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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WiFi

대기업, FMC 그리고 무선랜

【사람중심】 삼성전자와 LG-에릭슨 같은 대기업 계열사들이 직접 무선랜 장비를 개발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들 기업이 무선랜 장비를 직접 개발해 독자 브랜드로 시장에 공급하는 것은 적어도 국내 시장에서만큼은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에 무선랜 장비를 보유한 네트워크 전문업체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와 LG-에릭슨은 국내에 다수의 계열사와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그룹 협력업체들의 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국내외 무선랜 전문업체들 입장에서는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삼성전자·LG-에릭슨, 무선랜 개발 숨고르기

과연 삼성전자(정확히 말하면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와 LG-에릭슨이 자체 브랜드 무선랜을 개발할 것이냐와 결론부터 내리자면 두 회사 모두 의지를 갖고 있으나, 현재는 숨고르기를 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무선랜 AP(액세스 포인트)는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 1~2년 사이 무선랜 콘트롤러 개발에도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현재는 무선랜 콘트롤러 개발이 중단된 상태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개발하려 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일정 수준의 무선랜 콘트롤러를 개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개발을 한다 해도 국내용인 상황에서 과연 투자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보면, 쉽게 결정하기가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무선랜 콘트롤러 개발을 포기했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는 점을 들어, 여전히 개발에 재도전할 여지는 있다고 보는 분위기입니다.

LG-에릭슨은 자체 브랜드 무선랜 확보에 보다 적극성을 보여 왔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LG-에릭슨 측은 “외산 벤더로부터 OEM으로 무선랜 장비를 공급받아 국내에 공급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회사 로고만 붙여서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기능이나 성능을 벤더 측에서 수용해 LG-에릭슨 브랜드로 공급하는 방식이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고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KT FMC사업 부진, PBX 벤더의 딜레마

그렇다면, 왜 삼성전자와 LG-에릭슨의 무선랜 출시 여부가 갑자기 관심을 끌게 된 것일까요? 통신사의 FMC 사업에서부터 출발해 보면 그 배경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KT와 SK텔레콤은 몇 년 전부터 FMC 사업에 열의를 보여 왔지만,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를 무선네트워크 구간으로 확장하고, 대규모 무선랜을 구축하는 작업은 난이도가 높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탓에 예상만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국내 기업용 전화 시장의 절대 강자인 KT의 FMC 비즈니스가 활성화되지 않는 문제는 삼성전자와 LG-에릭슨의 IP PBX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통신사 FMC 서비스 확산이 포화 상태에 이른 IP PBX 사업에 돌파구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했던 IP PBX 공급업체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겠죠.

IP PBX 업계에서는 IP PBX 수요가 사실상 포화 상태인데, 기업이 FMC를 추진하게 되면 IP PBX 교체 및 업그레이드 수요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통신사의 FMC 사업이 부진해 IP PBX 매출에 별다른 효과가 없자, 지난해부터 모 대기업이 “IP PBX 벤더가 토털 솔루션을 구성해서 FMC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에 이르렀습니다.


PBX 벤더의 FMC 전략, ‘토털 솔루션’

FMC 시장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의 FMC 비즈니스가 빨리 성장하지 않은 문제는 대기업의 IP PBX 사업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다 보니 IP PBX 벤더 쪽에서 직접 토털 솔루션으로 FMC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고, 이것이 삼성전, LG-에릭슨 같은 IP PBX 공급 업체가 각각 사업을 추진하는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IP PBX 공급업체들의 이 같은 제안은 통신사와 벤더 모두에게 나쁠 것이 없는 방안입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벤더들이 자신들의 매출을 늘리기 위해 FMC 비즈니스를 확장하면 인터넷전화와 이동전화 및 전용회선 매출이 따라 오게 되니 마다할 리가 없고, 벤더 입장에서는 통신사에 장비만 제공하며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영업에 나서는 것이 결과를 빨리 손에 쥘 수 있으니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기업 계열사인 벤더들은 적지 않은 그룹 계열사와 협력업체가 있고, 그 밖에 이미 많은 PBX 고객이 확보돼 있으니 FMC를 매개로 기존 고객의 교환기를 업그레이드하는 사업 기회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 휴대전화도 공급

