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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혁신’과 ‘이단’의 경계에 서 있던 한 사람을 생각하며

【사람중심】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운명을 달리한 지 9일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iOS 5가 발표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아이폰의 정수인 iOS가 완전히 새로운 세대로 올라서는 새벽에 스티브 잡스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디지털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꿔 온 맥 컴퓨터, 아이팟, 아이폰, 맥북 에어, 아이패드, 픽사의 성공, 한순간도 눈길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프레젠테이션, 도발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발언들... 연예인 보다 인기가 높은 기업인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유명 기업의 CEO’로서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혁신의 아이콘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사망 소식이 보도된 순간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순식간에 탄식의 글들로 뒤덮였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주류 언론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미국 기업의 대표가 죽었다는 사실에 네티즌들은 진심으로 애도를 보내는 모습이었습니다.

8월에 잡스가 CEO 자리에서 물러날 때 구글의 창업자이자 전 CEO인 에릭 슈미트가 했던 “잡스는 이 시대 최고의 CEO”라는 찬사도, ‘잡스의 열정, 에너지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 무한한 혁신의 원동력이었다’는 애플 이사회의 평가도 모두가 허망할 뿐입니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를 두고 한 신문은 ‘세상은 진보를 잃었다’는 제목을 걸기도 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CEO

스티브 잡스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CEO’라고 불립니다. 태어나자마자 입양되고, 대학을 6개월만에 중퇴한 그는 보통사람보다 불행한 한때를 보낸 인물입니다. 76년 ‘전자공학의 천재’로 불리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허름한 창고에서 세계 최초의 개인용 PC를 내놓으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10년 뒤인 85년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잡스는 사업을 성장시키고자 존 스컬리라는 사람을 CEO로 영입했는데, 존 스컬리는 펩시가 코카콜라를 뛰어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장본인입니다. 이 때문에 차기 펩시 CEO로 내정되어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끈질긴 설득에 애플 CEO로 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스컬리는 애플의 성장에 잡스가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 이사회를 열어 그를 몰아냈습니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자신이 영입한 전문경영인에게 쫓겨난 것입니다.

애플에서 나온 뒤 스티브 잡스는 여러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넥스트는 성능 면에서 인정받는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고, 픽사(Pixar)는 엄청난 운영자금이 들어가는 회사였습니다. 애플에 복귀해 아이팟을 탄생시켰지만 ‘비싸기만 한 음악플레이어’라는 혹평을 들었고, 아이폰은 기존 통신회사의 벽에 부딪혀 사장될 뻔했습니다.

잡스가 애플을 떠나 있을 당시 컴퓨터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완전히 장악했고, 애플은 시장점유율이 3%에 불과해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으며, 언론은 연일 애플이 언제 망할지를 보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애플은 브랜드 가치 세계 1위, 주식 가치 세계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혼자서 이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은 아니겠지만, 누구나 애플이 오늘날의 성공을 구가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그를 첫손가락에 꼽고 있습니다.

수많은 미국의 도시의 거리 한 편에 놓인 그의 영정사진 앞에 수많은 추모 글귀들이 붙고, 조화와 사과가 넘쳐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웹사이트나 SNS에 추모의 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한 기업의 CEO가 이토록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적이 있었을까요? 홍보실에서 만든, 포장된 신화 없이도 말입니다.


무협지 같았던 스티브 잡스의 도전

올해 초 읽은 책 가운데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움직이는 「스티브 잡스의 위기돌파력」(멘토르 출판사)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파나소닉과 애플에 근무했던 다케우치 가즈마사라는 사람이 쓴 이 책은 스티브 잡스가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을 6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여섯 가지 방법이란 ▲‘처리하지 말고 해결하라!’ ▲‘모자라는 돈보다 부족한 꿈을 채워라!’ ▲‘대립이 아니라 양립을 추구하라!’ ▲‘지름길보다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라!’ ▲‘멈추지 마라, 계속 변화하라!’ ▲‘자문하라, 그곳에 답이 있다!’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식들은 분명 보편적인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책을 읽으면서 그 위기돌파 방식 보다는 스티브 잡스가 했던 발언들에 더 관심이 쏠렸습니다. 말이라는 게 원래 한 사람의 철학과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의 발언들을 접하면서 흡사 무협지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애플이 처음 아이팟 개발 계획을 언론에 공개했을 때 언론이나 평론가들은 “이미 수많은 MP3 플레이어 제조사들이 있는데,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어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겠냐?”고 회의론을 폈다고 합니다. 이러한 회의론에 스티브 잡스의 대답은 “MP3 플레이어 시장에 수많은 기업들이 있지만 아무도 확실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성공의 레시피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다”였습니다.

