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석과 전망

인터넷 속도는 광속전진, 인터넷 인권은 '뒤로 돌앗!'

[사람중심] 내년이 되면 지금의 100Mbps 인터넷 보다 무려 100배가 빠른 인터넷 서비스가 나온다고 합니다. 


ETRI는 25일, 과천 지식경제부 청사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1Gbps 인터넷 시연회를 열었습니다. 초당 10기가비트로 콘텐츠를 전송하는 기술의 결과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3.2GB HD 영화 한편을 1초만에 내려받는 시연을 펼쳐보였다고 하니까요. 현재의 광랜, 즉 100Mbps 인터넷에 연결된 PC에서는 몇 분 정도 걸렸다고 하니 그 속도 차이가 실감이 납니다.


광랜의 100배, 네트워크 효율/전송거리 혁신

1Gbps 인터넷은 우리나라만 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글은 최근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1Gbps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몇몇 IT 기업 및 대학들과 손잡고 Gbps급 속도를 제공하는 '수퍼 WiFi'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죠. 그런데, 구글의 1Gbps 인터넷 서비스는 실제 서비스 품질이 이론상의 수치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 ETRI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광네트워크는 통신 케이블 안의 광섬유에서 빛 하나를 쏘아낸 뒤 여러 가입자에게 이를 나눠주는 방식을 씁니다. 이렇게 하면 만족스러운 속도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구글은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정보를 보낼 때 패킷을 쪼개서 시차를 두고 쏘아 보내는 방법을 이용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방식 역시 제 속도가 나오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신호 도달 거리가 최대 20km밖에 되지 않아 전화국에서거리가 멀수록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단점이랍니다. ADSL로 인터넷을 하던 시절, 전화국에서 먼 가정에서는 인터넷 속도가 느리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ETRI는 여러 개의 빛을 동시에 쏘아 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이러한 단점을 극복했다고 합니다.한꺼번에 빛을 여러 개 쏘아 보내 가입자에게 1대1로 정보를 전송하는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좋은 기술을 개발해 낸 그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세계 최초의 통신사 CDN 연동...콘텐츠 서비스 '품질 UP'

초고속 인터넷 품질, 서비스 이용 품질 향상과 관련해 어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통신 3사가 CDN(Contents Delivery Networks)을 연동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CDN은 해당 통신사의 네트워크 주요 지점에 캐싱 서버를 구축해두고, 자주 사용하는 콘텐츠는 이 캐싱 서버에 저장해두는 기술입니다. 따라서,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할 때 콘텐츠를 원본 서버에서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가장 가까운 곳의 캐싱 서버에서 불러오게 됩니다. 당연히 서비스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이나 비디오, 음악 서비스 업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최근 들어서는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들의 이용이 빠르게 늘고 있죠. 


그런데 CDN은 통신사가 자체 망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적용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모든 인터넷 이용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기술은 아닙니다. 집에서 KT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즐겨 이용하는 게임회사의 서버는 LG유플러스 데이터센터에만 있다고 하면, 이 회사의 게임 서비스는 LG유플러스 망에서만 CDN 기술의 지원을 받게 됩니다. KT 초고속 인터넷 이용자는 서비스 속도 향상의 혜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게임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 업체들은 각 통신사 데이터센터마다 서버를 구축해 두고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지만, 통신 3사가 각자의 CDN을 연동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중소 콘텐츠 서비스 업체가 통신사마다 서버를 구축하는 비용 부담을 들이지 않고도 서비스 품질이 높아질 것입니다. CDN 연동 기술은 CDNi라고 해서 국제인터넷표준화기구(IETF)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도 기술표준화 작업을 시작했는데, 현재 시점에서 통신사들 간에 CDN 연동 테스트가 추진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라고 합니다.


속도는 '선두', 생산성 기여도는 '낙후'

