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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이동통신네트워크

LTE vs. 와이브로…이번이 마지막인가?

【사람중심】통신사들의 광고가 언제부터인가 4G를 전면에 내걸고 있습니다.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은 이달 들어 LTE 서비스를 시작했고, 여기에 맞서는 KT는 와이브로를 가지고 4G 대응을 하는 구도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언론들이 내놓는 4G 관련 기사도 점차 늘어나는 분위기입니다. 종합일간지들이 4G 기사를 본격 쏟아내기 시작하는 걸 보면, 이제 4G 시대가 도래하기는 했나 봅니다. 휴대전화 같은 모바일 단말에서 현재 집에서 쓰는 광랜과 같은 속도인 100Mbps 서비스를 이용하는 꿈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4G가 기사꺼리가 되면서 4세대 통신기술이 가져 올 서비스 경험의 변화나, 통신 산업의 생태계 변화, 통신사 간의 역학 관계 같은 것보다 더 인기를 끄는 주제가 LTE와 와이브로의 대결구도입니다. 적지 않은 신문들이 ‘와이브로와 LTE의 4G 전쟁이 시작됐다’는 테마로 특집·기획 기사를 내놓고 있습니다.

와이브로 vs. LTE는 우리 언론이 매우 즐겨 다뤄왔던 주제입니다. 그리고 그 논조는 대부분 ‘두 기술 모두 ITU가 꼽은 4G 표준의 후보 기술인데, 우리나가 개발을 주도한 와이브로가 한발 앞서 상용화됐고 다수의 레퍼런스도 확보했기 때문에 4G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4G 기사의 논조는 조금 바뀌었습니다. 와이브로와 LTE가 경쟁함으로써 4G 서비스 확산을 촉발시킬 것이라는 식입니다. 물론, 와이브로가 경쟁에서 이겨야 관련된 우리 기업들이 수출 등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도 빠지지 않습니다.

최근의 와이브로 vs. LTE 비교 기사를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언제까지 ‘와이브로와 LTE의 경쟁구도’를 테마로 보도할 것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와이브로에 가장 우호적인 국내에서도 이미 통신사들이 3G 다음 기술로 LTE를 선택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4G에 대비해 와이브로 즉 모바일 와이맥스를 선택한 나라가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와이브로를 선택한 나라들은 초고속 유선통신망이 제대로 깔려 있지 않은 나라들입니다. 2005~2006년 삼성전자의 4G 포럼에서 와이브로에 관심을 나타낸 나라들은 대부분 동남아시아, 남미, 중앙아시아, 동유럽 쪽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경제상황이 좋지 않거나, 국토가 넓거나, 밀림 지역이 많거나, 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들이죠.

이런 나라들에서는 초고속 유선통신망을 구축하는 것보다 와이브로를 구축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효용이 높습니다. 유선통신망 구축에서 땅을 파고 다시 덮는 건설 공사가 90~95%의 비용을 차지하는데다가, 무선 데이터 통신용으로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형 면에서 유선망 공사가 쉽지 않은 경우에도 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통신 기술·서비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는 유럽, 북미 등은 모두 LTE를 선택했습니다. GSM의 광범위한 가입자 기반이 규모의 경제를 이뤄 보다 높은 수익성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곧 LTE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힘이 됐습니다. GSM 대신 CDMA를 고수했던 미국, 중국, 일본의 통신사들도 모두 LTE로 돌아섰습니다.

와이브로가 무선 데이터 통신용 네트워크로는 LTE 보다 한발 앞서 뛰쳐 나갔고, 어느 정도 지분도 확보했지만, 규모의 경제라는 측면에서 볼 때 LTE를 넘어서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2009년에 해외에서 4세대 통신망으로 LTE를 선택하는 통신사들이 하나둘씩 생겨날 무렵에도 와이브로와 LTE를 비교해서 와이브로가 비교우위에 있다는 기사들이 쏟아진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기억나는 사건이 있습니다. 정부가 통신사들을 압박한 탓에 KT가 와이브로에 6,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당시 KT 관계자들은 “어차피 무선 데이터 통신용인데, WiFi로 가면 몇백억이면 될 것을 와이브로로 가면 돈은 돈대로 쓰면서 커버리지는 WiFi에 훨씬 못 미친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연말 즈음부터 중국 업체를 경계하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사는 KT의 와이브로 장비 공급업체 선정과 관련된 계획과 일정을 매우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KT가 공급업체를 복수로 선정할 계획인데, 삼성전자 외에 중국 업체가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중국 기업이 우리의 앞선 와이브로 구축·서비스 노하우를 익히게 되고, 해외에서 경쟁할 때 가격 덤핑을 하면 우리 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마디로 중국 기업에 나눠주지 말자는 논지였죠.