2007년 첫 번째 아이폰을 발표할 때는 가장 많이 쏟아진 질문이 “컴퓨터 제조사가 왜 휴대전화 시장에 진입하려 하느냐?”였습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 가운데도 수많은 고객사가 있고, 통신사들의 장벽도 넘기가 쉽지 않은데 새로운 분야에 뛰어든 것에 우려의 시선이 팽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우리는 휴대전화를 다시 발명할 생각이다”는 대답을 했다는군요.

MP3 플레이어 제조사나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보기에 잡스의 대답은 도발挑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제조사들이 애플이 비난을 들어가며 시도했던 그 방식을 적극 수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업이나 경영자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큰 성공을 거둔 것에 놀라게 되는 경우는 있지만, 통쾌함을 느끼며 읽게 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이단적인 비저널리스트

「스티브 잡스의 위기돌파력」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잡스를 ‘이단적인 비저널리스트(visionalist, 미래구상자)’라고 표현한 대목입니다.

‘비저널리스트’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이다’, ‘시장이 어떻게 흘러 갈 것이다’하는 점을 얘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비저널리스트는 비전을 내세운 뒤로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예측한 대로 흘러가면 자신이 말한 대로 됐다고 강조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현장의 조직·실무자가 제 역할을 다 못했다고 남 탓을 하기 일쑤입니다.

그런 비저널리스들과 달리 “잡스는 비전을 내세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현장에서 지휘를 한다. 설계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세부 지시사항도 전달한다. 비전을 실행하는데 열과 성을 다한 이단적인 비저널리스트다”는 것이 이 책의 평가입니다.

   최초의 애플 컴퓨터

이렇게 될 것이고, 저렇게 변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무수히 많은 비저널리스트들 속에서 잡스는 1977년 애플컴퓨터Ⅱ로 개인용 PC 시대를 열어젖혔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PC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대부분 부정적 평가를 받는 도전을 하면서도 어떻게 될 것이라고 미리 떠든 적은 없지만 IT 업계의 역사를 만들었고, 모두가 모델로 삼는 변화를 주도했습니다.

그는 책상 위에서 맥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밀어붙여 최초로 모니터와 같은 폭의 본체를 만들어냈으며, 아이팟의 전원 버튼을 없애라거나, 더 이상 컴퓨터 모니터와 본체를 케이블로 연결하지 말라는 지시를 해서 오늘날 모두가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아이폰과 아이맥의 탄생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잡스는 또 직원들 마음 속에 비전을 심어주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여기서도 남다른 면이 있는데, 그 비전이라는 것은 언제까지 회사가 어떤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든지, 매출 얼마가 되면 직원들에게 얼마가 돌아갈 것이라든지 하는 기대감을 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제품을 만들자”고 하거나, “미술관에 전시될 수 있는 멋진 디자인을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우주에 충격을 주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잡스의 얘기는 “경쟁자는 이렇게 만드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못 하냐?”거나, “경쟁자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어라”라는 지시에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직원들에게 던져줍니다. “젊은 직원들의 마음을 활활 타오르게 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애플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곳이 제일 큰 회사이고, 가장 월급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입사하게 되는 회사의 직원들과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입니다.


성공을 뒷받침한 뚝심, 미련한 투자?

