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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WiFi

WiFi 사업에 뛰어든 주니퍼



【사람중심】 여름휴가를 막 다녀온 지난 8월 초순, 한 외국계 WiFi 전문업체 지사장을 만나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회사의 새로운 회계연도를 앞두고 진행되는 본사 회의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들은 빅뉴스가 있다며 “주니퍼가 트라페즈를 인수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이와 관련해 어떤 정보도 없을 때였지만 “본사가 한해 사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관련 업계의 주요 동향으로 이 얘기를 한 것을 보면, 본사 입장에서는 이미 두 회사 사이에 합의가 끝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게 그 지사장의 설명이었습니다.

그 직후 주니퍼 한국지사의 몇몇 분에게 물었지만 확인을 할 수 없었고,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며칠을 고민하다 보니 그만 기사를 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지난 18일, 주니퍼네트웍스에서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트라페즈네트웍스를 인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수 금액은 1억 5,200만 달러, 인수 작업은 연말까지 마무리한답니다. 이미 여름에 인수가 확정된 것이라면, 그 동안에 이미 인수 작업을 착실히 진행해 왔을 겁니다.

주니퍼스의 패브릭 및 스위칭 기술 총괄 수석부사장 데이비드 옌은 “트라페즈 인수로 업계 최고 수준의 라우팅, 보안, 스위칭을 제공하는 주니퍼 포트폴리오에 혁신적이고 검증된 무선LAN 기술까지 추가하게 됐다”며, “이제 주니퍼 고객들은 장소와 단말에 관계없이 고품질 네트워크 접속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고, 주니퍼 역시 엔드-투-엔드 고성능 네트워킹을 제공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었다”고 말했습니다.

■ 장고 끝에 선택한 트라페즈네트웍스

주니퍼네트웍스가 WiFi 전문업체를 인수하려 한다는 얘기는 꽤 오래 전부터, 자주 흘러나왔습니다. 초창기에는 아루바네트웍스를 인수하려 했고, 몇 년 전부터는 메루네트웍스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에 주니퍼에 인수된 트라페즈는 아루바, 메루와 함께 몇 안 되는 WiFi 전문업체였습니다. 그간 시스코시스템즈가 몇몇 WiFi 전문업체를 인수했고, 2008년에는 HP가 콜루브리스를 인수하면서 사실상 대형 WiFi 전문업체는 아루바, 메루, 트라페즈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트라페즈는 쓰리콤 등에 OEM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데 주력하다, 2007년 하반기부터 자체 브랜드 영업을 강화하고 나섰습니다. 기술에서 여타 벤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인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여러 네트워크 업체에 OEM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어 생산량이 많다 보니 가격에서도 장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트라페즈도 2년 전 벨덴이라는 케이블 전문업체에 인수됐습니다만, 두 사업이 완전히 다른 성격이어서 독립된 형태로 운영돼 왔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인수한 모기업이 WiFi 사업에 이전만한 열정을 보여주지 못해 마케팅 등에서 이전보다 적극성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인데, 이제는 주니퍼라는 브랜드를 달게 됐으니, 본래의 강점을 잘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 모바일 워크 시대, WiFi는 미룰 수 없는 과제

주니퍼 입장에서 WiFi 전문업체 인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최근 FMC 또는 스마트 오피스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WiFi는 네트워크 공급업체라면 반드시 갖춰야 될 요건이 되었습니다. 기업 현장에서 노트북이 이미 데스크톱보다 훨씬 많아졌고, 스마트폰·태블릿까지 확산되면서 액세스 네트워크의 중심이 유선에서 무선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현실입니다.

예전에는 네트워크 업그레이드라고 하면, 대역폭을 늘리고 낡은 스위치·라우터를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을 얘기했지만, 지금은 당연히 FMC가 고민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데다가, 유선보다 속도도 훨씬 빠르고, 스마트폰까지 활용도를 높일 수 있으니 WiFi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WiFi 프로젝트에서 유선과 무선 LAN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느냐가 자격 요건이 되는 경우가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주니퍼 입장에서 보면 WiFi가 없었을 때는 참가할 수 없는 프로젝트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유무선 LAN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유력한 공급업체 중 하나가 됐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 WiFi 경쟁력은 ‘전략’