사실 이런 논조의 기사가 왜 나왔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후에 여러 신문들이 대동소이한 기사들을 써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는 전세계 통신사들이 4G 구축 계획을 속속 밝히던 때라 우리 통신사들의 계획이 기자들에게는 중요한 관심사였지만, 통신 3사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죽기살기로 와이브로만 밀어붙이는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당시 ‘LTE Korea’라는 세미나를 기획했다가, 통신사들이 ‘LTE’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세미나에 나가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해서 ‘4G Korea’로 바꾼 기억도 있습니다.

어쨌든, KT의 프로젝트와 관련해 중국기업 견제론이 많이 나오던 시점에 취재수첩을 썼습니다. ‘화웨이는 이미 세계 2위의 통신 기업이고, 2009년 4분기를 기준으로 와이맥스 레퍼런스·매출에서 삼성전자를 앞서 있는 기업이다. 한국에서 경험을 익혀 해외 시장에서 우리 기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논리는 잘못되었다. 만약 KT 프로젝트에서 삼성의 유력한 상대가 에릭슨이나, 시스코였다면 그 때는 어떤 논리를 들고 나왔겠는가?’ 하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쓴 뒤 여러 통의 e-메일을 받았습니다. 대부분 ‘기자 XX 똑 바로 알고 기사 써라’거나, ‘매국노 XX[’ 같은 제목이 붙은 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메일 중 상당수는 와이브로의 우수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1. 와이브로는 이미 상용화되었다.
2. 와이브로는 전화가 된다.
3. LTE는 4G가 아니다.

이 세 가지 이유로 LTE는 와이브로의 상대가 되지 않으며, 와이브로가 4G의 대세를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의 메일을 여러 차례 받다가 어느 날 답장을 보냈습니다.

1. HSPA는 이미 와이브로 보다 빠른 속도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2. 인터넷전화는 WiFi에서도 된다.
3. 와이브로도 4G는 아니다.
    
(4G의 후보 기술은 와이브로 에볼루션과 LTE Advanced)

이렇게 답장을 보낸 이유는 와이브로가 더 우수하냐, LTE가 더 우수하냐를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와이브로가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세 가지 논지가 와이브로가 더 뛰어남을 보여주는 증거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그 프로젝트는 삼성전자와 화웨이가 공동 수주했지만, 결국 화웨이는 장비 공급에 실패했습니다. 통신사가 요구한 특별한 스펙을 기일 안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언론에는 ‘화웨이 장비 결함’이라고까지 나왔지만, 벤더 쪽에서는 들러리만 세웠다며 격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기업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기술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앞으로 통신 환경이 어떻게 발전해야 될지 논의하는 것까지 위축시킨 정책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국내에서 와이브로의 수요를 조금 더 만드는 것 외에, 와이브로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도 의문입니다.

와이브로 기반의 국가재난망 추진이나, 와이브로 MVNO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와이브로 기반의 국가재난망 구축과 관련해서는 국책연구기관에서 ‘와이브로 기반으로 재난망에 필요한 기능을 개발하려면 5년이 걸린다’고 했음에도 ‘열심히 하면 개발 기간을 앞당길 수 있지 않겠나’는 의지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재해는 언제 올지 모르는 법인데,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이미 개발돼 있는 다른 기술을 제쳐두어야 하는 것일까요?

KT가 올해 하반기~내년 초 LTE 서비스에 가세하면 와이브로 vs. LTE라는 기사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모든 통신사가 4G 기술로 와이브로를 선택하지 않고, 삼성전자가 통신 3사 모두에 와이브로가 아니라, LTE를 공급한 상황에서 정부는 뭐라고 얘기할까요?

그제서야 “원래 와이브로는 해외의 특정한 시장에서 제 나름의 경쟁력이 있는 기술이다. LTE 시대에 와이브로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열심히 고민해 왔다”는 얘기라도 듣게 될까요? 군색한 변명을 하게 된다면, 그 책임도 정부에게 있을 겁니다.

통신사 4G 인프라 구축에서 외면당한 와이브로를 위해 정부는 무언가 또 새로운 먹을거리를 만들어 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또 다시 정책을 쓰게 된다면, 그것이 와이브로만을 위한 먹을거리는 아니길 바랍니다. 와이브로나 LTE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향상된 통신 서비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인프라가 되는 것이 역할이고, 목적이니까 말입니다.

(와이브로나 LTE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거기에 들어간 비용은 반드시 소비자가 보다 좋은 조건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에 영향을 미치게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