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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WiFi

무선랜, 새 아키텍처 논쟁 불붙을까?

【사람중심】 스마트폰·태블릿 같은 모바일 인터넷 기기의 보급이 급속도로 빨라지면서 무선랜(WiFi)의 수요도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무선랜 기술의 새로운 아키텍처와 관련된 논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됩니다.

최근 이와 관련해 모토로라솔루션즈와 지러스의 기술 발표가 있었는데, 기존 무선랜 강자들도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선 국내 시장에서 무선랜 아키텍처와 관련한 논쟁이 벌어진 과거를 간단히 되짚어 보겠습니다.


무선랜 기술 변화의 추억

국내 시장에서 기존의 무선랜과 완전히 다른 컨셉의 장비를 처음 소개한 것은 에어브로드밴드(Air broadband)였습니다. 2003년 국내에 지사를 만든 에어브로드밴드는 무선랜 액세스 포인트(AP) 없이 중앙의 로밍 전용 장비만 보유한 벤더였습니다.

당시는 아직 다른 무선랜 공급업체들이 로밍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때였는데, 에어브로드밴드는 AP들 사이에 로밍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솔루션으로 차별화를 했습니다. 각 벤더들이 자사 AP들 간에만 연동을 지원하던 것과 달리, 이기종 AP들의 로밍이 가능한데다가, 로밍을 통해 대규모 무선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즈음에 에어스페이스(Airespace)가 한국에 진출했습니다. 이 회사는 이른바 ‘중앙집중형 무선랜’이라고 부르는 콘트롤러(당시는 콘트롤러 보다 무선랜 스위치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기반의 무선랜 제품을 SMB 시장에 공급하고, 노텔·쓰리콤 등에도 OEM으로 장비를 공급해 북미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지사 없이 총판이 한국 내 영업을 해왔던 에어스페이스는 2004년, 전년도 매출의 수십 배에 이르는 금액에 시스코에 인수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04년에는 아루바(Aruba)도 국내에 총판을 만들었는데, 2005년에 지사가 정식 설립되면서부터 콘트롤러 기반 무선랜 아키텍처의 강점을 국내에 적극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루바는 강력한 성능을 가진 중앙의 콘트롤러가 트래픽 처리뿐만 아니라, 인증·로밍 등의 역할도 함으로써 단독형 AP들을 연결하는 기존 방식과 비교해 성능과 확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고, 이후 국내에서도 콘트롤러 기반의 중앙집중식 무선랜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중앙집중식 무선랜이 레퍼런스 사이트를 만들어 내기 시작해 ‘콘트롤러라는 별도의 장비를 놓고 AP들을 연결하는 방식’에 더 이상 거부감이 없어질 무렵인 2007년부터 메루네트웍스, 트라페즈네트웍스 같은 신흥 무선랜 벤더들이 국내 시장에 속속 지사를 만들었고, 심볼을 인수한 모토로라도 국내 영업을 본격화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게 됐습니다.

이 가운데 메루(Meru)네트웍스는 ‘싱글 채널 아키텍처라는 것을 들고 나왔는데, 무선랜의 주파수를 단일 채널로 만들어 복잡한 무선네트워크 디자인을 쉽게 해결해 준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회사는 본사 연구소의 핵심 인물을 비롯해 한국인 기술자가 많다는 점으로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분산형 아키텍처를 주창한 콜루브리스

이 와중에, 2007년 1월 콜루브리스(Colubris)네트웍스라는 이름의 무선랜 업체가 한국에 지사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는 당시에 유럽에서 주로 고속열차나 공항, 지하철의 무선인터넷 접속 용도로 장비를 공급하고 있었는데, 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나 홍콩의 지하철 프로젝트를 수주했습니다. 이 때문에 경쟁사들은 “공항·철도에나 국한돼 영업을 하는 벤더”로 분류하곤 했습니다.

콜루브리스는 국내 진출 직후부터 무선랜의 세대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중앙의 콘트롤러가 모든 트래픽을 처리하던 중앙집중식 무선랜을 낡은 방식이라고 주장하며, ‘분산형 무선랜’을 표방하고 나선 것입니다. 데이터 트래픽 처리는 AP에서 하고, 콘트롤러는 인증, 암호화 같은 특별한 작업만 수행하는 것이 분산형 무선랜의 특징이었습니다.

콜루브리스는 “AP의 모든 트래픽이 콘트롤러에 집중되면 당연히 콘트롤러의 부하→유선네트워크의 부하로 이어진다”면서, “기업의 무선랜이 802.11n으로 업그레이드되면 개별 AP에서 올라오는 트래픽이 몇 배나 늘어나기 때문에 전체 네트워크에 큰 문제가 생길 위험이 크다. 분산형으로 가야 이런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기업이나 대학에서 무선랜 사용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런 주장은 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트라페즈도 분산형 무선랜이라는 데 마케팅의 초점을 맞추는 등 새로운 아키텍처를 강조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확산되기 시작했죠.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802.11n 기술의 표준화가 완료되지 않아 대다수 기업들이 새 기술 도입을 검토만 하는 단계였기에 무선랜이 유선랜에 과부하를 일으키는 사례가 거의 없었고, 무선랜 벤더들이 콘트롤러 용량을 계속 확대했기에 ‘분산형 무선랜’은 지엽적인 주장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다시 불붙는 분산 아키텍처, 모토로라와 지러스

그런데, 올해 들어 분산형 무선랜이 다시금 얘깃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모토로라와 지러스가 분산형 무선랜 기술을 국내에 발표하고 나선 것입니다.