‘FMC 토털 솔루션’과 관련된 의지는 특히 삼성전자 측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는 PBX, 와이브로 장비, 무선 IP폰, 보안 스위치, 셋톱박스/케이블모뎀 등을 공급하는 사업부입니다. 그런데 와이브로와 보안 스위치는 최근 매출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셋톱박스/케이블모뎀은 디지털미디어 사업부로 이관됐습니다.

결국 제대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은 PBX 정도인데, IP PBX 시장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PBX의 특성상 한번 공급되면 5년 이상 사용하는 특성상 교체 주기도 빠르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 입장에서는 특별한 매출 성장의 계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FMC 토털 솔루션 공급에 적극성을 보이는 이유라고 합니다. FMC의 핵심 요소인 IP PBX와 휴대전화를 보유한 상황에서 무선랜만 확보하면 자체 브랜드로 엔드-투-엔드 솔루션을 공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특히 최근에 일어난 변화는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 입장에서 FMC에 더욱 열의를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휴대전화 사업은 삼성전자 무선 사업부가 해오고 있었는데, 아주 최근에 네트워크 사업부도 휴대전화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국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이 절대적인 상황이고, PBX 시장에서도 막강한 점유율을 갖고 있으니 호기를 만난 셈입니다.

그런데 네트워크 사업부는 스마트폰을 일반 사용자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기업용 즉 FMC 사업용으로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앞서 말한 것처럼 토털 솔루션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데, 무선랜 콘트롤러는 마지막 남은 퍼즐입니다.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는 FMC용 모바일 UC 솔루션의 경우, 과거에는 삼성 SDS가 개발한 ‘모바일 데스크’를 채택했지만, 지금은 자체 개발한 솔루션을 공급합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네트워크 사업부의 메인 비즈니스인 IP PBX가 들어간 곳이 FMC 영업의 타겟이다. 경쟁사 교환기가 들어간 사이트에는 흥미가 없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자사 PBX가 구축된 사이트에는 무선랜-단말-UC까지 묶어 토털 솔루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자사 PBX에 갤럭시 시리즈가 묶이는 곳에 영업을 집중한다는 것이죠.


LG-에릭슨 약점은 단말, 무선랜 필요성 더 클 수도

반면, LG-에릭슨 입장에서 FMC 사업의 딜레마는 단말이 될 것입니다. LG전자의 스마트폰 라인업이 다양해지고, 갤럭시S 정도로 지명도가 올라오지 않으면 토털 솔루션 비즈니스를 마음먹은 대로 전개하는데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체 무선랜을 갖추는 문제는 더욱 중요할 수 있습니다. PBX-무선랜-UC 솔루션에 유선 스위치까지 모든 인프라·솔루션은 자체 브랜드로 확보가 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특히 LG-에릭슨은 UC 사업에서는 삼성전자 보다 강점을 보여 왔습니다. 따라서 무선랜만 확보되면 “전체 인프라는 토털 솔루션으로 공급한다. 단말은 시중에 나와 있는 다양한 스마트폰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하라”는 전략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 PBX 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두 기업이 무선랜까지 자체 브랜드를 보유하게 되면 IP PBX-UC 솔루션-무선랜-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엔드-투-엔드 솔루션을 갖추게 되어 위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무선랜 벤더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시스코, HP, 모토로라, 아루바 같은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기업이 마음 먹고 투자에 나선다면 기간을 단축시킬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대기업이 무선랜을 개발해 해외 시장에 적극 뛰어들 것은 아니라고 보면, 투자를 선뜻 결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어찌 됐든, 대기업의 무선랜 개발은 지금 당장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 기업이 국내 기업용 통신 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기업용 무선랜 시장에서는 계속해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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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