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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ICT 전담 부처...부활 보다 중요한 몇 가지

[사람중심]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담당할 전담 부처를 만들어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며칠 전에는 대선 후보들이 모 IT 일간신문의 창간 행사에 즈음해 너도나도 “ICT 전담 부처의 부활”을 외쳤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그럼, 지금은 ICT 전담부처가 없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 정부 들어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 권력을 재편하고 장악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ICT 산업 활성화에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오죽하면 “그 잃어버렸다는 10년 동안 가장 높이 평가받는 치적이 ICT 정책이어서 정부․여당이 ICT라고 하면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고 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과거 정통부의 역할 중 상당 부분은 지식경제부로 편입이 됐는데, 지경부 업무 가운데서 ICT는 하나의 분야이다 보니 정통부 시절 만큼 ICT 산업을 각별히 챙기기 힘든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지경부 입장에서는 특정 산업만 유달리 챙긴다는 것이 형평에 맞지 않는 일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꼭 잘 못 된 일인지는 곰곰이 따져 볼 문제입니다.


출처 : 전자신문


‘잃어버린 10년’, 찐빵은 그만하면 됐다?

이명박 정부의 ICT 정책과 관련해 친한 교수 한 사람이 했던 얘기가 기억납니다. 그는 정부의 ICT 정책 수립, 실행과 관련해 매우 정열적으로 일하는 사람인데, ICT 산업을 찐빵에 비유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 찐빵 만드는 기술이 좋아졌으니 기술 개발은 이쯤 해두고, 이제는 찐빵을 많이 만들어서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반죽을 잘 하고, 맛있는 찐빵소를 만들고, 알맞게 쪄내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멈춰서야 되겠나? 이 기술들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야 하고, 옥수수 찐빵, 녹차 찐빵처럼 여러 재료를 이용해 남다른 찐빵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하고 찐빵 많이 만드는 데만 신경 쓰는 사이에 다른 나라들의 찐빵 만드는 기술이 우리를 추월해 가고 있다”고 땅을 쳤습니다.


현 정부의 ICT 정책을 너무도 적절히 비유한 얘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제 생각에는 찐빵 시장이 커지거나, 일자리가 늘지도 않았습니다. 매번 무슨무슨 서비스 활성화 정책이라는 것을 내놓으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시장 규모의 성장’과 ‘일자리 몇만 개 창출’이었지만, 알맹이도 없고 진심도 없는 정책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시장이 성장한다면 그것은 정말 이상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부쩍 ICT 발전을 견인할 전담 부처가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9월 들어 드디어 ‘ICT 대연합’이라는 조직까지 발족됐습니다. 11개 협회와, 15개 통신학회, 7개 포럼, 33개 기관이 참여한 단체입니다. 전직 정통부 장관 등 관료 출신들도 대거 이름을 올렸습니다. 세미나 등에서 몇몇 사람이 주장을 하던 것에 머물지 않고 대규모 조직까지 만든 것을 보면, 확실히 정권말은 정권말인가 봅니다.


출처 : 미디어스


물론 살아있는 정권의 서슬이 시퍼런 상황에서 정책 기조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IT 업계가 죽겠다고 아우성을 해도 가만히 있다가 정권말이 되어서야 슬그머니 깃발을 들고 나서는 모양새를 보니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물론 이전에도 ICT 전담 부처 부활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처럼 적극성을 보였다면 어땠을까요? 


ICT의 모든 것을 관장하시는 부처가 필요한가?

ICT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ICT 전담 부처 부활을 외치는 것도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ICT 산업의 발전을 위한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 하고 있다가, 정권 임기말에 여기저기서 ICT 전담부처 부활 얘기가 나오자 그제야 연합체를 만들고, 슬그머니 ICT 독임부처 부활의 구원투수 노릇을 자처하고 나섰다는 비난을 할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ICT 전담 부처 부활’ 주장에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살아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요?


방통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통신부는 사실 무소불위의 기관이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 구축, 이동통신 환경 조성, 게임 산업 활성화, 전자정부 서비스 도입 등 굵직굵직한 ICT 지원 정책들이 쏟아지던 시기에 이 모든 정책을 주관하던 부처였으니까요.


하지만, 정통부의 행태를 두고 말이 많았습니다. ICT 정책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것이 정통부의 역할일 텐데, 당시의 정통부는 사실상 ‘ICT와 관련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관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부처와의 마찰이 적지 않았죠.


ICT 기술은 어느 부처를 막론하고 쓰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각 정책 분야의 IT와 관련된 집행과 운영 대부분은 해당 부처가 담당하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콘트롤 타워는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개별 분야에 필요한 기술 개발을 추진해 필요한 때에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될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 행정전산망을 구축할 당시 주무부처인 행안부(당시 행자부)가 있는데도 정통부가 계획부터 구축, 관리까지 다 하겠다고 나서 갈등이 생긴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통부는 ‘ICT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는 지적을 받곤 했습니다. 과학기술부가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 아젠다를 만들면, 정통부도 금방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그런 관행이 남아서인지 방통위가 만들어지고 나서 유관 부처 논의 아래 개인정보 보호 관련 정책이 만들어졌고, 주무부처인 행안부가 이 내용으로 오후에 기자간담회를 예정해 놓고 있었는데, 당일 오전에 방통위가 기습적으로 기자간담회를 해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행안부 기자간담회는 행안부와 방통위를 비롯해 유관부처들이 함께 열기로 되어 있는 자리였는데, 방통위가 오전에 날치기를 해버리는 바람에 정작 본 행사가 김이 빠져 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정통부의 전횡과 관련해 문제제기가 적지 않았습니다만, 정통부는 늘 ‘논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정통부가 왜 존재해야 되고, 왜 그 모든 일을 정통부가 해야만 되는지를 설명하는 보고서와 연구자료가 풍족했으니까요. 이를 두고 ICT 업계에서는 “정보통신촉진기금이 건설촉진기금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보니, 장학생들이 넘쳐난다”고 비꼬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죠.