 * 모토로라 *

우선 모토로라는 ‘WiNG 5’ 무선랜 아키텍처를 발표했는데, ‘네트워크 지능 및 서비스를 네트워크 접점에 분산시킴으로써 과거 중앙집중 무선랜 아키텍처에서 보인 트래픽 집중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AP에 부여된 지능이 최적의 경로로 트래픽을 직접 전달하기 때문에 콘트롤러에 트래픽 병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모토로라 ‘WiNG 5’의 핵심은 네트워크 운영센터에서 전국 또는 전세계에 설치된 수천 개의 AP를 통합 관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선네트워크 구조가 이렇게 바뀌면 모바일 환경에서도 사용자들에게 향상된 품질의 음성·영상·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무선네트워크 인프라를 확장·진화시킬 때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체 망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네트워크가 설계되어 있으니, 하나의 콘트롤러가 매우 많은 양의 AP를 관리하는 것이 가능한데, 콘트롤러가 AP 수천 개를 관리하게 되면 AP가 추가될 때 무선랜 설계나, 유선망의 VLAN을 재구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무선랜 구축·확장에서 신속성이 부여되는 효과도 있겠지요.

또, 무선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은 물론, 업무의 모빌리티 구현에서 TCO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지러스 *

우리나라에서 매우 생소한 이름인 지러스(Xirrus)는 분산형 아키텍처를 강조하는 데 있어 좀 더 적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러스 무선랜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무선랜 AP와 콘트롤러를 결합했다는 것입니다. ‘어레이’라고 부르는 이 장비는 CPU·메모리·플래시메모리를 가지고 있으며,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에 QoS·보안·암호화 기능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의 어레이가 전방위를 커버하는 여러 개의 안테나(4/8/16개 중 선택)를 갖고 있는데, 일반적인 AP 4개와 같은 규모라고 보면 됩니다.

장비를 이처럼 디자인한 것은 무선랜의 성능 안정성과 신호도달 거리는 향상시키면서 네트워크 설계는 단순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신호 세기는 보통 무선랜 AP의 2배 이상, 신호 도달 거리는 4배에 이르며, 파워 유저 지원도 보통의 AP가 40명 정도인데 반해 최대 320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지러스 어레이 장비는 트래픽을 유선 네트워크로 올려 보내지 않고, 직접 처리합니다. 802.11n이 보편화되면서 수백Mbps 대역폭이 중앙의 콘트롤러로 몰려 유선 네트워크에 부담을 주는 위험성을 제거한 것입니다. 기존의 무선랜은 콘트롤러 하나가 고장나면 전체 무선랜에 영향을 미치지만, 지러스 무선랜은 어레이 하나가 고장 나도 다른 어레이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지러스 어레이는 대당 장비 가격은 비싸지만, 동일한 규모의 무선랜을 구축하는 비용은 기존 무선랜보다 크게 높지 않은 수준입니다. 대신, 고성능의 무선랜을 구축할 수 있고, 장비 대수가 60% 줄어들기 때문에 설치 비용, 케이블 비용 등이 60%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장비 수가 적은 만큼 관리도 쉬워집니다.

지러스 무선랜은 어레이 장비의 특성 때문에 동시에 많은 사용자가 몰리는 대규모 컨퍼런스홀이나, 대학 강당 등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이미 대학 등에 공급이 됐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무선랜과 비교해 워낙 생소한 방식이라, 인식의 틀을 깨는 문제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반기나 내년 초에는 보다 작은 어레이 장비도 출시해 제품군을 다양화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차세대 아키텍처 논쟁, 기술 경쟁 촉발시킬까?

분산형 무선랜을 가장 먼저 들고 나왔던 콜루브리스는 HP에 인수되면서 기술 개발 및 영업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최근 분위기를 보면 HP의 네트워크 정책은 기존 쓰리콤 라인업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입니다. 업계에서는 HP가 콜루브리스 보다는 쓰리콤 무선랜 제품을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모토로와 콜루브리스가 분산형 무선랜 시장을 주도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두 벤더는 시스코, 아루바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성능 테스트 등을 적극 제안해 진짜 실력을 확인시키는 데 주력한다는 입장입니다. 또, 마케팅 측면에서도 ‘새로운 아키텍처와 낡은 아키텍처의 경쟁’으로 무선랜 기술의 세대 논쟁을 촉발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토로라는 국내에 무선네트워크를 전담하는 부서가 만들어졌고, 사업 책임자도 선임돼 어느 때 보다 의욕이 높습니다. 이미 다양한 레퍼런스 사이트를 보유했고, 서비스나 마케팅 측면에서 회사 차원의 지원도 기대됩니다. 지러스는 워낙에 독특한 방식이어서 일단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고, 고객이 여러 무선랜 제품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테스트킷을 갖춰놓고 원하는 고객에게 임대할 만큼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톨리그룹과 함께 국내 모 기업 사이트에서 실시한 성능 테스트 결과도 적극 홍보 중입니다.

무선랜 시장에 새로운 세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두 기업이 기존 강자들의 틈바구니에서 과연 아키텍처의 장점을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까요? 이들의 도전이 가격 경쟁 중심의 국내 시장에 기술 경쟁을 촉발시켜 국내 무선랜 시장을 또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