문에 참여한 우리나라 노동자의 35%가 ‘현재 직장에 만족하지 못 한다.’고 답했고, 28%는 ‘12개월 안에 직장을 떠날 계획이다.’고 밝혔습니다.

이직을 원하는 이유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습니다(복수 응답).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해서’라는 대답이 62%, ‘회사·상사가 자신의 미래가 보장되는 직무와 적극 연계시켜주지 못해서’라는 응답이 60%였습니다. 이 밖에도 ‘업무가 디지털화되고 있는데 필요한 스킬이 부족하다고 느껴서’가 57%, ‘회사가 디지털 경제에 맞춘 생산적이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가 39%를 차지했습니다.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는 교육이나, 업무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것이 노동자들의 큰 고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일자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디지털화(81%)’가 꼽혔습니다. 한마디로 디지털화니, 인공지능(AI)이니, 지능형로봇이니 해서 일자리를 위협하는 요소가 점점 많아지는데, 노동자는 변화에 대비할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인 것이죠. 이렇다 보니 ‘변화에 대응할 역량이 있는지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노동자가 57%나 됐습니다.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일자리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주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이미 일자리가 있는 노동자들의 고민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임을 인식시켜 주었습니다. 일자리가 안정되고, 그 속에서 계속 자기 역량을 높일 수 있어야 기업도 사회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HR, 디지털 시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을 주제로 내건 이번 토론회에는 인사관리 전문가인 유규창 교수(한양대 경영학부), 이강란 AIA생명 인사담당 전무, 김이경 이베이코리아 인사총괄 전무, 박상원 KPMG 본부장, 데이비드 호프 워크데이 아태지역 사장이 참석했고, 인력개발 업체 EMA파트너스 박상욱 대표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인사 체계·제도’ ↔ ‘의사결정↔협업 방식’ 간극 크다

첫 번째 질문은 “이번 설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이었다.

한양대 유규창 교수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며, “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책의 강화, 직업의 다양화, 가치관이 바뀌고 연령도 젊어진 노동인력 등 변화가 적지 않다. 직장 내 다양한 세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직원의 생산성·창의성도 높이는 것이 기업 HR의 핵심 역할이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베이코리아 김이경 전무는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몇 년 통계를 보면 입사 2년 이내 퇴사자가 20%나 되고, 3~4년차 직원의 업무 만족도는 다른 연차 보다 매우 낮은 수준이다.”면서, ‘조직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간극’을 원인으로 제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전무는 “인사 관련 체계와 제도 등이 하드웨어 시스템이라면, 리더십이나 의사결정 과정, 협업 방식 등이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둘의 간극이 너무 크다. 하드웨어만 잘 갖춰놓으면 저절로 잘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AIA생명은 이직률이 매우 낮은 편”이라고 소개한 이강란 전무는 “조직 속에서 직원들의 경험의 질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겠다. 기업의 제품·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면 고객이 떠나듯 직원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험을 주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KPMG 박상원 본부장도 “HR이라는 것이 결국 고객응대 서비스와 비슷하다. 인사 부문에서도 직원이 만족할 수 있는 응대 서비스와 직원 중심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문화·사고방식 안 바뀌면 전지전능한 솔루션 도입해도 실패”

이어, “직원들의 경험, 만족도 향상에 IT 솔루션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냐?”는 주제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데이비드 호프 워크데이 아태지역 사장은 “과거에 인사관리 분야에 여러 이질적 솔루션들이 섞여 있을 때는 관리자들이 직원의 특성이나 숙련도를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웠다.”면서, “클라우드 기반을 직원과 업무를 분석하면 사전에 학습 등 커리어 향상 교육 및 직무 경험 기회를 제공해 직원의 경험·만족도와 관련해 다양한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현업의 인사관리 전문가들 의견은 조금 다르더군요.

