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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세종대왕을 기리는 인권상을 아십니까?

【사람중심】 한글 창제 566돌입니다.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 보다 높습니다. 저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는데, 1991년 갑자기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됐습니다. 공휴일이 너무 많아 경제발전에 장애가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죠(일하는 시간이 길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전근대적인 사고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국어국문학과만 10월 9일 수업을 없애고, 자체 한글날 기념행사와 백일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글은 전세계 학자들로부터 으뜸 문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은 대략 500개 정도의 소리만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달리, 한글은 24개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11만 172개라는 엄청난 소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현재 우리는 5~6천개 정도의 음절만 사용하고 있답니다.). 


표음문자인 한글은 여러 특성을 갖고 있는데, 브리태니커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① 한글은 한국어의 음소를 적는 데 가장 합리적인 체제를 갖고 있다. 한글은 음절을 닿소리와 홀소리로 나누고, 받침은 닿소리가 다시 쓰이게 함으로써 가장 경제적인 문자로 구성되어 있다. 

② 알타이어계 언어의 공통 특질인 모음조화를 잘 반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③ 보편적인 음성기호로 사용해도 충분할 만큼 조직적이며,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표음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④ 음절 구성의 원리가 간단하여 배우기가 쉬우며, 영어나 프랑스어처럼 자리에 따라 문자와 소리가 다른 경우가 거의 없다.



24개 글자로 모든 소리를 표현하는 글자

한글이 세계 학자들의 찬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24개의 글자만으로 음성학적인 변별요소를 가장 함축적으로 문자에 반영한 것뿐만 아니라, 문자의 구성요소 또한 매우 뛰어난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우수성은 한글이 외래어와 비교해 컴퓨터나 휴대전화에서 입력 작업을 할 때 월등히 편리하다는 점으로 증명이 됩니다.


실제로 해외에서 열리는 IT 국제 행사에 참가해 보면 한글의 우수성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똑같은 노트북PC를 쓰고 있는데도, 중국과 일본 기자들은 문서를 작성할 때 영어로 입력한 다음 그 소리에 맞는 한자나 히라가나를 찾아서 선택을 해줘야 한 글자를 입력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이 드는 한편으로 ‘한글이 정말 위대한 언어이구나!’하고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수백년 뒤에 발명된 다양한 전자기기들에서 입력을 할 때도 그 과학적인 문자구성 체계가 그대로 살아 있으니 말입니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한글 입력과 비교해 6배 이상 늦다고 하는군요.


출처 - 왼쪽 '이교수네 28 중국친구', 오른쪽 - 에이빙


전세계의 문자 가운데서 어느 한 시기에 만들어져 한꺼번에 전 국민에게 배포되어 사용되는 문자는 없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것이 600년 가까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그만큼 쉽고 똑똑한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여류작가 펄 벅은 “한국어는 전세계에서 가장 단순하고 훌륭한 글자”라고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2050년 세계 5대 언어가 될 한글

한글은 지난해 세계 13대 언어에 등극했는데, 전세계 7700만명이 쓰고 있습니다. 언어가 없는 부족이나 나라들이 한글을 보급해 교육의 효과를 높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요. 받침이 있는 한글의 필체가 지닌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도 늘어간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외국 사람들이 한국어가 크게 쓰여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한 의미가 담긴 글은 아니고 글자 모양을 보고 개인적인 취향에 맞게 고르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재미있는 기억이 있는데 언젠가 말레이시아 출장을 갔을 때 식당 종업원이 한글이 프린팅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교회이름이었던가 하는 것으로 기억나는데, 왜 그 옷을 입었냐고 물었더니 “한글을 아래위로 글씨가 붙어 있어서 예쁘다. 받침이 많은 글씨가 특히 인기가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짬뽕밥’, ‘볶음밥’, ‘돌솥밥’, ‘잡탕밥’ 같은 단어를 가르쳐 주었더니 엄청 좋아하더군요. ^^