역시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 강국입니다. ADSL 서비스가 시작된 직후 이것이 인터넷 이용 환경 측면에서 어떤 변화인지를 알지 못하다가 홍콩에 출장 갈 일이 있었습니다. 아시아, 호주 기자 대상의 세미나였는데, 연사가 "ADSL을 이용하는 사람 손들어보라"고 하자, 한국 기자들만 손을 들었고, 순식간에 행사장은 부러움의 탄성으로 뒤덮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로도 우리나라는 인터넷 접속 속도에서 만큼은 세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는 빠른 반면에 ICT(정보통신기술)를 실제 업무나 생활에 활용하는 데는 오히려 낙후되어 있다는 지적이 계속 있어 왔습니다. 우리가 늘상 접해오던 ‘초고속 인터넷 세계 1위’라는 통계 말고, 정말 주목해서 봐야 할 통계가 있습니다. 노키아지멘스가  2009년에 LECG(런던비즈니 스쿨 및 컨설팅 그룹)에 의뢰해 진행한 나라 별 ‘접속성 평가표(Connectivity Scorecard)’ 조사입니다. 이 조사는 기존에 다른 조사에서 볼 수 없었던 ‘유용한 접속(Useful Coonectivity)’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경제성장에 이바지하고 기업의 업무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는 ICT 기술 및 접속성을 측정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컨슈머 인프라스트럭처’에서만 1위에 올랐는데, 중요도가 가장 높은 ‘비즈니스 사용률과 기술 수준’, ‘비즈니스 인프라스트럭처’ 측면에서 최고 점수 국가의 절반에 못 미친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자정부 통신망은 최고 점수인데 반해 정부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그리고 서비스 투자 수준은 “놀랍도록 평균 수준”이라고 평가되었거나, ‘인구 100만명 당 안전성이 확보된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서버 수’가 전체 평균이 370대, 1위가 870대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달랑 22대로 ‘최하위’를 기록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몇 년 전의 것이기는 하지만,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인터넷 속도 최강국 = IT 강국'으로 받아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믿기 힘든 내용일 것입니다. 정부가 초고속 인터넷 구축을 대대적으로 추진.독려했고, 그렇게 해서 네트워크가 구축된 결과를 적극 홍보했기에 '인터넷 접속 속도'가 IT 선진황의 절대가치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측면이 강합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초고속 인터넷 최강국이지만, ICT 활용 측면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IT는 패션의 역할을 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고 하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얘기입니다.


인터넷 자유의 꾸준한 후퇴...한국은 '부분적 언론자유국가'

그런데, 어제(25일) 인터넷 최강국 코리아의 인터넷 활용과 관련해 또 한 가지 부끄러운 조사 내용이 발표됐습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자유가 크게 후퇴하고 있고, 절대 순위에서도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겁니다. 미국의 인권·언론감시단체인인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2012년 인터넷 자유’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47개 나라 가운데 공동 16위에 그쳤습니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인터넷상의 ▲접근 장애 ▲콘텐츠 제한 ▲사용자 권리 침해 등 3가지 항목을 조사했는데, 우리나라는 사용자 권리 침해 부분에서 지난해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특히 북한에 우호적이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유포하는 행위와 관련해 검열이 늘었다는군요. 우리와 함께 공동 16위에 오른 나라는 아프리카의 우간다인데, 이 나라가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권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는 프리덤하우스가 올해 상반기 발표한 '2011 언론자유 보고서'의 언론자유지수에서도 전세계 196개 나라 70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때문에 2010년까지 계속해서 '자유국(free)'으로 분류됐다가, 2011년에 처음으로 '부분적 언론자유국(partly free)'으로 강등됐었죠. 당시 보고서에서도 '사용자 권리 침해' 항목에서 2011년 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 강등의 주요 이유였는데, 1년 사이 사용자 권리 침해가 더욱 심혀졌다고 하니 씁쓸합니다.


현 정부나 여당이 IT 정책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IT 업계에서 공통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기간의 두 정부에서 일구어 낸 성과 가운데, IT가 대표 분야로 꼽히기 때문에 홀대한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1위' 같은 통계가 나올 때마다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날림 공사를 해놓고 외벽을 치장하는 데만 신경을 쓴 건축물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IT 강국을 자처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들이 이미 오래 전에 완비한 국가재난통신망을 아직도 구축하지 않고 있다거나, 원리를 가르치는 외국의 컴퓨터 과학 교육과 달리 인터넷 검색 및 문서파일 작성 같은 것만 가르치는 데서도 내실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흔히들 도로에 비유하곤 합니다. 도로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도로 주변의 여러 도시/시설들과 잘 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잘 만든 도로일 겁니다. 한계 속도 규정만 시속 200km까지 높아졌다고 해서 그것을 좋은 도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지난해 국내 휴대전화 제조 3사가 각자 미국의 스마트폰 속도 테스트 결과를 공개하며 ‘우리 스마트폰 속도가 세계 최고다!’고 경쟁적으로 홍보한 기억이 납니다. 당시 여러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면서 “애플의 아이폰은 이제 성능 면에서 일류 제품이 아니다”는 식의 비평을 곁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를 무색케 하는 딱 한마디의 댓글이 있었습니다. 

“달리기 빠르다고 머리 좋냐?”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