역할보다 권한, 책임보다 권위

추락을 모른 채 호시절을 누리던 정통부의 전성기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함께 갑작스런 몰락을 맞이하게 됩니다. 현 정부의 인수위 시절부터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를 놓고 자주 회의가 벌어졌고, 각 부처는 왜 새로운 부처가 자기 부처를 중심으로 통합돼야 하는지를 설득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정통부 관계자를 지원하던 모 연구기관 직원으로부터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세 부처의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부고 있노라면, 각 부처의 상황이 한눈에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얘기는 프레젠테이션에서 다른 두 부처가 도저히 산자부를 따라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부처 안에서 각 산업을 맡고 있는 팀들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니 PT 준비나 내용 면에서 매우 준비가 잘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죠. 산자부에 비해 과기부나 정통부의 PT는 비교적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그나마 과기부는 국가 과학기술  개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데서 과기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논리는 잘 서 있는 반면, 정통부는 논리도 근거도 부족했다. ‘원래 우리가 전담부처였으니 우리가 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걸 알아서 결정하고 집행하던, 누군가와 경쟁해 가면서 사업의 주도권을 가지고 오기 위한 노력에 힘을 쏟아 본 적이 없는, 체질의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논평했습니다. 정통부 관계자를 지원하기 위해 차출된 정통부 산하기관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실망감이 적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ICT 전담부처 부활, 지난날의 평가가 먼저다

ICT 산업을 전담해 다시금 미래의 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에 다가서는 데 필요한 계획과 전략을 세우는 일을 맡을 정부 부처는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ICT 산업을 부흥시키는 것이 범국가적인 중대사라고 해서 이전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문화 콘텐츠를 수출하는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만드는 일에 물론 IT 기술이 필요하겠지만, 그 사업의 핵심은 ‘문화’이지 ‘IT’가 아닙니다. 당연히 문화를 잘 아는 부처가 중심이 되고, IT는 그것의 한 측면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될 것입니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보다 사물놀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둘러앉아 협연을 해야 훨씬 품격 있고, 신명나는 공연이 되지 않겠습니까?


최근 들어, ICT 전담 부처 부활에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 가운데 “과거에 이런 점은 잘 못 되었고, 이런 점은 계승해서 전담 부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반성은커녕, 과거를 제대로 평가나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대선을 빌미로 확실히 밥그릇을 챙기겠다 의도는 없을까? 과거의 영화를 되찾고 싶은 걸까?’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됩니다.


전담부처 보다 중요한 ‘ICT 시장’ 그리고 ‘종사자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산업 현장의 ICT 기업들이 전담 부처의 부활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ICT 산업이 이만큼 어려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생태계가 파괴될 조짐이 여기저기서 보일 만큼 시장이 어려운 지경에서 현장의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아젠다가 아니라, 생존입니다. 그런데도, ICT 전담 부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자리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ICT 업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현장의 기업들은 ICT 산업이 위기에 빠진 원인을 극심한 경기 침체와 4대강 사업으로 꼽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경기 침체 시 그나마 ICT 시장을 떠받쳐 왔던 공공 부문의 물량도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관한 비판은 없이 그저 “전담 부처를 부활시키라”고만 외친다면 그 진정성을 믿어주기 어렵습니다. 전담 부처가 생긴다고 저절로 시장이 좋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통위는 ICT 산업과 방송 산업을 아우르는 기관이었지만, 구속된 전임 방통위원장이 방통대군, 넘버3로 불릴 만큼 힘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 배경을 등에 업고도 ICT 산업이 제대로 대접받거나, 지원받지 못한 이유가 ‘정부가 ICT 산업에 관심이 없어서’라는 오직 한 가지 이유뿐일까요? ICT 전담 부처 설립 보다 ICT 시장과 그 시장의 종사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우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콘트롤타워 보다 조정자의 역할을 기대하며

사실 선진국들 가운데 IT 주무 부처를 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IT가 사회 곳곳에, 생활 곳곳에 스며든 상황에서 특정 부처가 IT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맡는 것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군요. ‘ICT 주무 부처’가 아니라 ‘ICT 콘트롤 타워’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콘트롤 타워’라는 말 속에 ‘ICT와 관련된 모든 것을 관장한다’는 전근대적인 사고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정부 조직 안에서 ICT 주무 부처의 역할은 콘트롤 타워가 아니라 PM이 돼야 할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은 모든 것을 다 결정하고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도록 팀 내부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조정하는 역할이겠죠. 기획도, 디자인도, 개발도, 안정화도 혼자서 다 하겠다고 나서는 PM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복투자가 되지 않도록 하고, 부처 간에 쓸 데 없는 힘겨루기를 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 중요할 것입니다. 


지금의 분위기를 보면, 다음 정권이 어느 쪽이 되든 ICT 전담 부처가 부활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ICT 산업을 왜 부흥시켜야 하는 거냐?’라거나, ‘시장 규모만 키우면 되는 거 아니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 다행입니다. 애플과 구글 같은 ICT 기업들의 성장세나 수익성을 보면 ICT 산업의 중요성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할 없을 정도입니다.


이 중요한 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이제부터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아서 하는 부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부 부처가 힘을 모아서 한걸음 진전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좋은 구조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 그 일에 꼭 전지전능한 ‘콘트롤 타워’가 필요한 지는 심사숙고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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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