하지만, 국내에서는 1998년 부터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오렌지를 ‘어린쥐’로 발음해야 좋은 인재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고, 이 때문에 3~4세 아이들의 혀를 수술하는 경우도 빈번한데, 이런 경우 우리말 발음이 매우 부정확해지는 부작용이 대두되고 있다 합니다. 혀 수술을 한 어린이들 중에는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껴 놀이방이나 유치원에서 되도록 말을 하지 않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우울증이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얼마 전에는 한글이 세계 5대 언어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습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무려 6912종의 언어가 있는데, 이 가운데 90%가 2050년까지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데이비드 해리슨이라는 언어학자는 100년 뒤 살아남을 10대 언어를 꼽았는데 러시아어·스페인어·아랍어·영어·중국어·프랑스어(이상 유엔 공용어)와 한국어·독일어·일본어·히브리어였습니다. 한글은 이 가운데서도 사용자 수 면에서 2050년 5대 언어가 될 것이라는군요. 이렇게 예상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최첨단 단순성(cutting-edge simplicity)’이라고 합니다.(참고 - 블로그 저무는 들녘으로 부는 바람)


디지털 시대에 더욱 빛나는 한글의 가치

최근 기사들을 보니 디지털 시대에 한글의 가치를 조명해 본 글들이 눈길을 끕니다. 국내에서 카카오톡으로 하루에 약 3억통의 메시지가 오가는데, 한글이 가진 특성 때문에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시간이 절약되는 효과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합니다. 헤럴드경제 기사를 보니 “3개의 모음(ㅣ, ㅡ, ㆍ)으로 20개가 넘는 자음, 모음을 모두 만들 수 있는 한글의 특징 때문에 자판 개발 시 일본어보다 28배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다”고 하네요.


특히 일본어나 중국어는 자동변환 기술이 포함돼야 하고, 방대한 양의 한자사전을 탑재해야 돼서 스마트폰용 키패드가 비쌀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글 키패드가 980원인데 반해, 일본어 키패드는 약 2만 8000원인 이유가 이것입니다. ‘알파벳을 문자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자동변환 방식이 없이 컴퓨터 자판으로 자국어 문자를 모드 구현할 수 있는 언어는 한글이 거의 유일하다’는군요.


1998년 외환위기 때 마이크로소프트가 부도위기에 처한 한글과컴퓨터를 인수하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여러 단체가 나서서 국민모금에 나서 한컴을 지켜냈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 한컴오피스는 국내시장 점유율이 18%입니다. 너무 낮다고 생각했는데, MS오피스가 미국 내 가격으로 국내 시장을 독점할 경우 추가로 연간 3739억원의 외화가 유출된다네요. 아래아한글이 있어서 MS가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한글날 없는 한컴 홈페이지

그런데 오늘 아침 한글과컴퓨터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오늘이 한글날임을 기억하는 어떤 글이나 이미지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내용의 글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꼭꼭 숨겨져 있어서 찾지 못한 것일까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더군요. 최초의 아래아한글(1.1판)이 나왔을 때 프로그램 디스크를 컴퓨터의 디스크드라이브에 넣으면 ‘한굴을 한글답게....’로 시작하는 글귀가 나왔던 것이 기억나서 더 아쉬웠습니다. 


포털 가운데서는 다음이 한글날 다음 로고를 만들어서 걸었습니다. 명절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그에 맞는 이미지를 대문에 걸었던 구글도 한글날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한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한글이 월드컵이나 올림픽 보다 중요할 텐데 말입니다.


한글창제 정신과 인터넷 통제

참, 세종대왕의 정신을 기리는 인권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유네스코가 세계 각국에서 문맹퇴치사업에 가장 공이 많은 단체·개인을 뽑아 매년 시상하는 문맹퇴치 공로상의 이름이 [세종대왕상(世宗大王賞, King Sejong Prize)]입니다. 1990년부터 매년 공로자를 뽑아 ‘문맹퇴치의 날’인 9월 8일에 수상을 합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만든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백성들이 글을 몰라 자신을 더 계발시키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겪거나, 억울한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뜻이 가장 컸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 즉 큰임금이라 부르는 것이라는 강의를 들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하지만, 글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고, 자신의 생각을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생겼음에도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손을 묶어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시간이 5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 듯합니다.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에서 보니, 당시의 고루한 양반들에게는 한글이 만들어져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게 되는 것이 큰 위기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인데, 지금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한글날을 공휴일로 다시 지정한다고 합니다. 566년 전,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어야 하고, 백성을 하늘같이 섬겨야 한다’는 소중한 가치들을 살리고자 한글을 만들었던 세종대왕의 그 정신도 함께 되돌아보는 한글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글이 세계 최고의 언어인 이유는 뛰어난 과학 원리와 함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이념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형식과 내용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기 때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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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