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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IT 생태계 키워드는 수평? 스마트?

【사람중심】 ICT 생태계의 키워드는 이제 ‘스마트(smart)’다!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시장의 생태계가 수직적 구조에서 융합적 구조로, 이제는 스마트한 구조로 변모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5일, 스마트폰 이후의 글로벌 ICT 생태계를 다룬 프리미엄 리포트 ‘ICT 생태계의 현황과 발전전망(통신정책연구실 주재욱 부연구위원)’을 내놓았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스마트폰의 성공에 힘입은 모바일 혁명 이후 전세계 ICT 시장의 구조 변화와 전세계 사업자들의 시장 전략 및 향후 전망을 분석한 것입니다. 또, 새로운 ICT 시장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다양한 부문에서 전문성을 갖춘 사업자들이 수평적으로 협력해 혁신을 창출하는 ICT 생태계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이전의 통신 시장은 네트워크 설비를 보유한 통신사업자가 수직계열화된 공급 구조로 음성통화 및 SMS 중심의 통신 서비스를 제공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기술의 발전과 성공에 힘입어 모바일 환경에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및 디지털 콘텐츠 중심의 서비스로 변모하면서, 콘텐츠·단말 플레이어들이 영향력을 넓혀가는 수평적 구조로 변모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바일의 확산은 양질의 콘텐츠를 더 많이 요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콘텐츠 제공자에게 보다 많은 이윤창출 기회를 제공했으며, 네트워크 사업자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애플 앱스토어의 성공으로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과거의 수직계열화 모델에 비해 효율적이라는 점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모바일 ICT 시장에서는 ‘지배력 분산’과 ‘수평화’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ICT 생태계를 구성하는 주 요소는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터미널입니다. 이들 간의 수평적 협력은 혁신을 가져오게 되고, 그 혁신이 ICT 발전의 핵심이라고 이번 보고서는 강조했습니다.

사실 ‘수평적 협력’은 당연히 강조되어야 할 가치이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서비스 시장에서 이러한 점이 강조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네트워크 중립성이라든지, IPTV 정책과 같은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거대 통신사 중심으로 정책이 수립돼 있기 때문입니다.


BT의 회생을 이끌어 낸 생태계의 변화

영국의 경우 수십억 달러의 부채와 서비스 정체 속에서 허덕이던 BT가 회생할 수 있게 된 것은 영국 정부가 네트워크 중립성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사업분야별로 계열사를 분리하고, 계열사와 고객사에게 똑같은 조건으로 네트워크를 제공하게 되면서 BT는 단순히 회선을 파는 것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BT는 멀티 서비스 플랫폼인 IMS(IP Multimedia Subsystems)를 도입하고, 웹에 API·SDK 등을 공개해 수많은 외부 개발자, 콘텐츠 제공업체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BT가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전화, IPTV 등의 기본 서비스 가격을 크게 인하하면서도 강력한 킬러 콘텐츠를 확보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네트워크를 쥐고 흔들며 수직적 구조의 가장 높은 곳에 군림할 때는 불가능해 보이던 변화였죠.

BT 출신의 모 인사는 “영국 정부의 정책이 개혁되기 전까지 BT는 오로지 ‘라이센스’ 하나만 가지고 수십년 간 기득권을 휘둘러왔다. 그것이 결국 BT에게 독이 됐다”면서, “한국의 통신 시장이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면서 발전해 나가려면 정부의 통신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통신사만 싸고돌아서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KISDI 보고서에서 ‘수평’에 이어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는 변화로 지목한 것이 ‘스마트’입니다. 수평적 생태계의 특성이 ‘다른 산업과의 연계’이라면, 스마트 생태계는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T(터미널)의 ‘유기적 협력’이 특성입니다.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화학적으로 융합이 되는 단계인 것입니다.

단말 공급업체는 단말만 공급하고, 콘텐츠 사업자는 콘텐츠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플레이어들이 다른 분야와의 유기적 결합을 염두에 두고 활동을 해나가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OS를 가진 구글이 단말 사업자들과, 애플이 통신사들과 적극 제휴하는 모습이 그런 예입니다.


혁신의 출발은 ‘수평적 관계’

아이폰을 가장 처음 공급하기 시작한 미국 AT&T는 애플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 IMS 인프라를 운영하고, 또 업그레이드시켜 나갔다고 합니다. 통신사의 비즈니스 경쟁력이 ‘네트워크’에서 ‘콘텐츠’로 넘어가고 있는데, 콘텐츠의 측면에서 애플이 훨씬 많은 경험과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애플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힘을 빌린 것이죠. 이것은 단순한 수평적 결합을 넘어 각 분야의 플레이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통신사나 단말 제조사가 워낙 막강한 힘을 갖고 있어서 수평적 생태계, 스마트 생태계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단말이나 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던 이유로 오랜 기간 검증 아닌 검증을 거쳐야 하고, 외면당하는 예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KISDI 보고서가 제시한 ‘우리나라의 ICT 산업은 ▲생태계의 수평화 ▲경쟁 우위 부문의 주도권 강화 ▲(장기적 관점에서의) 취약 부문 육성을 통한 균형적 생태계 조성 등 세 가지 차원에서의 전략적 포지셔닝을 요구받고 있다’는 대목은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KISDI 보고서가 강조한 사항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첫째, 생태계의 수평화는 혁신을 위한 환경 조성에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이를 위해서는 지배적 대형 사업자와 소형 협력사 간의 고질적인 불공정거래의 관행을 개선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다.