잡스가 IT 업계에 획을 그은 굵직한 시도들에서 성공을 구가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성공할 것 같은’ 아이템에 목을 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대다수가 어려운 일,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공은 그가 원칙에 충실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잡스는 애플에서 나온 뒤 픽사를 설립, 600만 달러짜리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지닌 ‘픽사 이미지 컴퓨터’를 만들었는데, 12만 5,000 달러라는 가격은 대학 연구소 등에서도 부담을 갖는 금액이어서 사업이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잡스는 이와 함께 랜더링(rendering)을 위한 소프트웨어도 개발했는데, 이 역시 워낙 고가여서 영화 스튜디오 정도에서 조금씩 구매가 일어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픽사의 하드웨어 부문은 바이콤이라는 회사에 매각을 하게 됐지만, 렌더링 소프트웨어 사업은 포기하지 않고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섰습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인 ‘토이 스토리’로 잡스는 역전 홈런을 치게 됐고, 렌더링 소프트웨어는 이후 쥬라기 공원,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와 비밀의방 같은 영화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시절부터 그래픽 기술의 비전을 믿고 꾸준히 투자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들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토이스토리 첫 시사회를 하던 현장에서 스티브 잡스는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픽사의 경영자로 컴퓨터 그래픽 기반의 장편영화 기술을 개발한 에드윈 멀킷과 토이 스토리의 감독인 존 래스터가 없었습니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애드윈 캣멀이 멋지게 센터링을 했고, 존 래스터가 골을 넣은 셈인데도 말입니다.

이 때문에 잡스가 두 사람의 공을 가로채 시사회장에서 영광을 독점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들 실무진이 가장 중요하게 평가한 것은 10년 가까이 매출이라고는 거의 없던 이 회사를 포기하지 않고 막대한 개발비를 쓸 수 있도록 결정해 준 사람이 스티브 잡스였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긴 시간 동안 선수들이 충분한 기량을 쌓을 수 있도록 경기장을 제공해 왔던 것이죠.

과연 이렇게 어리석은(?) 투자를 할 CEO가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의 CEO는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투자를 중단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갈림길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뚝심을 발휘한 기업에게 성공의 열매가 돌아갑니다. 아이폰의 성공은 1993년 애플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PDA폰 뉴튼(Newton)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뉴튼의 UI가 흑백임을 제외하면 현재의 아이폰과 너무 흡사합니다. 

몇 달 전 모 TV프로그램에서 삼성전자가 애플을 롤 모델로 삼고 400 명 규모의 국내 SW 전문가들로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던 얘기를 다루었습니다. 당시 이 조직에 몸담았던 한 개발자는 “혁신을 하겠다고 만든 조직인데, 회사도 팀장인 임원도 실적을 최우선에 놓다 보니,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몇 개나 만들었냐?’가 관건이었다”면서, “어느 순간 내 창의력의 범주가 팀장의 창의력 범주를 넘어서지 않게 된 것을 느끼고 회사를 떠나게 됐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방송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 조직에 4,000억 원을 쏟아부어 100여 개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제대로 성공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CEO가 아니라, 스태프임을 자부했던

이단적인 비저널리스트이자, 뛰어난 감각의 승부사이자, 고집센 COE였던 스티브 잡스는 그러나 애플의 주인이 아니라 스태프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살 날이 한달 남았다느니, 6주가 남았다느니 하는 기사들이 넘쳐나던 지난 3월, 아이패드2 발표 회에서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동안 이 제품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를 이곳에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11년은 아이패드2의 해가 될 겁니다.”

저는 이 인사말을 들으면서 매우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브랜드 가치 세계 1위 기업의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가 회사의 중요한 전략 수행에 한사람의 스태프로 참여해 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열정을 쏟아 함께 준비했던 사람만이 얘기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패드가 또 다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 유수의 증권사들이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매우 중요한 점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는데, 오히려 제 생각에는 스티브 잡스라는 불세출의 CEO가 아니라, 열정을 가진 스태프로서의 스티브 잡스가 있는 애플이 매우 위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잡스는 생전에 “세계를 변화시킬 기회가 눈앞에 왔다.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성공하느냐 아니면 패자가 되느냐 둘 중 하나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나 경력에 얽매여 있다면, 우주에 충격을 주겠다는 생각은 버려라”는 말로 직원들을 독려했다고 합니다.


애플이 어떤 일을 추진한 뒤 사후분석을 꼼꼼하게 하지 않고, 잡스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을 들어 잡스 사후에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애플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화를 내는 상황에서도 그에게 반론을 제기하고, “당신은 바보다”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직원만이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아이폰 4S는 비슷한 하드웨어 사양의 안드로이드폰과 비교해 절반 수준의 가격에 출시됐고, iOS는 드디어 5세대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아이클라우드가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매번 전세계인을 흥분시켰던 스티브 잡스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다”라는 삼국지의 유명한 한 구절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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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