라우터와 네트워크 보안 시장에서의 경쟁력에다, 최근 1~2년 사이 기업용 스위치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주니퍼로서는 WiFi 솔루션까지 갖추게 됨으로써 제품 구성 면에서는 빠짐없이 모든 요소를 갖추게 됐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단순히 ‘우리도 WiFi가 있다’가 아니라, 어떤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WiFi 시장은 장비의 성능과 기능을 얘기하던 시대를 지나, 얼마나 다채로운 방법론을 가지고 시장에 접근하느냐가 경쟁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WiFi 전문업체들은 WiFi에 보안·VPN·3G 등을 접목해 기존의 유선네트워크 전문업체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유무선 토털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쪽에서는 WiFi 그 자체보다는 ‘모바일 시티’처럼 새로운 시장을 구상해 중요한 솔루션의 하나로 WiFi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각자의 조건에서 택한 전략은 다르지만, 이러한 모든 시도는 의미가 있는 것들입니다. ‘케이블 없이도 네트워킹이 된다’는 식의 접근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활동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 간 WiFi 업체들이 열심히 뛰어다니지 않았다면 아마 FMC(유무선 통합) 서비스는 아직 개념이나 얘기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WiFi 업체들이 초창기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열심히 FMC 시장을 개척한 덕에 지금 전 IT 업계가 눈독을 들이는 스마트 워크, 스마트 오피스 시장이 열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유무선 통합 네트워크를 보유한 업체들이 WiFi 전문업체들 만큼 FMC를 일찍 그리고 적극 밀어붙였다면 아마 새롭게 열리는 스마트 워크 시장에서 좀 더 중요한 역할을 인정받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WiFi 전문업체들은 그들이 보유한 솔루션이 워낙 한정돼 있는 탓에 스마트 워크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빵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만, 그들이 이 새로운 시장을 여는데 기여한 공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 주니퍼가 보여줄 유무선 통합 전략은?

주니퍼는 그 동안 쉽지 않은 도전에서 늘 의미 있는 행보를 보여 왔습니다. 라우터로 주니퍼의 아성에 도전할 때도, 전문업체를 인수하지 않고 직접 스위치를 개발해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도 우려의 목소리,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보란듯이 잘 성장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WiFi 분야에서는 어떨까요? 일반적으로 유무선 네트워크를 모두 가진 벤더들은 WiFi 비즈니스를 열심히 하지 않는 편입니다. WiFi의 매출이 워낙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대형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수주했을 때 따라오는 WiFi 매출이 어지간한 WIFi 전문업체 한국지사의 한해 목표치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WiFi 솔루션 자체의 성능이나 기능에서는 많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유무선 통합 네트워크 전문업체의 장비를 주로 취급하는 국내 대형 NI(네트워크 통합) 업체 임원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WiFi 프로젝트에 참가했는데 확실히 전문업체에 비해 솔루션이 약하더라”고 말입니다. 그래도 결국은 정치적인 상황을 이용해 최종적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는 있었다고 합니다.

이 외산 네트워크 업체는 과거에 기술이 앞서 있다는 WiFi 전문업체를 인수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WiFi 전문업체들보다 성능이 떨어졌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법론은 열심히 개발했지만, WiFi 그 자체의 시장과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소홀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주니퍼도 덩치가 큰 네트워크 회사입니다. 이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을 겁니다. 라우터나 스위치처럼 매출에 크게 기여하지도 않는데 기술 향상에 매달리는 것보다, 덩치가 있는 유무선 통합 프로젝트에 참가해 라우터·스위치를 팔 때 얹어서 싸게 파는 것이 훨씬 쉬운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 효율성의 판단은 회사의 몫이겠지요.

어쨌든 이 판단에 개별 나라의 지사가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지사 입장에서는 한국시장의 변화를 잘 읽어내서 거기에 맞는 영업전략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WiFi 전문업체도 아니고, 유무선 통합 네트워크에서는 후발주자인 만큼 새로운 시장과 영업전략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결국 가격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물론 레퍼런스 사이트를 확보하는 것이 일차적인 사업 전략이 되겠지만, WiFi 장비는 아직은 다른 브랜드로 바꾸기에 부담이 없는 아이템입니다. 주니퍼네트웍스 한국지사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야 치열한 경쟁을 피하면서도 원하는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 WiFi가 제대로 주목받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콜루브리스에 이어 트라페즈마저 인수되고 나니 이제 WiFi 전문업체가 몇 남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개념의 WiFi 업체들이 국내 진출을 타진하고 있지만, 아직 규모가 미미한 상황이라 실제로 모토로라, 아루바, 메루 정도만이 대형 네트워크 전문업체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음번에는 이들 WiFi 전문업체의 생존전략을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