둘째, 우리나라의 단말기 제조업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ICT 핵심 부품 산업의 세계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비교우위에 있다 이러한 하드웨어의 경쟁력은 운영체제 플랫폼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해외 글로벌 사업자에 대하여 강력한 교섭력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소프트웨어 부문이 취약한 우리나라 ICT의 현실을 감안할 때 경쟁 우위 부문의 주도권 강화를 위해 하드웨어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와 협력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비즈니스 차원에서 최선의 선택이다.

셋째, 소프트웨어 부문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생태계 균형 발전은 향후 ICT 시장에서 소프트웨어 부문의 중요성과 성장가능성으로 미루어 보아 장기적 관점에서 반드시 중점적으로 간주해야 할 요소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부문 기술경쟁력 및 시장 규모가 글로벌 시장에서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이 세 가지 아젠다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이 첫 번째로 강조된 ‘지배적 사업자와 소형 협력사 간의 고질절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입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려는 노력이 결합될 때 혁신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의 눈치를 보고, 힘이 센 쪽이 무얼 원하는지 파악해서 비위를 맞춰가는 협력 관계는 혁신이나 진보를 위한 관계가 아닙니다. 군대와 같은 상명하달, 절대복종의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지언정 혁신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대기업이나 통신사하고 같이 일하면 고생만 하고 돈은 벌기 힘들다’, ‘기술이나 뺏기지 않으면 다행이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뭔가 주목받는 분야가 있고, 조금이라도 돈이 된다 싶으면 거대 사업자가 직접 그 시장에 뛰어드는 구조는 왜 개선되지 않는 걸까요?


수평적이고 스마트한 생태계…기업내부에서 시작하자

높고 낮음을 구분하지 않는 수평적 관계,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유기적인 결합이 이루어지는 스마트한 관계는 조직 간의 관계나 동료 간의 관계에서 시너지가 발휘되도록 하는 가장 큰 힘일 것입니다.

몇 달 전 모 TV프로그램에서 삼성전자가 한때 애플을 따라잡고자 수백명의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이루어진 조직을 만들고, 수천억원을 들여 혁신 프로젝트를 했던 사례가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이 조직의 프로젝트는 모두 실패로 끝났는데 그 이유가 바로 조직의 구조에 있었습니다.

당시 이 팀에 몸 담았던 개발자들의 얘기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아이템은 대부분 채택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매년 자신의 실적을 평가받아야 재계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임원들이 각 팀을 맡고 있다 보니, 예측가능한 것만을 시도하게 되고 ‘디자인 몇 개, 애플리케이션 몇 개를 만들었다’하는 수치에만 매몰돼 있었다는 겁니다.

1년 여 동안 이 조직에 있다 퇴사한 한 개발자는 “수치로 드러나는 실적만 가지고 임원들을 평가하니 팀장의 입장이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같이 일하면서 나의 (혁신하는) 사고의 범위가 팀장의 사고 범위에 정확히 맞춰지는 것을 느끼고 매우 놀랐다. 계속 이런 조직에 있으면 나의 사고의 틀이 완전히 굳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고 털어놓았습니다.

LG전자의 경우도 퇴사한 모 개발자가 그룹 총수에게 ‘조직이 왜 혁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지’와 관련해 장문의 편지를 보냈던 내용이 공개가 된 바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조직 문화가 그 조직 안에만 머물게 될까요? 적어도 그런 조직들이 ICT 생태계의 최상위에 서 있다면 그 문화는 그 기업이 속한 생태계에도 전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앱스토어 심의 = 스마트한 통제? 감찰?

모바일은 통신 서비스의 핵심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모바일 인터넷 세상에서는 통신망이나 단말 보다 애플리케이션이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각 통신사, 단말 제조사가 저마다 앱스토어를 만들고, 거기에 다양한 쓸 거리들을 채워넣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혁신하는 관계, 스마트한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이 앱스토어들에 좋은 앱이 채워지기 힘들 것입니다. 특정 분야에서 활동하며, 그와 관련된 것 위주로 비즈니스를 하는 한두 기업이 그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런 앱을 개발하는 개인이나 작은 벤처들이 생태계의 강자들과 얼마나 대등한 위치에서 개발의 방향과 혁신을 논의할 수 있을까요?

방송통신심의위가 스마트폰 전담팀을 만들어 스마트폰용 앱을 심의하겠다고 합니다. 이제 앱 개발자들은 통신사나 단말 제조사뿐만 정부의 생각까지도 충분히 예상해서 앱을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세계 최초가 될 지도 모르는 ‘스마트폰앱 감찰기관’은 과연 스마트한 ICT 생태계를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스마트’라는 단어가 ‘똑똑하다. 효율적이다’는 의미로 해석되느냐, ‘(통제하기가) 쉽고 편리하다’는 의미로 해석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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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