김이경 이베이코리아 전무는 “IT 솔루션이 도구나 촉진제는 될 수 있어도 해결책은 될 수 없다. IT 솔루션이 바뀌었다 해도 사람·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우리 회사도 본사의 최신 솔루션과 경영제도 등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똑 같은 시스템을 쓴다고 똑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고 지적하면서, ‘제도·시스템’에 ‘문화’와 ‘사고방식(mind set)’까지 3박자가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아무리 전지전능한 솔루션이 있어도 인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AIA생명 이강란 전무는 “지난해 한국 진출 30주년이 됐고, 노동환경 변화 및 4차산업혁명 시대 도래 등 새로운 흐름에 보다 적극 대응하고자 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운동을 하고 있다.”면서, “툴셋(tool set), 스킬셋(skill set), 마인드셋(mind set) 이 3박자가 어우러지지 않으면 직원이 추구하는 ‘삶과 일의 균형’을 찾기 힘들다.”고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워크데이 데이비드 호프 사장 역시 “집을 짓는 것으로 설명하면 IT 솔루션이나 클라우드 서비스는 집을 짓는 인프라 중 하나다. 그런데 집을 잘 지으려면 조직문화, 리더십, 민첩성 등 여러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기술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서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다.”고 IT 솔루션에 의존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연공서열형 인사관리, 전문성 강화와 직무능력 평가에 취약

한국 기업의 인사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지도 패널토론의 주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한양대 유규창 교수는 한국 기업의 전통적인 HR 원칙으로 ‘연공서열형’을 지목하면서 이 방식이 구성원의 충성심 유발과 일사불란한 협력에는 이점이 있지만, 최근 인력 관리에서 핵심 이슈가 되는 ‘직원의 전문성 강화’에는 매우 취약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직원 개개인이 하는 업무가 정확히 정해져 있고 그것으로 직원을 평가해야 하는데, 우리 기업들은 직무 중심이 아니라 ‘관계 중심’, ‘서열 중심’이다 보니 직원의 전문성 강화에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유규창 교수는 “글로벌 표준의 HR 전문 솔루션·서비스가 국내에 많이 도입되면 ‘직무 중심’을 직원을 육성·평가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베이코리아 김이경 전무는 대기업 어느 인사 담당 직원이 며칠 밤을 새워 엄청난 양의 보고서를 만든 사례를 소개했다. “그 보고서의 주제가 ‘어떻게 일을 스마트하게 할 것인가?’였다. 스마트하게 일을 하는 방법을 찾자고 하면서 매우 미련한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 전무는 ”이 얘기는 실제 사례다. 인사 조직은 기능 중심이 아니라 ‘고객(직원)’ 중심이어야 하고, 수평적이어야 하며, 열려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안 되면 인사 부서에서 하는 어떤 디지털 혁신, 문화 혁신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KPMG의 박상원 본부장은 “인사 관리에서도 직원들의 채용, 승진 등을 추진할 때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데이터 기반의 평가 및 의사결정 체계를 중요하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이렇게 체질을 개선하려면 데이터가 구조화·유연화 되어야 하고, 데이터로부터 의미 있는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다양한 보고서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트렌드의 변화를 소개했습니다.


HR, 디지털 시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워크데이는 가트너가 선정한 클라우드 인사관리 분야 리더 기업이고, 구글·넷플릭스·히다찌 같은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선택한 클라우드 HR(Human resources) 서비스인데, 정작 그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패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연공서열형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하고, 관계 보다 직무능력이 중심이 돼야 하며, 문화가 바뀌는 것이 중요하고, 고객을 대한다는 관점에서 직원을 대하고 직원의 전문성을 높여주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사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인데, 우리네 기업 문화는 아직도 누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으며, 누가 시키는 대로 잘 하는지, 괜한 일을 벌이지는 않는지 하는 것들이 평가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디지털 엔터프라이즈’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인력·조직 관리에 있어서도 시스템, 프로세스, IT 솔루션을 많이 따지게 되었습니다. ‘HR, 디지털 시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패널토론은 그러한 현실에서 왜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지, 솔루션 보다 중요한 진짜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문화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당연히 인사 관리를 좀 더 객관적이고, 다층적이고, 정확하게 하려는 요구가 생겨날 테고, 그럴 때 좋은 솔루션·서비스가 가치를 발휘하게 되겠죠. 솔루션·서비스 보다 사람과 문화를 먼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겁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