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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WiFi

슈퍼WiFi 그리고 ‘공유 무선랜’의 기억

[사람중심] 통신사가 아닌데, 광대역 네트워크 즉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한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지난 달,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에서 광대역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500개 미국 대학들과 연대해 이른 바, ‘슈퍼 와이파이(Super WiFi)’ 기술을 활용해서 2013년 1분기 부터 미국 교외 지역에 광대역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Gig.U(기그유)’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한 것입니다. 대학이 500개나 참여한 것을 보니, 아마도 ‘교외 지역’이라는 범주에 대학들이 포함되는 모양입니다.


IT전문 미디어 기가옴(GIGAOM)에 따르면, ‘기그유’ 프로젝트는 TV용 주파수 대역 가운데 사용하지 않는 유휴 대역(white space)을 활용해 WiFi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여러 대학의 연구기관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슈퍼 WiFi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도 일조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그유’ 프로젝트는 다시 6개의 파일럿 프로젝트로 세분화된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동통신망이 무색한 슈퍼WiFi…신호 도달거리가 무려 10km 

이번 프로젝트는 당연히 통신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슈퍼 WiFi 기술은 신호 도달 거리가 최대 10km나 됩니다. 사용자 수에 영향을 받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기존 WiFi 기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호 도달 거리가 깁니다. 또, 이 정도 커버리지를 가지면서도 채널당 10Mbps의 속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하니, 과연 ‘super’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하네요.


그런데, 어떤 기술이 ‘문서상의 성능에서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과연 그 기술이 얼마나 빨리 안정화, 상용화될 것인가’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러 대학의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실제로 500개 대학에서 다양한 테스트를 해볼 수 있기 때문에 안정화 시기가 훨씬 앞당겨 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장에 500개 대학을 포함한 '외곽 지역'에 슈퍼 WiFi를 구축하게 되면, 여기에 필요한 콘트롤러와 AP, 브릿지, 칩셋 등의 수요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상용화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인 ‘가격 하락’을 이끄는 효과도 있겠지요. 


슈퍼 WiFi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고안한 것입니다. TV용 주파수 대역 가운데 유휴 대역을 이용하는 이유는 이 주파수 대역을 ‘황금 주파수’라고 할 만큼 전파 특성이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호 도달 거리가 길고, 신호가 장애물을 통과하는 투과율도 좋다는 것이죠. 이 황금 주파수에 WiFi를 적용하게 되면 전파 도달 거리가 기존 WiFi 보다 100배 가량 늘어나고, 신호의 투과율은 9배나 높아진답니다. 커버리지는 최대 16배나 늘어나고요.


따라서, 황금 주파수 대역에 WiFi 기술을 실어 올렸을 때 그만큼 더 넓은 지역에서 더욱 안정된 성능의 WiFi 접속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슈퍼 WiFi가 고안된 이유입니다. 기존에 하나의 중계기에서 이렇게 넓은 지역을 커버할 수 있는 통신 기술은 이동통신망밖에 없었는데, 구축비용이 훨씬 저렴한 WiFi에서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터넷·SW 업체에게 새로운 기회 열리나?

언론들은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비통신 진영이 네트워크의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WiFi 기술이니 망을 구축한 진영에서 주파수 이용대가를 지불할 필요도 없고, 통신사 눈치를 볼 이유도 없겠지요. 이동통신망에 모든 기대를 걸고 있는 통신사들로서는 매우 불편한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같은 소프트웨어, 인터넷 기업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것에 주목해야 된다는 것이 외신들의 논평입니다. 시장조사업체인 애틀러스리서치는 “슈퍼 WiFi는 유무선 네트워크가 취약한 지역의 초고속 통신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네트워크가 없는 기업이 통신사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자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에게는 중요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슈퍼 WiFi 프로젝트 소식을 접하고 보니, <fon>이라는 운동이 생각납니다. 저는 이것을 ‘공유 무선랜’이라고 불렀는데요, 개개인이 설치해놓은 WiFi AP를 여러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내놓음으로써 소비자 스스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무선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스페인 사업가가 시작한 운동이었는데, 자신의 공유기에 fon 소프트웨어를 내려받고 등록을 하면, 회원들은 fon 공유기가 있는 지역에서 공짜로 무선인터넷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동통신망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쓰는 것은 너무 비싸고, 통신사들이 WiFi 조차도 적지 않은 비용을 받고 서비스하던 시절에 나온 일종의 소비자 운동이라고나 할까요.


이 운동이 우리나라에 상륙하자,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회원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아래 그림은 fon 웹사이트에서 등록된 WiFi AP를 검색한 것인데, 일본과 우리나라에 보여지는 주황색 점들의 숫자는 굳이 비교하는 것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해외에서 <fon>은 무선 데이터 인프라를 확보하지 못한 통신사들과의 제휴 모델을 만들어 냄으로써 소비자 운동이 상업 통신 서비스와 결합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모델이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통신시장은 정책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는 거대 통신사 중심이어서 외국과 달리 WiFi 핫스팟 서비스도 비싸던 시절이니, 공짜로 무선랜을 사용하자는 소비자들의 연대가 통신사들에게 달가울 리 없었을 겁니다.


공유 무선랜 운동의 좌절…또 한번의 도전

<fon>이 등장한 것이 불과 5~6년 전인데, 이제 1~2년 뒤면 이동통신망의 커버리지를 위협할 만한 WiFi가 나온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더욱이 미국에서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는 통신사업자 못지않은, 어떤 면에서는 통신사업자 보다 더 위력적인 존재입니다. 서비스와 플랫폼으로 사용자를 사로잡고 있는 이들이 강력한 WiFi 위에 어떤 서비스를 올려놓을지 기대가 큽니다. 슈퍼 WiFi는 소비자 연대가 아닌, 새로운 개념의 통신 인프라로써의 WiFi가 될 것으로 봅니다.


데이터 트래픽의 증가 속도는 엄청나게 빠른데, 서비스 이용요금을 마냥 높일 수 없는 것이 통신사들의 고민입니다. 통신망 구축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통신사들이 WiFi 구축에 앞장서는 상황이니, 슈퍼 WiFi의 등장은 통신사들에게 마냥 불편한 일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네이버나 다음, 엔씨소프트 같은 회사가 슈퍼 WiFi를 구축해 무료로 서비스한다면, 통신사의 무선 데이터 서비스 수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민간 인터넷 기업이 대대적으로 슈퍼 WiFi를 구축해 공짜로 제공하려고 했을 때 방통위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요. 



국내에서도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말부터 제주도, 소방방재청 2개 기관을 실험서비스 수행기관으로 선정, 슈퍼 WiFi에서 재난영상을 전송하는 등의 시범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런 준비 과정을 거쳐 2014년에 상용화를 할 계획이라는군요(영국과 일본 등도 2014년 상용화를 준비 중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슈퍼 WiFi처럼 굳이 이동통신망을 이용하지 않아도 빠르고 안정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무선네트워크 기술이 점점 발전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건 결국 통신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안정된 수익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괜찮은 성능의 무선네트워크를 제공할 수 있는 시대라면, 당연히 ‘서비스’와 ‘아이디어’가 경쟁력의 척도가 돼야 하겠죠. 통신사 역시 이런 마인드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